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정보사회의 도래
2016년 영국 런던의 한 자치구인 엔필드(Enfield)에서는 ‘아멜리아(Amelia)’라는 가상 서비스 에이전트 공무원을 채용해 이목을 끌었다. 챗봇 기반의 아멜리아는 자연어처리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어내고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시의회 서비스 지원 및 주민 민원 대응, 각종 허가 및 인증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멜리아가 직접 해결하지 못하는 민원이나 문제는 가장 적합한 부서 담당자에게 매칭해 안내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 ‘지방세 상담봇’, 서울시 강남구 주정차 민원을 해결하는 ‘강남봇’ 등 챗봇을 활용한 지능형 공공서비스를 서서히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공공서비스 혁신은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ICT(정보통신)중심의 정보사회에서 SMACI(Social, Mobile, Big Data Analytics, Cloud & IoT) 중심의 지능정보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의 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지능정보사회에서는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인지, 학습, 추론과 같은 고도의 사고 능력을 기계도 가질 수 있으며 컴퓨팅기술과 융합해 고차원적 데이터를 처리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서비스와 공공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한편 지능정보기술의 범용화, 상용화를 위한 공간적개념으로서 도시를 주목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세계적 도시화 추세는 도시로의 인구 밀집과 이에 따른 교통, 환경, 주거, 안전 등 다양한 도시문제를 양산해 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졌다. 과거에는 도시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 새로운 인프라를 조성하거나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사후적, 물리적, 양적 공급 확대와 일률적 적용, 빠른 확산에 치중해왔다. 그러나 지능정보사회에서는 디지털기술 기반의 사전적, 융·복합적, 실시간, 수요 기반의 예측 및 조정을 추구한다.

가령 교통 혼잡 등 대표적 도시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전에는 새로운 도로를 만들거나 노선을 증편하거나 증차하는 등의 물리적 공급, 양적 확대를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면, 오늘날의 도시는 데이터 기반의 혼잡 예측 및 시뮬레이션, 운전자에게 실시간 정보제공을 통한 수요 분산, 실시간 교통량에 대응한 신호체계 시스템의 탄력적 운용 등 유연하고 융·복합적 차원의 해소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데이터 및 디지털기술 기반의 다층적 접근을 통해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자 고민하는 도시가 곧 스마트시티의 모습이다.

스마트시티의 진화
국내에서도 스마트시티 추진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조직적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올해 1월, ‘도시혁신 및 미래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스마트시티 추진 전략’을 발표하고 시범 추진 대상으로 세종 5-1생활권(LH)과 부산 에코델타시티(K-Water)를 선정했다. 세종시는 시민행복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플랫폼 도시를 비전으로 공유차량, 전기차, 드론 등 스마트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시민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중심 스마트 시티 구현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는 자연, 사람, 기술 융합의 글로벌 혁신성장 도시를 비전으로 기술혁신, 프로세스혁신, 민·관협력을 통한 스마트시티 서비스 발굴을 추구한다. 이와 같은 스마트시티 시범 대상 도시에서의 디지털 기술의 다양한 실험적 활용이 가능한 플랫폼이 마련될 수 있도록 <스마트도시법>상 자율주행차, 드론, 공공 SW 사업 등
신산업 특례를 규정하고 혁신성장 진흥구역을 도입하
는 개정안 논의가 진행 중이다.

