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정책제안

경찰 민주화에 대한 경찰의 저항
지금도 경찰 조직은 자치경찰을 두고 우리나라가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혹은 통일 이전 상황에선 시기상조라는 수긍하기 힘든 논리를 버젓이 대고 있다. 자치경찰전환을 거부하는 한국은 실상, 경찰노조 금지를 위헌으로 판결하도록 이끌어낸 케냐 경찰만도 못하다는 점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노조 추진조차 못하는 한국 경찰의 낙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역시 경찰노조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실패한 것으로 입증된 제주자치경찰제의 전국 확대론만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을 따름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허울에 불과한 노무현 정부의 유산에 집착하면서 여기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시·도지사와 시·도교육감 직선은 되고 시·도자치경찰감 혹은 시·도지방경찰청장 직선은 안 된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다. 특히 교통이나 생활안전 일반 범죄에 대한 수사 등에 대해서까지 국가경찰제를 고수해 주민생활과 동떨어진 경찰서비스나 지역주민에 의한 경찰 통제나 감시를 가로막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와 배치된다.

현재 지역 주민이 지구대나 파출소 등에서 잘못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지구대나 파출소가 국가경찰기관이기 때문에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는 무용지물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전국 13만 국가경찰의 대국민 접점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제대로 감시 감독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 자치경찰 도입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응 수준은 고민의 흔적이 없어 보여 "

올해 1월 전·현직 경찰과 문재인 후보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의 지적에 따르면, 자치경찰로 바뀌면 신분이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 바뀐다며 경찰조직에서는 자치경찰 전환을 극구가로막고 있다고 한다. 현직 경찰은 자치경찰로 전환하는 경우 지방공무원으로 전락할까 우려하기 때문에 자치경찰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문재인 정부가 이런 시각에 머물러 있다면, 그래서 경찰 가족의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자치경찰 전환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전체 국민 아닌 경찰가족의 대통령에 국한되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닌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상당수 현직 경찰은 자치경찰 전환을 반대한 적도 없으며, 찬반 여부를 묻는 내부 설문조사조차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필시 고위직 경찰 출신의 입장만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국민의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제주 방식의 전국 확대에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국민의당은 자치경찰에 대한 비전 자체가 없다. 국민의당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자치경찰제 시행을 추진하려 했지만 현직에서 반대가 세서 유보 상태”라고 한다(2017년 4월 10일 조성복 전문위원, 인권시민단체들의 연대 모임 ‘공권력감시대응팀’ 주최 ‘각 정당 초청 차기 정부 경찰개혁과제 토론회’). 이게 과연 ‘국민의 정당’으로서 취할 자세인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영국 자치경찰감 주민 직선 전환
영연방 국가들과 미국의 경찰제도의 원류는 영국의 자치경찰이다. 그런데 고전적인 이 자치경찰제도는 2012년 거의 50년 만에 큰 개혁이 이루어졌다. 과거 카운티별, 즉 시·도별 자치경찰의 감독기관으로서 지방의회 간선으로 뽑던 자치경찰위원들과 위원장을 2012년주민 직선 자치경찰감(Police and Crime Commissioner PCC) 직선으로 바꾼 것이다. 자치경찰청장 임면권을 갖는 PCC는 이전의 자치경찰위원회 역할을 대체한 것으로서, “자치경찰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주민 직선 교육감과 아주 유사하다. 자치경찰감 직선 배경은 자치경찰이 주민 직선기관에 민주적 책임을 지는 것을 더욱 더 확고하게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자치경찰과 주민 직선 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것으로서, 2010년 총선 직후 들어선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11경찰개혁과 사회적책임법(Police Reform and Social Responsibility Act 2011)’이 통과돼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2002년 더글라스 카스웰(Douglas Carswell)의 “직접민주주의론(Direct Democracy:Empowering people to make their lives better, Change)”논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치경찰감은 경찰 분야에서 ‘견제와 균형’ 개념이 극도로 생소한 우리나라 개념으로 보면, 사실상 “경찰청장”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우위를 통해 표현되는 주권 개념이 유독 경찰 분야에는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반면 영국의 자치경찰감은 모두 비非경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지 몰라도 영·미계 경찰에 대한 문민 통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영국의 자치경찰감 입후보 자격은 영국과 에이레 출신, 영연방공화국 출신, 혹은 유럽연합 출신으로서, 잉글랜드와 웨일스 거주자이면 된다. 임기는 4년이며 재선까지 가능하다. 자치경찰감은 자치경찰청장(Chief Constable) 임면권을 가진다. 런던 광역시와 맨체스터광역시의 경우 자치경찰감은 나머지 시·도 지역과 달리주민 직선으로 선출된 시장이 겸임하며(자치경찰감 담당 부시장을 시의회 동의를 거쳐 임명),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해당 지역 정부가 경찰권을 행사한다.

