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대한민국이 늙어 간다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친화도시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GNACC) 가입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 Cities)는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안한 개념으로, ‘고령친화가 구현될 수 있는 정책 및 인프라 서비스 등이 조성된 도시’를 말한다. WHO는 2007년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가이드를 발표하고, 2009년에는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 플랫폼인 GNACC를 창설했다. 2010년 뉴욕이 최초 가입했으며, 현재 44개국 1천114개도시와 지역사회가 이 네트워크에 가입돼 있다. 이들 도시는 고령친화 노하우를 공유하고, 고령친화성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한다.

한국은 2013년 서울시가 최초 가입한 이래 5년간 6개도시만이 가입했으나 이후 지난해까지 4년 만에 28개 도시가 추가로 가입했다. 관련 기사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빅카인즈 언론검색을 살펴보면, 전체 정보제공 언론사의 고령친화도시 관련 기사 건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최근 경기도, 경남 의령군, 전북 완주군, 충북 괴산군 등 몇몇 광역 및 기초지자체가 GNACC 가입을 준비한다는 기사가 확인되고, 가입 과정에 2~3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WHO의 고령친화도시가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은 이유는 이미 전국적으로 심각한 고령화 이슈에 좋은 대안이 됐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평균수명 연장과 저출산으로 인한 급속한 고령화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은 이미고령화사회에 진입한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만 65세 이상 인구비는 15.7%이며, 2025년에는 2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의 65세 인구를 단순히 노인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그만한 의료비 지출과 질 높은 환경 관리가 필요하다. 그간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는 일반적이고 명확한 틀이 없었던 지자체들에 WHO가 제시한 고령친화도시의 아이디어와 네트워크 플랫폼은 시의적절했을 것이다.

고령친화도시 가이드는 ‘활력적 나이 들기(Active Aging)’를 위한 8개 지표영역 84개 점검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8개 영역의 공통적 지향점은 시민이 나이가 들어가는 중에도 지역사회 생활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aging in community)이다. 우선 물리적 인프라와 관련된 야외공간과 건물영역, 교통영역, 주거영역이 있으며, 다음으로 사회·문화·경제적 환경과 관련한 여가와 사회활동, 시민참여와 고용, 존중과 사회통합영역이 있다. 마지막 2개 영역은 정보화/지역사회보건과 관련해 의사소통과 정보, 지역사회 지원과 건강서비스영역이 제시돼 있다.

네트워크 가입은 고령친화도시가 되기 위한 정책목표를 명확한 지표를 바탕으로 설정하고, 점검항목 모니터링 결과를 공유하기로 하는 자발적인 약속에 가깝다. 즉 가입 그 자체로 고령친화도시임을 인증받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네트워크 가입은 어렵지는 않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요건이 단순하지는 않다. 다양한 시민의견을 수렴하고, 3개년 실행계획의 포괄성, 적절성,실행 가능성 등을 평가받으며, 조례 제정 등 실질적인 움직임 여부도 검토받는 등 절차가 필요하다. 지자체는 공식웹사이트를 구축, 운영해야 하고, 모니터링 지표도 선정해야 하는데, WHO 표준의 지표와 점검항목을 각자의 실정에 맞게 수정해 사용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지식공유와 모니터링은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과업이다.

노인이 아닌, 나이가 더 많은 분으로 이해해야
구체적으로 고령친화도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먼저 서울시는 2010년에 ‘2020 고령사회마스터플랜’,2012년 ‘서울어르신종합계획’을 수립하고 2013년에 고령친화도시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하면서, 6개 영역 35개 사업을 추진했다. 주요 성과로는 인생이모작 지원센터 설치,평생교육 강화, 베이비부머엑스포 개최, 어르신 일자리 창출, 독거노인 맞춤돌봄서비스, 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라인 적용, 고령자 전용 임대주택공급, 신노년 문화프로그램, 경로당 활성화 등이 꼽힌다.

