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Ⅰ ‘20년’ 주민자치를 다시 생각한다

주민자치가 한국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주민자치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의 주요한 가치로 새롭게 도입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들의 자치를 규정하였던 지방자치법에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주민자치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법을 보완하였다는 점에서는 주민자치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주민자치라는 용어는 1999년 읍면동 폐지를 검토하면서 축소된 읍면동사무소의 빈공간을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서 주민자치센터라는 사업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즉 이때 주민자치센터를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주체로서 주민자치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민자치 방향성 상실은 통합형과 주민조직형 시범실시 부재에서 출발

 문제는 이때 주민자치위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과연 이런 구조에서 주민자치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점이다. 즉 읍면동사무소에 읍면동장과 지방공무원들이 읍면동사무소에서 읍면동의 행정사무를 처리하고 있어 주민자치가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주민자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주민자치의 개념을 극히 협소하게 사용한 셈이다.

추후에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것은 주민자치위원회는 단지 읍면동사무소의 행정사무를 운영하는데 일부의 주민이 참여하는 것에 불과하고, 읍면동장의 행정사무 처리에 대한 자문을 하는 정도의 법적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 당시 학자들도 주민자치라는 것은 시민사회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지 굳이 행정에서 법제도를 통해 규정하여 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인식 하에서 주민자치위원회는 임의단체 취급을 받았고 다른 지연단체 중 하나로서 인식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주민자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논의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민자치를 제대로 해보자는 진지한 논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시군행정통합을 하는 행정체제개편을 시도하는 중 통합된 시군의 규모가 너무 커지고 단체자치의 커진 규모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읍면동에 제대로 된 주민자치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그것이 2013년도에 특별법을 통하여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라는 방안으로 나타났다.

당시에 제대로 된 주민자치를 위하여 3가지의 형태가 검토되었다. 현재의 읍면동사무소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주민자치를 위한 사무와 역할을 확대 강화한 ‘협력형’과 읍면동사무소를 집행기관화하고 이에 대한 의사결정기관으로서 주민자치회를 두는 ‘통합형’이 있었다. 또 하나는 읍면동사무소를 완전 폐지하고 주민자치회가 읍면동의 의사결정기구가 되는 것으로 자체적인 집행기구로서 민료기구를 둔 ‘주민조직형’이 있었다.

한국의 주민자치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된 계기는 바로 여기서 3가지 주민자치회 모형을 각각 시범실시해 보면서 제대로 된 주민자치에 대한 실험을 해 보았다면 좋았을 것인데 통합형과 주민조직형은 현재의 법제도상 위법이라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인해 시범실시도 하지 못한 것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한국의 주민자치 논의는 읍면동사무소라고 하는 행정통치 관료조직을 그대로 둔 채로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및 전면실시 논의로 이어져 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민자치의 보다 바람직한 모형들에 대해서는 배제해 버림으로써 현재 한국의 주민자치는 그 길을 잃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관료제화·중간지원조직 문제 등과 대면한 주민자치

 주민자치회를 시범실시하면서 한국의 주민자치는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게 된다. 즉 주민자치에 마을계획단 사업과 주민참여예산제도와 주민총회, 그리고 주민세 상당분을 주민자치회의 예산으로 배정하게 되는 융복합이 일어나는 것이다.

주민자치제도를 둘러싼 융복합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서울형 주민자치회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에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가 아니라는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박원순 시정에서는 마을공동체만들기 사업을 통해 자치의 씨앗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그 모델이된 것은 성미산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데 육아공동체로부터 시작해 생활협동조합, 대안교육, 마을방송국, 성미산생태보존, 카 쉐어링 등의 공유생활 등을 통해 마을공동체가 자치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마을공동체사업은 동네일에 참여하는 주민모임을 만들고 이들이 서울시의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활동가로서 자치의 풀뿌리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민선 5기에 만들어진 마을모임들은 민선6기(2014~2018)에 와서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사업이나 마을계획단의 씨앗이 되어주고, 동 단위 공론장으로서 기획된 마을총회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하는 리더들을 형성한다.

서울형 주민자치회 설계 당시 권한을 가지는 참여를 위해 ‘권한의 민주화’를 추구하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주민자치회가 얼마나 대표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이를 위해 주민의 인구구성비에 따른 성별, 연령별 쿼터제를 통해 비례성을 구비하고 위원의 선임방식도 추첨제를 도입해 직접민주제적 형식을 수립하였다. 또 권한의 실질화를 위해 주민참여예산제(500억원)나 협치예산제, 시민참여예산제 등의 제도와 융복합을 시도해 서울형 주민자치가 권한을 가진 자치가 될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 더불어 민선 7기 공약사항이었던 주민세(개인균등분)를 주민자치회가 결정하도록 하고 공론장의 숙의성을 구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

다시 말해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마을공동체만들기사업에서부터 시작하였지만 이 사업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참여제도들이나 행정제도들과 결합하였고, 일정한 시기(2016년 7월 26일 서울시 기획조정회의)에 주민자치위원회와 서울시 특유의 동 단위 주민참여 정책들이 통합되면서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설계된 것이다. 이 제도는 그 이후 대전광역시나 세종특별자치시 등의 대전형 주민자치회, 세종형 주민자치회 식으로 각 지역별 고유명사를 가진 주민자치회로 확산되었다.

