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외국정책사례

복지국가(Sozialstaat) 그리고 고령화
최근에 EU 소속 국가 중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핵심 역할을 하며 국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독일의 복지 모형과 사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독일의 복지의 수준과 위상이 유럽뿐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독일의 정치력,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다양한 분야와 대상을 다루는 영역이다. 그 대상 중 ‘노인’은 복지 영역에서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독일에서는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이미 2000년 초반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1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20%를 초과하면서 독일은 급속도로 ‘초고령화’를 맞이했다. 이러한 고령화의 주요 원인인 저출산 현상과 기대수명의 연장이 계속되는 한 65세이상 노인의 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인데, 독일 통계청은 2060년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 중 무려 3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년, 낭만 또는 부담
이 같은 인구학적 변화는 지면의 통계나 보고에서 확인할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오랜 독일 생활에서 필자가 얻은 소득 중 하나는 ‘일상 속의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오랜만에 해가 나오면 집 근처 숲길을 산책하거나 작은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일, 또는 시청 앞 광장이나 중앙역광장에 열리는 3일장이나 벼룩시장을 구경하는 일, 가끔씩 연극, 콘서트,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Theater)을 찾는 일 등은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한 유학생활에 활력을 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은 ‘아, 내가 또 가장 눈에 띄는 존재이구나!’ 하는 것이다. 외국인이기도 하지만 나와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반백 또는 백발의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언뜻 상상해보면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노년의 생활을 떠올릴 수 있다. 상당히 낭만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년의 삶이 이러한 이상형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고령화된다는 것은 노인의 인구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사회적 부담이 커짐을 의미한다. 노화로 인해 일반적으로 의료와 돌봄 분야의 서비스 수요가 증가할뿐 아니라 나아가 ‘삶의 질’을 유지하고 향상하기 위해 주거, 환경, 사회적 활동 등을 위한 다양한 욕구들이 발생한다. 다행히 독일은 기본적으로 안정된 사회보장제도와 체계적인 복지서비스로 이러한 사회적 리스크를 비교적 잘 대응하며 해결해왔다. 그러나 고령화에 따른 잠재적인 사회적 위험요소들에 대처하고 또한 예방하기 위해 독일은 다각적인 정책적 시도와 실행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노인복지제도의 공급 및 실행자들
독일 사회복지는 기본적으로 ‘사회법(Sozialgesetzbuch: SGB)’에 근거를 두고 실행된다. 노년층의 법정사회보장을 위한 해당 근거는 사회법 5편의 ‘법정건강보험(Gesetzliche Krankenversicherung : GKV)’, 6편 ‘법정연금보험(Gesetzliche Rentenversicherung : GRV)’, 11편 ‘법정요양보험(Gesetzliche Pflegeversicherung : GPV)’, 12편 ‘사회부조(Sozialhilfe)’이다. 노동자로서 이미 법정건강보험(GKV)에 가입됐던 모든 은퇴노인들은 지속적으로 법정건강보험(GKV)의 테두리 안에서 질병예방과 병원진료,재활까지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법정연금보험(GRV)을 통해서 공무원, 일반 노동자, 자영업자 등이 은퇴 이후에 연금 수급권을 지닌다. 또한 법정요양보험(GPV)은 법정건강보험 가입자 모두가 해당되며, 요양 및 돌봄의 필요성이 발생할 경우 요양 등급에 따라 ‘재가’, ‘부분입소(주·야간 보호 및 단기보호)’, ‘입소’ 서비스가 제공된다. 사회법의 맨 마지막 편인 ‘사회부조’에서 노인복지를 위한 서비스는 ‘노령부조(Altenhilfe)’로 이해할 수 있는데 ‘생계유지가 어렵거나 위급한 상황에 놓인 노인이나 장기적인 소득 감소에 처한 국내 거주자(사회법 12편 41조1항)’가 그 수급대상자이다. 이와 같은 법적 근거들은 노인들을 위한 매우 기초적인 ‘사회기본보장법’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노화로 인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요소들을 예방하고 대처하며 인간으로서 영위해야 할 기본적인 생활의 기반을 보장해주는 법적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 의해 노인복지 서비스를 실행하는 공급자들이 존재하는데 주요 서비스 공급자는 공적 부문에 ‘주정부’, ‘기초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부문의 ‘비영리자율복지단체’, ‘사립 및 기업 공급자’로 크게 구분된다. 여기서 ‘비영리자율복지단체(Freie Wohlfahrtsverbände)’는 독일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지역 사회 곳곳에 포진돼 중심 역할을 하는 복지서비스 공급기관이다. 그중 6개의 ‘최상위 단체(Spitzverbände)’가 기둥을 이루고 있다. 이들 단체는 대부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디아코니(Diakonisches Werk Deutschland)’는 1848년 설립돼 독일 전역에 2만 8천여개의 각종 기관들이 위치해있다. 개신교(Protestatismus)를 기반으로 하는 ‘디아코니(Diakonie)’와 함께 가톨릭(천주교)하에 1897년 설립된 ‘카리타스(Deutscher Caritasverband)’도 2만 4천여 개의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 1만 4천여 개의 기관을 두고 있는 ‘노동자복지단체(Arbeiterwohlfahrt)’는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SPD) 소속 노동자들의 복리를 위한 중앙위원회로서 1919년 설립됐다. 이 외에도 1920년 출발한 ‘평등권익복지단체(Der Paritätischer Wohlfahrtsverband)’는 1만여 개의 기관을, ‘독일 적십자(Deutsches Rotes Kreuz)’는 1921년 설립돼 현재 5천여 개의 법인을 두고 있다.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51년 재창립된‘유대인 복지협회(Zentralwohlfahrtsstelle der Juden in Deutschland)’가 비영리자율복지단체의 하나의 축을 이룬다.

