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학/공공철학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1848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당이라는 유령”이라는 유명한 문구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을 발표했다. 당시 유럽인에게 ‘사회주의’ 혹은 ‘공산당’이라는 단어는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유령’ 같았다.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존재를 부정하기도 힘든 그 무엇. 더구나 그 무엇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었기에 사회주의와 공산당에 대한 당대의 관심과 논란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다른 유령의 배회를 목격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 운영자인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이 주도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세계적 화두가 됐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선진국에서 2020년까지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다소 과격한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유명 언론이나 연구소에서 미래에 사라질 일자리 목록을 구체적으로 작성해 퍼뜨리면서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효과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더해 정부나 기업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는 명분 아래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R&D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1, 2, 3차 산업혁명의 특성과 결과에 비추어 볼 때 과연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4차산업혁명을 준비하거나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기대나 우려를 드러내는 것은 결국 유령에게 휘둘리는 것일 뿐이다. 170년 전 유럽인처럼.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해명한 이론은 아직 없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 유통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인공지능, 빅 데이터와 스마트 데이터, 사물인터넷, 가상물리시스템 등이 이 변화를 추동하는 물리적 조건이라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스마트 팩토리 같은 변화된 생산 방식이나 드론을 이용한 유통 방법의 혁신 사례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파편적 정보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의 실질적인 내용과 그것이 초래할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를 만한 실체적 변화는 아직 없으며 4차 산업혁명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거나 작업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적 설명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에너지와 소통 수단 및 방식의 전면적 변화에 근거한 전체 사회 변혁을 산업혁명 기준으로 설정한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현재진행중인 변화를 혁명이라 볼 수 없다는 회의적 입장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유무나 실체를 정확하게 규명하기 힘든 이유는 산업혁명 자체가 산업계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의 산업혁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산업혁명은 사회 전체의 변화를 포괄하는 현상이다. 이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여러 가지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그 원인과 진행 과정 그리고 결과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노력이 4차 산업혁명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이름을 어떻게 붙일 것인지를 따질 때가 아니라 미래 사회와 인간 삶을 크게 바꾸게 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Industrie 4.0과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의 전체적 특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산업계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상당 부분이 독일의 Industrie 4.0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독일 제조업 혁신을 이끌고 있는 Industrie 4.0이 4차 산업혁명의 여러 속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Industrie 4.0을 주도한 조직은 독일 제조업 발전의 밑그림을 그리는 ‘독일공학한림원아카텍(Acatech)’이다. 아카텍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과학기술 자문역할이지만 아카텍에는 여러 나라의 비즈니스 전문가도 참여하고 있다. 즉 아카텍은 과학과 비즈니스의 융합 조직으로 정부와 사회단체가 필요로 하는 과학, 기술 자문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이슈를 선정해 연구를 진행하는데 그중 하나가 Industrie 4.0이다.

"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도 큰 위험을 겪지 않은 독일 비결의 핵심은 제조업 "

Industrie 4.0의 출발은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됐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경제 위기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 파장을 몰고 왔으며 유럽 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일랜드, 스페인, 그리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가 한 때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으며 세계적 은행 ‘도이치 방크(Deutsche Bank)’의 위기설이 나돌 정도로 독일도 큰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독일은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금융 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독일의 제조업 덕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금융 산업의 붕괴로 발생한 위기를 제조업의 힘을 이용해 돌파한 것이 독일의 저력이었다.

독일 정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혁신하는 것이 안정적 경제 성장의 핵심이라 판단하고 다양한 정책을 개발했다. Industrie 4.0은 독일 제조업 경쟁력 유지, 강화를 핵심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생산 효율이 높은 스마트 팩토리 확산을 통해 이를 달성하고자 한다. Industrie 4.0 이전에도 독일에는 높은 생산성을 갖춘공장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지역이나 개별 기업 특성에 따라 운영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Industrie 4.0은 이러한 기업을 조직화해 분업과 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다품종 소량생산 즉 개인 맞춤형 상품을 신속하게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이 제조업과 유통업 경쟁력 강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것에 착안해, 독일은 기업들의 유기적 협업이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수많은 소비자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에 생산과 유통의 분권화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따라서 독일의 Industrie 4.0에서 추구하는 스마트 팩토리는 생산시설이 자동화된 하나의 공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생산 시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생산과 유통의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로봇이나 자동화기기 활용을 확대를 통해 재구축된 생산라인을 스마트 팩토리로 보는 시각은 스마트 팩토리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독일에서 이와 같은 스마트 팩토리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실질적인 플랫폼 구축이 가능했던 여러 이유 중하나는 아카텍이 주도한 사이버물리시스템(CPS) 연구에 근거한다. CPS는 물리적 대상이나 제조과정을 가상의 대상과 연결하는 정보 시스템을 의미한다. CPS를 활용하면 원거리의 설비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뿐아니라 시스템들도 실시간으로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CPS를 이용해 클라우드상에 현실 제품과 똑같은 디지털 쌍둥이 제품을 우선 올려놓고 현실의 여러 재료와 장비를 결합해 생산 과정과 결과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까지 설계할 수 있다.