이 시점에 주민자치 관점에서 근본적 문제점으로 제기된 것이 바로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주민자치사업단이 한시적으로 주민자치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으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민사회의 주민자치를 통제하고 규제하는 역할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또 주민자치에 사용되는 예산도 조직운영을 위한 인건비가 오히려 주민자치사업비보다 커서 또 하나의 관료제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국회에 제출된 주민자치기본법 같은 몇 개의 법안은 주민자치를 법률 제도화한다는 의미에서 일견의미가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그 구조가 여전히 행정사업을 연장하고 위탁되는 것이어서 이것은 ‘자치’가 아니라는 비판과 반발을 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자기입법·자기통제 가능해야 진정한 ‘자치’...
토론·합의하는 민주적 과정 필요

 자치는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고, 공간과 사람이 있어 다스릴 대상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치의 3요소로 사람, 토지, 자치권을 꼽는데, 자치권이라는 것은 자치할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때 가능하다.

자치의 기본개념으로서는 자기입법과 자기통제가 가능해야 하는데, 자치의 구성원들이 공공성을 가진 입법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입법과 그 법에 따라서 집행할 수 있는 집행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자기통제가 기본개념이다. 여기서 자치통제가 가능하려면 그 법을 집행할 수 있는 조직이나 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자기입법이 가능하려면 그 법을 공동체 혹은 공공체가 모여 다수결이든 전원일치든 입법에 토론하고 합의하는 민주적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치의 개념은 국가공동체 수준이든 지방자치정부 수준이든 혹은 구역공동체 수준 등에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자치의 개념을 특정 계층에만 적용하기로 하면, 그 자치 개념이 적용되는 공간은 자치공간이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은 통치공간이 되어 버린다.

즉 한국의 경우 자치와 관련하여 계층과 구역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시도계층과 시군구계층, 읍면동계층이라고 하는 계층 구분을 통해 국민생활에 필요한 역할과 기능 분담이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자기입법이 가능한 공간은 국가공동체 공간으로서의 국회, 시도계층과 시군구계층에 설치되어 있는 지방의회다. 국회와 지방의회는 대의민주주의방식에 의해 주민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자를 선거로 4년에 한번 선출하고 그들을 통해 공공체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의제적 방식이 진정한 국익과 공익을 위해 일하지 못하는 부패와 적폐가 드러나자 촛불혁명 같은 시민이 직접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직접민주주의와 시민의회 같은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즉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 혹은 숙의민주주의가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에 대면하게 된것이다.

문제는 직접민주주의를 국정레벨이나 시도레벨, 시군구레벨에서 적용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이에 읍면동계층에 직접민주주의를 적용하는 자치시스템을 구축해 봄으로써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읍면동계층을 보면, 이미 상위 정부에서 통치 조직으로서 읍면동사무소(혹은 주민센터)가 설치되어 읍면동장과 지방공무원조직이 말단행정을 담당하고 있고, 그 행정사무의 범위는 읍면동계층 주민생활과 관련된 사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국가 혹은 상위 지방자치단체의 직접 통제를 받는 관료제조직이 이미 읍면동계층의 행정 및 자치사무를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치’의 기본개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즉 아무리 주민자치(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주민 참여 조직을 만들고 주민총회라는 형식의 주민자치 조직을 두더라도 이 자치조직이 전유하는 공간과 그에 통용되는 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기입법이 통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치라고 하기 어렵다. 읍면동사무소라는 행정통치 조직이 읍면동 공간을 선점해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구조에서는 자치개념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것이다.

읍면 지자체화, 동리 직접민주주의 가능한 구조구축이 대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치개념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재설계하는 것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주민자치가 논의되던 1999년의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 읍면동사무소를 폐지하려 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읍면동계층에 주민자치를 통한 지방자치를 제대로 설계하려면, 행정통치 조직이던 읍면동사무소가 읍면동 공간을 관리하고 다스리던 구조를 폐지하고 주민들이 자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

구체적 방법은 2013년에 주민자치회의 3가지 모형을 검토할 때 이미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통합형과 주민조직형으로 주민자치 시범실시를 하도록 해주민들이 읍면동계층 공간에서 자기입법과 자기통제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

주민조직형의 경우 매우 낯선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아파트단지의 공동생활 공간을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구조 속에 이미 자치개념은 들어와 있다. 즉 입주자대표회의와 아파트관리사무소, 그리고 아파트단지 관리규약과 이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공동주택관리법 구조 등을 통해 자치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형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시도와 시군구에 지방자치를 도입할 때 이미 국가의 통치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던 시도시군구행정 조직에 선거를 통해 지방의회를 설치하였던 것처럼 읍면동 계층에도 선거를 통해 읍면동 의원을 선출하고 읍면동의회가 읍면동사무소의 예산결산, 조례입법, 사무감사 등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자치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읍면에는 1952년에 도입되었던 읍면의회가 설치되어 지방자치단체화 된다. 군의회는 별도 선거로 구성하기보다 읍면의회 의원 중에서 일부를 군의회 의원을 겸직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연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리의 경우는 리총회를 통해 주민들 1년에 한번 전체가 모여 리장과 리세를 정하고 리의 공공서비스를 관리하게 된다.

동의 경우는 아파트단지의 입주자대표 중 일부를 동의원으로 활동하도록 하면서 시와 자치구의 의원중에서 자신의 선거구에 해당하는 동의 동장을 담당하도록 전환하고, 구의회는 폐지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시의회의 경우는 소의회제로 전환해 도시 전체 선거구에서 의원을 선출하도록 하여 도시 전체의 안목에서 도시정부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자치의 기본개념이 작동할 수 있도록 풀뿌리계층인 리와 아파트단지(혹은 거주구역)별로 주민투표 혹은 주민총회를 통한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고 그 대표성을 활용해 읍면동과 시군구의 행정계층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분권의 개념이 주로 국가와 시도 간 역할분담과 재정조정의 문제라면, 자치는 풀뿌리계층에서 주민들이 주권자로서 거주 공간의 생활공유 및 생활공공 서비스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주고 이를 위한 교육과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김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김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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