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새 정부의 공약을 살펴보다

아직 부족한 성평등 사회
한국사회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 변화와 사회적양극화의 확대, 고용 불안과 4차 산업혁명의 전망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 단순한 여성 인력 활용이나 성 역할을 전제로 하는 정책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노동시장과 젠더관계의 개혁이 없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하지 못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성운동은 여성지위 향상 및 성평등 국가 실현을 위해 다양한 법·제도 개선운동과 여성정책 추진기구를 마련하는 데 주력했으며, 이후 젠더-거버넌스를 통해 국가 정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견제하는 데 노력해왔다.

실제로 여성 정책의 범주는 적극적 조치 등과 같이 역사적으로 누적된 성차별 시정 정책, 사회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는 정책,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 불평등한 젠더관계에 주목해 여성의 역할뿐 아니라 남성의 역할을 전환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 등 매우 다양하게 추진돼 왔다.

그간 여성 정책 전담부처로서 여성부 혹은 여성가족부는 독립된 부처가 아니면 달성하기 어려웠을 여성 정책의 성과들을 축적해냈으며, 이는 전근대적인 사회문화적 구조가 온존한 한국사회에서 일정한 변화를 추동해내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을 시작으로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2005년에는 오랜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한 민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성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 예방과 금지 및 처벌에 대한 정부 정책의 강화를 위해 관련 법률과 서비스를 체계화했으며, 2004년에는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해 성매매를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 법체계 안에서 성매매 근절을 제도화시켜 냈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성평등의 진전을 위해 협력했던 다양한 사회적 관계가 붕괴됨에 따라 여성 정책의 영역에서 형성됐던 거버넌스가 균열되고 있고, 성평등 의제는 국가적 의제에서 주변부화 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평등 약속’을 여성들이 주목하는 이유이다. 성평등 정책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계가 마련한 성평등 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추진을 위한 5가지 약속을 한 바 있다. 초대 내각 여성 비율을 30%에서 출발해서 단계적으로 동수내각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성별 임금 격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3%로 축소하고, 생애주기별 여성 1인가구의 복지를 위해 임기 중 주거안정 정책을 시행하며, 젠더폭력 방지 국가행동계획 수립과 이행, 여성가족부 기능 강화와 대통령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등이 그 내용이다.

“성평등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겠다”는 성평등 공약은 여성이 행복한 대한민국 건설, 여성의 대표성 확대를 위한 성평등 환경 조성, 일·생활 양립이 가능한 성차별적 사회관습 철폐, 폭력 없는 사회, 모두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목표로 한다. 성평등을 인권의 핵심가치로 놓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바로 성평등한 세상이며,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가 최소한 OECD 평균은 되도록 매년 성평등 지수를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현재 여성가족부 예산은 7천122억 원으로 정부 예산의 0.18%에 불과하다. 이 비율은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 정책이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한다. 성평등 정책이 여성을 대상으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머물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 복지, 인권, 주거, 환경,교육,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성인지적 관점으로 개입해 여성과 남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정책의 조정과 통합을 통해 성평등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는 성주류화의 실질적인 확대를 위해 범부처 차원의 총괄 조정기능이 가능한 수준으로 통합적 성주류화 정책을 추진하고,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기구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럽연합의 국가에서 성별영향평가가 전문가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평가의 주체가 담당공무원이며, 표준화된 양식에 따라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져서 양적 측면의 확대에만 치중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우리보다 앞서 성주류화 전략을 시행하고 있는 유럽은 성주류화에 대한 평가 영역으로 고용이나 공공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유럽의 중장기적인 사회 경제적인 전망 속에서 주요 의제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정된 공공서비스에 집중돼 실제적 여성의 삶에 변화를 미칠 수 있는 고용 등 경제활동에서의 참여, 일자리 분야에 성주류화 의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과제나 주요 사회 정책에 대한 젠더관점의 개입을 통해 여성과 남성의 삶을 변화시키고, 불평등한 젠더관계의 시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는 성주류화의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성별영향평가 수행과정 및 추진기반을 점검해야 한다.

성주류화를 위한 남녀 동수 내각 실현
이전 정부에서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 여성 장관이 1%였다. 다양화된 우리 사회 구성을 반영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숫자다. 여성의원 선출직 비율을 적어도 30% 이상으로 높이고, 지금 상황에서 남녀 동수 내각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지난 참여정부에서 여성가족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장관으로 폭을 넓혀 간 사례가 있듯이 비서관, 보좌관 등의 영역에서도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노력을 구체적 사례로 실증해 나가야 한다.