연방정부의 정책기조
앞서 소개한 인구학적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한 노인복지 정책은 독일 연방정부와 ‘가족·노인·여성·아동·청소년 복지부(BMFSFJ)’에서 다음과 같이 표명하고 있다.

첫째, 노인들의 욕구에 따라 여가활동, 자원봉사 및 사회참여활동, 경제활동 참여를 자원해 ‘활동적 노화’를 구현하며 새로운 노년상을 제시한다.

둘째, 노화에 따라 증가하는 돌봄과 사회적 도움의 필요성 및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 대책을 마련한다. 해당 노인뿐 아니라 돌봄 가족 및 요양분야의 전문가를 위한 법적, 실질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셋째,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치매인구(현재 150만 명)를 고려해 당사자인 치매노인의 삶의 질 보장과 돌봄제공자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치매 진단 및 진료, 법적 보호, 각종 서비스 안내, 치매노인과 돌봄 제공자를 위한 포괄적 안내와 지침 등 다각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째, 인간의 기본욕구에 해당하는 ‘주거’와 관련된 조건들을 고령 친화적이고 편리한 주거 내부 및 외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인의 자립적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 및 구축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실행한다.

이 네 가지 주요 정책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자립적 노년생활’이다. 사실, 개인적·사회적 변화를 경험하며 노년 시기에 접어들어 자립적 삶을 영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즘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후생활을 하는 노인도 이전에 비해 많이 증가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스스로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노인이 존재한다. 더욱이 가족구조의 변화로 인해 노인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장애 또는 돌봄의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에는 해당 노인들의 ‘삶의 질’은 저하될 가능성이 크고 자립적 생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NRW 주정부의 고령사회 마스터플랜
이러한 노년의 개인적 문제들이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지며 연방정부뿐 아니라 16개의 각 주정부 차원에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들을 실행되고 있다. 이 중에서 독일 중서부에 위치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의 “고령 친화적 지역 사회를 위한 마스터플랜 - 노년의 자주적 삶을 위한 전략계획 및 수행계획(Masterplan altengerechte Quatiere. NRW - Strategie- und Handlungskonzept zum selbstbestimmtem Leben im Alter)”을 소개하고자 한다.

NRW 주는 이 마스터플랜을 기획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의학적 발달과 경제적 발전과 함께 많은 사람이 노년에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노년상은 돌봄·요양이 필요하고, 장애, 치매, 만성질환으로 인해 자립적인 삶의 영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NRW 주는 2011년 기준 1천 750만 명의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인구가 360만 명으로 20%를 차지하는 ‘초고령화’ 지역이다. 고령화 추세는 2050년까지 지속돼 대략 490만 명으로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돌봄이 필요한 인구는 현재 54만 8천 명이며 2030년에는 70만 명, 2050년에는 94만 5천60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급속한 노인인구와 잠재적 돌봄 인구의 증가는 지역사회의 ‘마스터플랜’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독과 고립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노년에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프레임워크를 조성하며 이를 위해 사회보장 시스템을 위한 재정 상태를 고려한 해당 전문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모든 사람이 사회 속에 참여하며 자주성과 자기 효능감을 성취하는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언제든지 현장에 직접 개입이 가능하고 개별적·지역적 준비 및 장치를 통해 수행하는 것이 기본방침으로 세워졌다. 실행 분야는 크게 네 가지로 ‘자기부양(self care, self supporting)’, ‘주거(habitation)’, ‘공동체적 생활(community experience)’, ‘자기역량 강화(self empowerment)’로 나뉜다.