아카텍은 CPS에 생산과 유통 방식을 변경시키는 것이상의 가능성이 있음을 간파했다. 왜냐하면, CPS를 경제 시스템으로 확장하면 제품 디자인부터 설계, 설비 과정 조합, 제조, 배송까지 디지털화된 자료를 통해 한 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CPS를 활용하면 재료, 설비, 생산 인력이 디지털화된 기술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됐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예측하고 시험해 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CPS상에서 구현되는 ‘디지털 쉐도우(digital shadow)’다. 이를 이용하면 오류를 예측하고 생산 요소의 결합과 과정을 신속하게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한 생산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 스마트 팩토리의 목표인 개인 맞춤 제품의 대량생산과 유통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CPS의 토대를 이루는 기술이 사물인터넷(IoT)이다. 사물인터넷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네트워크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IoT를 통해 수집된 엄청난 양의 정보(Big Data)를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분석해 유용한 정보(Smart Data)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CPS활성화에 빼놓을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면, 독일 Industrie 4.0 정책의 핵심은 스마트 팩토리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 유통하는 것이며 이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 데이터라는 물리적 기반 위에서 구축되는 가상 물리시스템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Industrie 4.0이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Industrie 4.0의 핵심 특성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특성을 추론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Industrie 4.0이 만나는 지점은 산업 간 경계의 무너짐이다. 이러한 경계 붕괴는 여러 수준과 영역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세계적 IT 기업인 구글(Google)과 애플(Apple)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고 현대기아자동차가 IT 기업과 연합해 무인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경우처럼 IT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경계를 허물고 융합된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우버(Uber)가 자동차기반 서비스 사업을 주도하고 호텔이 없는 에어비엔비(Airbnb)가 관광레저 산업의 태풍의 눈이 된 것처럼 산업 간 구분이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해 기존 모델을 대체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Penny magazine’에 실린 삽화(Luddite Movement)
19세기 영국의‘ Penny magazine’에 실린 삽화(Luddite Movement)

독일 Industrie 4.0 사례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개별 기업들이 협업을 통해 생산 방식 자체를 변경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전 세계적 수준에서, 거의 대부분의 산업군과 업종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특성이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생산과 유통 플랫폼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 플랫폼 위에서 수많은 기업과 사업군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면서 생산과 유통을 수행한다. 특히 이 플랫폼에서 융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Industrie 4.0을 통해 독일 수출의 핵심 품목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것이 상품, 기술, 서비스가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점은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의 높은 연관성을 정확하게 보여주는것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이해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특성을 플랫폼이라 규정했을 때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여러 가지 우려의 대응 방안을 새로운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삶에 대한 논의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걱정이 바로 불평등 심화다. 불평등에 대한 우려는 크게 일자리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결과 상당수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많은 사람이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비관론으로 이어진다.

다음으로 4차 산업혁명 이후 재편된 사회에서는 고급 교육을 받은 인력만이 생존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이는 현행 교육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교육결과에 따른 사회경제적 성공 가능성이 차등적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져 4차 산업혁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라는 우려를 확산시키고 있다.

"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와 노동기회가 생겨나는 기회일 수 있어 "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줄어드는 한편 잘 교육받고 혜택을 받은 소수의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비단 4차산업혁명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상존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이후 불평등이 이전에 비해 더 심화된다고 해도 사회적 논의와 대안 마련을 통해 이를 예측하고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속성에 근거해 미래 사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려의 원인은 플랫폼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속성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해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것이라는 전망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자동화기기의 활용이 확산되면서 인간의 노동 즉 직업을 기계가 대신할 것이라는 예측에서 비롯된다. 이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결과가 사회적으로 미친 파장과 일맥상통한다.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했던 고도의 지적 작업마저 기계가 대신하는 것을 넘어 인간을 넘어서는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이 미래 인간 노동의 영역이 급격하게 축소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진 것이다.