2012년 11월 15일 영국 본토(런던 광역시를 제외한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 41개 시·도에서 최초의 자치경찰감 선거 결과 투표율은 전국 평균 약 16%로 매우 저조해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 후보자의 정당 소속을 보면 보수당 41명, 노동당 41명, 무소속 52명, 기타 3명, 자유민주당 24명, 영국독립당 24명,영국민주당 5명, 영국자유당 1명, 녹색당 1명이었다. 당선자는 보수당 16명, 노동당 13명, 무소속 11명, 기타 1명이었다. 2012년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 1기 자치경찰감으로 하원의원이나 장·차관 출신을 선호한 지역 주민은 6%에 불과한 반면 59%는 전직 경찰관이 당선되기를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5월 5일 2대 자치경찰감 선거결과를 보면 직선제 시장이 자치경찰감을 겸임하는 런던, 시티 오브 런던, 맨체스터 3개 시·도 지역을 제외한 총 40개 시·도 중보수당 20명, 노동당 15명, 웨일스민족당 3명, 무소속 2명이 당선됐다. 입후보자 당적은 보수당 40명, 노동당40명, 웨일스민족당 4명, 영국독립당 34명, 자유민주당30명, 녹색당 7명, 무소속 25명, 기타 정파 8명이다. 전체출마자 중 여성은 15%인 29명인데 맨체스터가 포함된 2012년에 비해 3% 감소한 수치이다. 이중 여성 PCC 당선자는 8명으로 전체 당선자 40명의 20%로서 2012년에 비해 5% 증가한 수치이다. 1기 자치경찰감 무소속 당선자 12명 중에는 전직 경찰관 8명, 웨일스 지역 최고 법정변호사 1명, 전직 비행기 조종사 1명 등이 포함돼 있다.

2016년 선거의 투표율은 26.6%로서 역시 저조하나 2012년에 비해서는 11.5%나 증가한 수치이다. 1차 개표집계에서 당선인은 노동당 4명이 유일하다. 나머지 당선인 36명은 모두 2차 개표집계에서 당선이 확정됐다. 1차 표 집계에서 거부된 표는 31만 1천 표로 전체 표의 3.4%로서 2012년에 비해 0.6% 증가한 수치이다.

과거 영국의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는 시·도의회 의원들이 2/3 내지 1/2을 점하고 나머지 위원들은 그 시·도의회 의원들로 이뤄진 자치경찰위원들이 일반시민이나 전문가 중에서 임명했으며, 이들이 위원장을 선출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민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자치경찰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다는 오랜 세월에 걸친 비판과 지적에 따라 마침내 자치경찰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감도 과거 기초의원, 광역의원에 대한 간선, 그것도 이중간선이라는 폐단 때문에 주민 직선으로 전환한 바 있다.

영국 정치구조가 내각제이듯이 시·도지사도 내각제로서 영국의 시·도지사 선출은 우리나라처럼 주민 직선이 아니라, 시·도의회 의원 선출에서 다수당이 된 정당에서 주민 직선 없이 시·도지사를 맡는 구조로 돼 있다. 그런데, 런던 광역시와 맨체스터 광역시의 경우 시장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게 바뀜에 따라 이 두 곳은 주민 직선 시장이 자치경찰감을 겸임한다. 런던의 경우 ‘경찰담당 부시장’을 임명하고 이전의 런던 광역시의회(MPA)가 하던 자치경찰위원회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게 하고 있다. ‘런던 광역시 자치경찰감 시장사무소(MOPAC)’가 그것이다. 나머지 시·도 역시 주민 직선 자치경찰감이 이전의 자치경찰위원회가 하던 구조와 역할을 모두 그대로 수행한다.

우리나라도 시·도 자치경찰감 혹은 자치경찰청장을 교육감처럼 주민 직선으로 뽑아 명실상부한 자치경찰전환을 이뤄내야 하며, 국민의식 수준 역시 이미 이를 능히 감당해낼 수 있다고 본다. 기초단체장이나 의원의 정당공천 못지않게 자치경찰 전환이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 중의 기초를 닦는 일이 될 것이다. 영국의 자치경찰감 주민 직선 제도는 이미 우리나라 교육감주민 직선에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치경찰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교육감 주민 직선처럼 경찰감도
서식스(Sussex) 카운티의 1기 자치경찰감 케이티 본(Katy Bourne)은 “자치경찰감은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Newstatesman, 16 Nov 2014). 자치경찰감은 영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정치권에 대한 반감 정서를 십분 활용하면서, 하원의원들이라는 정치적 기득권 세력과는 구별되는,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 인구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영국의 하원의원 수가 600명 이상인 상황에서 자치경찰감은 주민 직선인 런던시장 정도는 아니지만 하원 평의원보다는 권한이 훨씬 더 큰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도 자치경찰감 주민 직선제는 아직 일본도 실시하지 않고 있는 제도이니 우리나라에선 언감생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시·도 교육감 직선제는 일본도 하지 않는 것을 우리나라가 앞장서서 하고 있으니, 경찰전문가인 필자로서는 우리나라의 앞선 교육자치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경찰노조를 금지당하는 상황에서 법외노조로 탄압받고 있긴 하지만, 전교조 역시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듯이.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장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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