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레임덕(Lame Duck)이란 ‘절름발이 오리’를 가리킨다. 뒤뚱거리는 데에다 절기까지 할 정도로 제 역할을 하기에는 결핍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영국으로 추정된다. 당시 빚을 갚지 않고 채무불이행 상태로 일하는 런던의 증권 거래인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용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곳은 정치사회이다. 일반적으로 레임덕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정치 지도자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달리 표현하면,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권력 누수 현상’을 의미한다.

정치적 맥락의 ‘레임덕’은 19세기 미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는 11월인 반면 취임은 다음 해 3월이었다.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아닌 경우 선거 후 약 5개월이나 대통령직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새로운 대통령이 정해진 그 기간 동안 현직 대통령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당연히 국정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레임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1933년 미국 수정 헌법 제20조를 채택함으로써 대통령 취임일이 1월 20일로 앞당겨 레임덕 기간은 약 3개월로 줄어듦).

레임덕의 일상화
특정 시기에 국한해 사용됐던 ‘레임덕’은 이제 정치현실 일반을 설명하는 용어가 됐다. 현직 대통령의 권력 누수 현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자가 겪게 되는 정치적 위기 양상을 설명하는 일반적 용어가 됐다. 대통령뿐 아니라 특정 지위에서 물러나야 하는 인물이 겪어야 하는 ‘권력 누수 현상’, 그리고 그 지위를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레임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용어는 대통령에 대해 유독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히 선거 후 정권교체 시기뿐 아니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현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임기 중 선거에서 여당이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바로 레임덕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의회에서 여당이 충분한 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대통령의 정책이 제대로 통과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간 선거만이 레임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취임 직후라도 여론의 향배에 따라 바로 레임덕을 맞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 소고기 수입’으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오늘날과 같은 여론정치가 일반화돼 있는 상황에서는 레임덕을 특정 시기로 국한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치는 레임덕에서 시작해서 레임덕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재임을 금지하고 있어 집권 말기에 레임덕이 발생하기 쉽다. 더군다나 시민의 정치적 참여가 일상화되는 만큼 소통과 여론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한다. 시민과의 소통을 통해 높은 지지와 지원을 받을 경우 대통령의 권한이 확대되는 반면, 그 반대일 경우 주어진 권한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이제 대통령은 ‘일상화된 레임덕’ 속에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레임덕, 책임정치의 위기
이 같은 현상은 민주화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각 영역은 ‘군사독재의 보상체계’ 속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보상체계’가 붕괴된 후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출현, 교체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새로운 권력에 저항하기도 했고 퇴임하는 권력을 버리기도 했다. 관료들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순간 대통령 권한에 저항, 회피, 기만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선고후저先高後底 현상’이 일반화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90% 후반까지 오르던 지지율이 퇴임을 앞두고 국가부도위기(IMF 위기)를 맞으면서 5%까지 떨어졌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박근혜도 탄핵 직전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뿐 아니라 민주화 이후 대부분 대통령은 처음의 기대와 달리 낮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치고 쓸쓸히 퇴임해야 했다.

문제는 ‘책임정치’의 실종이다. 한 대통령의 임기 중에 책임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당대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고 그것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공적 가치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책임정치’의 실종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김영삼 정부 말 IMF 사태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제의 한계인가
이 같은 ‘선고후저 현상’,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정치의 실종’을 이유로 한국에서 대통령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높은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들이 임기 후반에 들어 지지율이 급락함으로써 대통령 개인의 실패뿐 아니라 대통령제마저도 실패했다는 논리이다. 그들이 대신 선택한 대안체제가 바로 내각제이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제(제왕적 대통령제)가 다름 아닌 레임덕, 그리고 대통령의 실패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진단에 따라 대통령의 권력을 해체, 분산하는 체제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내각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반론에 답해야 한다. 우선 행위자의 위기를 제도의 위기로 대체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하는 질문이다. ‘개별 대통령의 위기’를 마치 ‘제도의 위기’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다. 특정 정파의 정치적 실패를 제도의 실패로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책임정치의 측면에서 보면 내각제도 신뢰를 받기 어렵다. 특히 민주화 이후 대통령에게는 개혁과 혁신이 주요한 과제로 주어졌다. 물론 보수정파 대통령도 이 과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다만 속도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시민은 대통령에게 직접 그 과제를 위임해 완수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민은 대통령에게 그 결과에 대해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각제는 그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리고 시민의 직접민주주의 요구는 기존의 대의제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국회가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에 권력이 집중되는 내각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오히려 의회의 권한을 감시감독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권한 남용을 제한하고 자신들이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오히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이분법의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지점은 시민참여와 직접민주주의 요구가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높아진 정치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스마트 소통수단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참여를 어떻게 제도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레임덕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레임덕이 정권교체기의 현상도 아니고, 중간선거에 따른 결과도 아니다. 시민참여 여론정치가 일상화돼 있는 오늘날,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레임덕을 겪는다는 것은 크게 새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임덕의 핵심 : 아젠다의 실종
문재인 정부에 대해 ‘레임덕’으로 규정하는 보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거슬리는 정부에 대해 ‘레임덕’을 강요함으로써 사실상 직무정지 상태를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보도에는 책임정치에 대한 인식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문재인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한 공격만이 눈에 띌 뿐이다.

‘레임덕’의 징후로 몇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여당이 청와대와 다른 의견을 표명했다거나, 공직자들이 대통령이나 여당의 정책에 이견을 드러낸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같은 근거들이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1년여 임기가 남은 대통령과 아직 2년 이상의 임기가 남은 국회의원 사이에는 정치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진단에도 지지율은 견고하다. 약간의 등락에도 불구하고 여러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40%대를 견지하고 있다. 몇 가지 징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지지율로 보면 레임덕으로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레임덕은 지지율만 높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물론 지지율로 레임덕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여론조사의 편향성 등을 거론하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 여론조사의 결정적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두 가지 윤리를 제시했다. 하나가 ‘신념윤리’이고, 다른 하나가 ‘책임윤리’이다. ‘신념윤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시대정신, 혹은 역사적 목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윤리’는 그것을 끝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현실적 추진 의지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정치인은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시대적 어젠다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전략적 수단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레임덕은 막스 베버가 지적한 두 가지 윤리의 실종과 포기에서 비롯된다. ‘신념윤리(시대정신)’를 잃게 되면 대통령은 시대적, 역사적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또 ‘책임윤리’를 상실하게 되면, 비록 ‘신념윤리(시대정신)’를 견지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구체화현실화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지 못하고 방치하게 된다. 쉽게 말해 임기 중이든 임기 말이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방기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국민으로부터 시대적 어젠다를 위임받는다. 이 어젠다를 상실하거나 그것을 구체화할 의지를 상실하게 되면 곧 레임덕을 맞게 될 것이다. 국회의 이견異見, 공무원들의 이반離叛이 레임덕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 여론의 등락도 하나의 증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본질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시대정신(어젠다)을 실현하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투철한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있는지 여부다. 굳건한 시대정신과 그것을 실현할 투철한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다른 요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퇴임 바로 전날까지 이 시대를 위해 끝까지 견지해야 할 어젠다가 있는가?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시대정신은 포기하고 마지막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것은 물론, 벌써 퇴임 이후를 준비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결국 이 질문에 의해 갈라질 것이다.

김창호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김창호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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