도시형 스마트시티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고른 발전과 혁신을 위한 ‘스마트네이션’, ‘스마트빌리지’와 같은 개념도 등장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정의하는 스마트네이션이란 지능정보인프라를 바탕으로 주민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아도 지능정보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든 받을 수 있으며, 지능정보기술을 접목해 행정·안전·교통·복지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스마트네이션 전략은 지능형 CCTV 주민안전서비스, 데이터 기반층간소음 해결, 사회적 약자 안심귀가 서비스 구현 등10대 핵심 서비스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방범, 교통, 재단 등 단절적으로 운영 관리돼 왔던 정보 및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관리 운영하고자 ‘2018년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제주특별자치도, 마포구, 경산시,나주시, 포항시, 고창군 등 12개 지자체가 선정돼 대도시지역 이외에도 시·군·구, 자치구 등 소규모 지역 단위에서 데이터 기반 통합플랫폼형 스마트시티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소규모 지역, 마을 단위에서 해당 지역의 환경적 여건 및 특성을 고려한 지능정보사회로의 움직임은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EU에서는 ‘스마트빌리지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이외의 농촌 등 지역마을에서 디지털정보기술을 활용한 도시재생, 농산물유통 시스템의 지능정보화 등 새로운 지역 산업의 발굴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 전방위에서 다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스마트시티, 스마트네이션과 같은 노력이 과거 U시티에서 겪었던 한계를 답습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스마트시티를 위한 논의
첫째, 데이터 기반 시민 수요, 수요 기반 스마트시티 추진을 통한 시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발굴해야 한다. 과거의 공급 중심, 하향식 중앙정부 중심 정책 하달,서비스 확산이 아닌 서비스 발굴 단계부터 수요자 중심형 상향식 스마트시티 추진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예로 지금까지 정보사회에서의 전자정부, U시티를 경험하면서 시민은 다양한 수요를 온라인 플랫폼상에서 데이터로 표출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시민 수요에 단편적으로 신속하게 1대1로 대응해왔을 뿐 데이터 간 연계 통합 등을 통한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데이터를 잘 쌓아 두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활용, 분석, 해석, 재가공하는 등 2차적 활용이 활발히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범정부 또는 부처, 지자체 단위의 다양한 시민참여 플랫폼상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민이 개선되길 희망하는 문제, 정책 수요발굴, 스마트시티 서비스화로 이어지는 진정한 수요 기반형 공공서비스 발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둘째, 도시 정책의 역발상,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의 실험적 도입이 필요하다.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스마트시티는 과거 하드웨어 중심의 U시티와 달리 소프트웨어 중심의 다분히 유연하면서도 탄력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택티컬 어바니즘이란 과거‘비전 설정 → 계획 수립 → 디자인/공정 → 운영 관리’의 정적의 견고한 도시계획이 아닌 먼저 행동으로 실천해보면서 비전과 계획을 수정, 보완하고 이를 다시 행동에 옮겨 운영하면서 피드백하는 일종의 사회실험적 도시 정책 패러다임이다. 디지털기술은 보다 다수의 참여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실시간으로 빠르게 피드백을 수용 가능한 택티컬 어버니즘을 지원한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스마트시티, 스마트빌리지, 스마트네이션 모두 전통적인 정책 과정에서 벗어나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문제 현안 해결을 위해 소규모, 지역 단위로 시민 중심의 행동을 실험해 나가면서 수요자의 시각에서 개선 및 발전방안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공공데이터뿐 아니라 민간데이터의 공공서비스 활용 활성화가 필요하다. 교통, 통신, 의료, 카드사 매출 정보 등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서 데이터는 지금도 계속 생성 및 축적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민간데이터는 기업 내부의 경영전략 수립, 마케팅 목적으로 주로 사용돼 왔다. 물론 카드사 및 통신사 데이터를 연계한 서울시 심야버스 노선 개발과 같이 민간데이터를 활용한 공공서비스의 발굴, 혁신을 위한 시도도 이뤄져 왔지만 보다 더욱 활성화, 일상화돼야 한다. 가령 앱택시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가장 많은 사용자가 택시를 호출한 지역과 하차한 목적지 1순위는 모두 ‘김포국제공항 국내선’으로 나타났다. 즉 공항 접근을 위한 대중교통이 잘 구비돼 있어 보이지만 시민은 여전히 공항까지 갈 때, 혹은 여행 후 공항에서 집으로 올 때 현행 대중교통으로 해소하지 못한 초과 수요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민간영역의 교통 데이터가 이야기해주는 결과를 내국인 관광활성화, 관광 이동성 제고, 현행 교통 정책 개선 등의 공공부분 활용과 연계할 때 새로운 민·관공동창조형 공공서비스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넷째, 시민이 느낄 수 있는, 시민 중심 ‘경험’의 제공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전자정부, 정보사회를 거쳐 오면서 효율성을 강조해왔다. 정보시스템 기반의 공공서비스 제공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얼마나 간편하고 빠르게 얻었는지에 대한 ‘서비스 제공 및 만족’에 치중해 왔다. 그러나 지능정보사회의 스마트시티에서는 인지와 사고가 가능한 기계와 인간의 교감, 소통까지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을 넘어 서비스를 통해 시민의 ‘경험’을 구현하고 효율성이 아닌 유연성과 소통을 추구해야 한다. 여기에서 경험이란 시민이 필요에 따라 해당 서비스를 찾아가는 이전의 방식이 아닌 시민 능동적으로 찾기 이전에 이미 해당 서비스를 인지·경험할 수 있는 환경 안에 시민이 존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다섯째, 시민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스마트 시티즌십의 확보이다. 스마트시티를 가능하게 하는 빅데이터,블록체인, 인공지능 등 관련 디지털 기술 분야 전문가와 이를 시민의 눈높이로 전달, 확산하는 전문적 매개자, 그리고 스마트시티 서비스를 즐기고 느끼는 시민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스마트 시티즌십이 구성될 것이다.스마트시티 기술을 이해하고 서비스를 경험할 줄 아는 시민양성, 문화 조성과 함께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대책도 함께 고민돼야 할 것이다.

스마트시티를 넘어 와이즈시티로
우리는 가끔 제도는 완벽한데 현실적으로 운영되지 않거나, 시설은 완벽한데 딱히 활용하지 않거나, 굳이 왜 있는지 모르겠는 경우를 보곤 한다. 스마트시티 역시 기술적, 제도적, 인프라는 완비됐지만 시민이 필요로 하지 않거나, 필요해도 편리하지 않거나, 편리해도 누구나 쓸 수 없다면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스마트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교과서적 스마트시티를 넘어 사회를 구성하는 스마트시티 참여자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스마트화가 이뤄져야 한다. 결국 다양한 참여자, 이해관계자가 많아질수록 산술적, 기계적, 기술적으로 똑똑한 도시를 넘어 다양한 불확실성과 가능성에 대해 탄력적이고 유연하며 포용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현명한 도시’로 나아가야 도시의 지속가능성 또한 높아질 것이다.

김시정 서울디지털재단 책임연구원
김시정 서울디지털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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