NRW 주의 이와 같은 ‘고령 친화적 지역 사회를 위한 마스터플랜’하에 각 지역 사회에서 개별적으로 관련 모델 프로젝트가 실행됐다. “우리 동네에서 이웃과 더불어(Im Quartier bleiben - Nachbarschaft leben)”라는 프로젝트는 NRW 주 내 3개의 지역에서 2012년부터 2013년 중반까지 진행됐다. 실행 지역은 ‘Duisburg-Bruckhausen/Ostacker’, ‘Alt-Erkrath’, ‘Mönchengladbach-Wickrath’이다.

이 세 지역은 노년시기 또는 돌봄이 필요한 경우 주변 생활환경 및 인적 네트워크의 신뢰성이 요구되는데 노년시기에는 이러한 구조(Infrastructure)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사회 내에서 돌봄, 지원, 교육, 문화, 각종활동을 위한 복지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각 지역 프로젝트의 공통 목적은 고령 친화적 지역 사회를 공동으로 구성하는 것이며 그속에서 개인적이고 자립적인 노년의 삶을 구현시키고 노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서 앞서 소개된 지역의 ‘비영리자율복지단체’들과 ‘교회 및 종교기관’, ‘민간공급기관’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첫 번째 실행지역인 ‘Duisburg-Bruckhausen/Ostacker’는 독일 공업 지역의 심장부인 ‘루어지역(Ruhrgebiet)’중 하나의 핵심 도시로서 현재는 예전의 명성을 뒤로하고 젊은 층 인구가 급감해 대부분 노인만 거주하는 ‘쓸쓸한’ 지역이 됐다. 배우자 사별 또는 직장으로 인한 자녀들의 원거리 거주로 노인 1인 가구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가운데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더욱 대두되는 곳이다. 이 지역 담당 교구의 개신교 교회와 독일 적십자(DRK) 지역법인이 함께 노인들의 고독과 고립에 대해 예방하고 대처하며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에 이웃 간 상호협력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두 번째 지역인 ‘Alt-Erkrath’에서는 카리타스(Caritas)와 디아코니(Diakonie) 소속 개별기관들의 협력으로 지역 사회의 노인에게 소모임을 통해 사회적 접촉을 연계하고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며 상담이 필요한 경우 그룹을 형성하기도 한다. 또한 노인이 지역 사회에 사소한 일에도 참여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며 장보기 서비스, 차량지원, 세탁 서비스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독거노인들을 지원한다. 이러한 사회적 서비스는 이 지역의 노인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구축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세 번째로 ‘Mönchengladbach-Wickrath’에서는 노동자복지단체(AWO), 지역의 개신교 교회공동체가 함께 이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에게 오래된 이웃과 더불어 친교를 나누고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지역 사회와 이웃에 대한 상호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시내 중심가의 작은 상점 주인이 노인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벤치를 마련하는 등 노인의 일상생활을 위한 이웃의 작은 배려까지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한다.

노년의 삶의 질을 위해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이것은 위의 프로젝트뿐 아니라 독일의 전반적인 노인복지 정책 실행에 앞서 던져지는 질문이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인구학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다. 예상치 못한 변화에 적응하며 대처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때로는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변화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지하게 우리 각자에게 물어봐야 할 때이다. “어떻게 잘 늙어가고 싶은가?”

이 질문의 대답을 위한 선행조건들을 지금까지 소개한 독일 노인복지제도와 정책기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현대 노년의 삶의 다양성을 인식해 노인의 다양한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 노년의 삶의 질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자주성, 자립성에 의해 보장된다. 노인복지서비스의 전달과 그 질적 보장을 위해 정부, 지자체, 지역 사회, 이웃 간의 밀접한 연계성(connecting)과 연대성(solidarity)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노인복지서비스의 내용과 실행절차에 대한 문제해결과 개선을 위해 노인이 직접 참여해 그방법을 함께 논의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민국에 주어진 숙제는 많다. 그러나 함께, 더불어 고민하는 것과 분야와 세대, 계층을 아우르는 연대의 끈이 우리에게 그 실마리를 던져줄 것이라 생각한다.

송영신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송영신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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