기본소득이 답인가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속됨으로써, 한계상황에 다다른 소상공인들의 비명이 점점 커지고 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소상공인들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카페, 식당, 노래방, 주점, 스포츠센터 등 동네 자영업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출 대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으며 훨훨 날고 있다.대기업 근로자들은 성과급을 어떻게 나눌까를 두고 노사다툼을 벌일 정도이다. 작금의 경제회복을 K자형이라 부르는 이유다.

정부는 영업 제한으로 인해 발생한 소상공인들의 손실을 보상해주기 위해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나아가 자영자를 포괄하는 전 국민 고용안전망 도입도 검토 중이다. 실업 근로자에게 실업급여가 지급되듯이, 재난적 상황에 처한 자영자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제공된다면 복지국가로서 한국이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한편, 자영자에 대한 사각지대 해소 해법으로 기본소득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게다가 기본소득 지급으로 경기 부양 효과도 함께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전국민에게 나눠주니 소득재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사각지대도 없어지고, 경기 부양 효과도 볼 것이며, 재분배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기존의 복지급여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막대한 재정 소요로 인한 사회보장제도의 위축이란 부작용은 덤이다.

사각지대 해소?
전 국민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니 사각지대가 있을 수 없다. 큰 장점이다. 문제는 급여의 수준이다. 1/n로 나눠 전 국민에게 나누다 보니, 급여가 너무 낮아 소득보장의 실효성이 없다. 매달 1만 원씩 기본소득을 5천200만 전 국민에게 주자면 6조 2천400억 원이 든다. 10만 원 기본소득이면 62조 4천억 원이 소요된다.

반면에 기존의 사회보장 방식은 기본소득과 달리 무차별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1/n로 나눠주지 않는다. 고용보험의 예를 들어보자. 2019년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지출액은 총 9조 3천억 원이었다. 이 돈으로 모든 근로자가 아닌 실업자에게 월 최저 180만 원에서 최대 198만 원을 지급한다. 만약 9조 3천억 원을 기본소득 방식으로 모두에게 나눠 지급하면 월 1만 4천900원이 된다. 1만 4천900이 너무 적으니, 실업급여 하한액에 근접하게 그 100배인 149만 원씩 지급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자면 연 930조 원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 ‘초수퍼예산’으로 편성된 2020년 국가예산이 558조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100만 원이 넘는 기본소득은 불가하다. 이재명 지사의 주장처럼 연 26조 원으로 1년에 총 50만 원 정도 지급하는 게 그나마 현실성이 있다. 문제는 26조 원을 써도 월 4만 원에 불과한 수준이란 데 있다. 사각지대의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못 된다.

실효성 있게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사회보장체계를 강화하는 게 정답이다. 어떤 국민이든 어려움에 처했을 때,보다 충분한 급여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치 건강보험처럼 아프면 치료받고 중증이면 그만큼 보장성이 올라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 가라고 모든 가입자에게 매달 돈을 나눠준다면,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더 나은 보장성 강화도 실현시킬 수 없다. 위험이나 욕구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사전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모두에게 1/n로 나눠주는 방식으로는 사각지대 해소도 사회보장의 강화도 기대할 수 없다.

경기 부양 효과?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이 소비 지출을 늘리기에 경기 진작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케인즈주의자들의 경제논리와 상통하는 주장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경기 부양 효과는 복지급여만 못하다. 한계소비성향의 차이 때문이다. 저소득계층이거나 실직이나 은퇴 등으로 소득이 없거나 낮은 국민에게 복지급여가 지급되면, 소비지출 효과를 더 크게 볼 수 있다. 소득이 있어 소비수준을 유지하던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급여는 상당부분 저축으로 빠지지만, 소득이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에게 복지급여가 들어가면 대부분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민대상 재난지원금의 소비지출 효과를 보면,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 금천구의 카드 매출액은 증가한 반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서초구의 카드 매출액 증가는 서울시 평균을 밑돌았다(그림1).

기본소득을 지역화폐 방식으로 지급하고 사용 기한을 지정해 기한 내 100% 소비하도록 유도하면 소비진작 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지역화폐의 사용률은 높아질지라도, 기존에 사용하던 카드와 현금 지출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총소비가 크게 증가하기는 어렵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본소득 나눠준다고 경제성장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돈 나눠줘서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공산주의 경제가 왜 망하며 남미경제는 중진국 함정을 왜 못 벗어나는 것일까? 경제성장은 궁극적으로 생산요소(노동과 자본)의 공급과 기술혁신(생산성 증가)에 의해 결정된다. 재정정책상 이전지출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지는 못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해소?
기본소득으로 소득재분배를 이루고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을까? 효과가 없지는 않겠으나 기존의 복지급여보다 클 수가 없다. 사회보험형 소득보장제도는 소득비례형이기 때문에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은 보험료를 내고, 좀 더 높은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제공되는 기초연금이나 생계급여 그리고 근로장려금(EITC) 같은 일반재정 프로그램들은 저소득자에게 지급된다. 따라서 <그림2>에서 보듯, 조세기반 복지 프로그램은 1부터 3분위까지 저소득계층에게 많이 지급된다. 상위 20%(9분위와 10분위)가 받는 급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하위 1분위부터 상위 10분위까지 동일 액수를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다. 양극화 문제가 완화될 수 없다.

소득재분배 관점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기본소득이 개인 단위로 지급된다는 점이다. 중산층 전업주부나 중산층가정의 학생들이 개인 단위에서는 무소득 혹은 저소득자로 분류된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양의 소득재 분배가 발생해 양극화가 완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착시다. 이들은 가구 단위로 보면 저소득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 단위 기본소득은 역진적일 수 있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주는 복지급여(예컨대, 기초생활보장제도, EITC, 실업부조)는 개인 단위가 아닌 가구 단위로 소득을 파악해 지급한다.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도입을 정당화하지만, 실제에서는 그 효과가 복지급여만 못하다. 그리고 역진적이기까지 하다.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선택해야
기본소득은 사회복지적, 경제적 차원에서는 복지급여에 비해 분명히 열등한 정책 수단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매우 유용하다. 기존 복지제도에서는 보편적 보장을 받더라도 사회적 위험에 빠진 소수만이 복지급여를 받는다. 물론 기본소득보다 훨씬 두툼한 급여를 받는다. 그렇다 해도 소수인 점은 바뀌지 않는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사고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매달 모든 국민에게 현금으로 전달된다. 소득보장 효과가 낮고, 양극화 해소에 실효성이 없어도, 정치적 계산으로는 유용한 수단이다. 포퓰리즘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국민의 현명한 판단만이 이 상자를 다시 덮을 수 있을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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