"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에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필요한 인재상이 바뀔 것 "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에만 주목하는 것은 산업혁명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다소 부족한 것과 함께 앞서 논의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 2, 3차 산업혁명도 일자리를 둘러싼 많은 논쟁과 부작용을 촉발시켰다.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기계화와 대량 생산을 핵심으로 하는 1차 산업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이처럼 산업혁명의 과정에서는 항상 일자리와 불평등을 둘러싼 갈등이 등장했으나 노동자 대부분이 실업자가 된 경우는 없었다. 사라진 일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으며 심지어 이전에 없던 많은 직업군과 일자리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 과정과 결과에 따른 일자리 문제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자동화 기기의 위력적인 힘에 의해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강도가 전례 없이 강하다 해도 그 반대 작용으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생겨날 수도 있다. 특히 산업과 산업, 기업과 기업사이의 경계 붕괴와 플랫폼 형성을 핵심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특정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또 다른 노동의 기회가 열리고 일자리가 제공되는 것도 가능하다. 산업과 기업의 융·복합을 통해 발생하는 새로운 생산과 유통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일자리감소와 실업 그리고 이로 인한 불평등 문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기보다는 새롭게 발생할 노동 수요와 일자리에 주목해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리고 하나의 직무 수행에 능숙한 노동자가 다양한 직무 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사회적 수준에서 고민하는 것이 합리적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평등의 또 다른 원인으로 주목받는 교육의 문제도 유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차등적 교육에 따른 불평등 심화 문제를 우려하는 입장은 기본적으로 기존 교육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해 있다. 현행 교육 특히 대학 교육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른바 전문직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인을 길러내는 교육 과정을 강조하며 이러한 과정을 효과적으로 이수한 사람은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이 현행 교육 시스템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이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군만이 생존하게 될 것이라는 다소 맹목적인 믿음과 맞물리면서 교육 불평등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 논쟁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물론 4차 산업혁명 이후에도 전문직은 여전히 존속할 것이다. 어쩌면 고도로 숙련된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의 수요가 증가할 수도 있으며 이를 위한 전문가 육성 교육 과정도 유지·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의 핵심 역량은 협력적인 창의성이다. 특정 분야에 적합한 전문적 능력을 갖춘 사람도 필요하겠지만, 플랫폼 위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노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는 대학 교육 과정은 물론 교육 과정 전체가 개편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공 교육을 중심으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를 길러내는 교육에서 교양 교육을 중심으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길러내는 교육 과정이 중시될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 과정의 개편은 교육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보다 균등한 교육기회가 제공되는 기회가 되어 직업 선택과 수행의 기회가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3월 29일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본 한국형 4차 산업혁명 미래 모델’에서 기조강연 중인 헤닝 카거만
3월 29일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본 한국형 4차 산업혁명 미래 모델’에서 기조강연 중인 헤닝 카거만

결국, 실업과 교육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이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의 등장이라는 전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노동환경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공유,분배하고 협업적 노동 수행에 필요한 교육 시스템 구축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공적 논의를 통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플랫폼 환경에서 일자리와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논의를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Industrie 4.0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자리와 교육 시스템전환 문제를 철저하게 공적 영역에서 고민하고 해결하고 있다.

일자리의 경우 정부, 기업, 학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소통의 창구를 마련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했다. 일자리 전환과 실업 그리고 직업 교육에 가장 민감한 주체가 노동자들인 만큼 노동자의 희생이나 양보가 필요한 부분과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의 업스킬링(upskilling)을 보장할 수 있는 부분 등을 명확하게 구분해 노동자들의 설득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경우 플랫폼 시대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해 ‘모듈식 교육’과 ‘마이크로 러닝’ 강화 등을 추진하되 이를 철저히 공교육의 영역에서 소화해냄으로써 차등적교육 기회에 따른 불평등 논란을 줄이는 한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을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것은 물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정부, 기업, 학계 심지어 개인이 각각 수행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상황일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자세로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구호에 거쳐서는 안된다. 각계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형성해 4차 산업혁명의 특성과 변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한편, 일자리와 교육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아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평적 소통과 역할, 책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 직업 교육, 업무 수행을 위한 교육 과정 개편 등을 체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불분명한 위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치헌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치헌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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