국정 책임자의 의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여성대표성제고’는 문재인 정부가 성평등 약속을 실천해가는 바로 미터가 될 것이다. 대통령 당선 이후 인사수석에 여성을 임명하면서 외교부, 국토부 장관에 여성을 지명하는 등 파격 인사를 보인 바 있어 여성대표성을 높이는 정부로 기대를 모으고는 있지만, 인사 검증 기준에 성평등 관점은 부족한 듯 보여 아쉽다.

한국사회에서 여성 차별, 여성 비하, 여성 혐오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폐이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정부 정책의 성주류화 기반 구축을 약속한 이상 성인지적, 성평등 관점을 가진 인물의 등용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성주류화를 위한 인재 등용은 생물학적 성별보다 성평등 관점이 더욱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인사 검증과정에서 성평등 관점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성주류화는 몇 개의 정책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국정 전반을 이끌어가야 할 철학이며 비전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주류화를 위한 대표적 정책 중 하나로 각종 위원회의 여성 참여 비율 및 관리직 공무원의 여성비율을 통해 그 성과를 측정한다. 남성 중심의 관료사회에서 성별 불균형은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은 물론 여성의 낮은 지위의 개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의 대표성 제고는 여성 정책의 가장 핵심적 과제이다. 5급 이상 관리직 여성공무원증가를 목표로 여성 참여 확대를 현실화해야 한다. 자연증가분에 의존하고 있는 관리직 여성공무원 증가에 관해 목표를 새롭게 정하고 여성공무원의 인사 및 승진 시적극적 조치를 동반해 성주류화의 성과를 높여야 한다.

성평등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배제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남아있으면 온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여성들은 “여성 인재풀이 남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구태의연한 변명을 듣고 싶지 않으며, 적극적 조치 일환으로 설계된 여성대표성 관련 공약이 즉각 실행되기를 바란다. 생색내기식으로 몇 명의 여성인사를 임명하는 상징적인 여성대표성 만으로는 실질적인 성평등을 이뤄낼 수 없다. 여성대표성의 양적 확대와 함께 국가 정책 전반을 성주류화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여성계가 요구하는 남녀 동수 내각과 여성할당제는 젠더관점을 가진 여성 인재 등용으로 국가 정책 전반을 성주류화해 젠더 폭력-불평등을 해소하라는 의미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남녀 임금 격차 해소
경제위기 속에 특히 남녀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는 노동 및 고용문제를 핵심적인 의제로 선정해 관리해나가야 한다. 남녀 임금 격차는 여성을 고용 불안정, 경력 단절, 유리천장, 여성 비친화적 노동환경 등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모든 차별문제를 함축하는 지표이다. 블라인드 채용제, 표준이력서 도입 등으로 성별, 학력, 학벌, 출신지, 집안 배경 등 불공정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을 다 삭제하고 능력으로만 채용될 수 있게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폭력 해소
현재 한국사회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아동 성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존재한다. 여러 법과 제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은 매년 증가하고,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젠더폭력방지기본법’ 등이 제정돼 통합적 예방 교육 확대 및 내실화가 보다 강화돼야 하고,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피해 예방’ 교육만이 아니라 ‘가해 예방’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 예방교육 확대 및 시민 대상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 ‘인권 조례’ 안에 여성인권의 내용을 포함시키고, 여성폭력 근절 및 여성폭력 예방과 결부된 인권 통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여성생애주기별 1인 가구 지원
2015년을 기준으로 1인 가구는 전통적인 가족 유형이라 생각해 온 4인 가구보다 높은 비율인 27.2%이다. 1인가구는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청년여성과 중년여성, 노인여성 1인 가구의 정책은 생애주기에 따른 삶의 유형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1인 가구 맞춤형 주거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고, 셰어하우스 등 공유공간을 사용하는 임대 주택의 보급이 늘어나야 한다. 건강과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형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정책 추진이 요구된다.

이제 ‘성평등’ 국가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기본 전제이다. 차별과 폭력, 배제가 없는 사회, 성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김경희 대전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경희 대전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저작권자 © 더퍼블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