2016년 가입한 부산시는 공공실버주택, 생애재설계대학, 노인친화공원, 무장애건물 확대, 저상버스 확대 등 물리적 인프라에 특화된 계획을 제시했으며, 2021년 9월에는 15분 거리 안에서 문화와 체육, 여가활동과 공동체생활을 할 수 있는 ‘15분도시’를 강조한 새로운 고령친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국외에서는 세계 최초로 가입한 뉴욕시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노인의 일자리 창출과 연결, 세대 간 자원봉사와 학습, 시니어센터 파트너십, 노인주택의 규정 마련, 수리지원, 노인거주지역 지원, 배리어프리, 건강증진 프로그램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물리적 시설 공급에 적극적인 광역지자체와 달리 기초지자체는 문화행사, 지역커뮤니티 운영에 더 관심을 보이고 시설 개선 또는 시설 이용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서울강북구는 2018년에 가입했는데, 시니어합창단, 실버악단등을 운영하고, 걷기 쉬운 도로, 야외활동을 촉진하는 공원을 조성했다. 역시 2018년 가입한 서울 양천구는 고령자 정보화교육, 스포츠교실, 맞춤형 일자리 제공, 산책로 만들기, 보행자도로 관리, 고효율 LED 가로등 설치를 통한 야간도로 확보 등을 계획했다.

WHO는 본래 시민 다수가 이미 노인이 된 도시가 아닌,시민의 나이가 들어가는 장기간의 과정을 뒷받침하는 도시를 강조한다. 반면 실제의 고령친화도시 사례들은 여전히 고령자를 노인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고령화와 노령화를 구분해야 할 가장 극적인 이유는,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역설적으로 고령자는 사회 다수를 구성하는 주류 집단이 되기 때문이다.

즉 모든 고령자를 별도의 배려가 필요한 특별한 인구집단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50년이면 우리나라 인구의 40%가 만 65세 이상이 된다. 100세시대에는 만 65세 시민의 기대여명이 30년이 넘는다. 이들을 다 똑같은 ‘어르신’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WHO가 초기의 노인친화지역사회(elder-friendly community) 개념을 고령친화도시로 전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고령화가 진행된 사회일수록 고령자들을 여러 측면의 특성을 가진 복수의 집단으로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만 65세 이상의 거대한 인구집단 안에서도 세분화된 나이와 교육수준, 그에 따르는 소득, 생활환경, 건강 상태에 따라 묶일 수 있는 하위 인구집단이 다양하게 나타날것이다. 만 65세의 고령자들은 폭넓은 사회활동과 새로운 일자리, 재교육을 고령친화의 최우선 요건으로 둘 가능성이 크다. 반면, 만 75세 또는 만 85세의 고령자들은 주거비용의 절감, 돈독한 이웃 관계와 지역 내 활동, 건강과 환경 서비스의 접근성 향상을 더 중요하게 볼 수 있다.

충분한 자산을 가진 고령자들은 자아실현부터 공동체활동까지 소득에 큰 부담이 없는 노후를 보내려고 하고 이를 잘 지원하는 도시를 고령친화로 이해하겠지만, 자산이 부족한 고령자들은 주택을 저렴하게 사용하고, 각종 공과금도 저렴한 도시를 고령친화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 비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고령친화도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유출돼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비수도권 지자체의 경우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기꺼이 중장년과 노년을 맞이해나갈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하므로 결국 고령친화도시는 전 연령을 고려한 정책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반적인 공공정책 조직문화의 틀 안에서 고령자 정책과 청년 정책은 별개로 만들어져 운용될 가능성이 높아 의식적인 상호보완 노력이 필요하다.

스마트기술 융합하되 장점과 한계 고려해야
WHO의 고령친화도시가 정보화 영역을 중요시함에도,고령친화도시의 기초를 형성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아직 스마트시티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빅데이터가 대중에 크게 알려진 계기였던 올빼미버스가 2012년이며, 4차 산업혁명 선언과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 바둑 랭킹 1위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이 2016년이다. 그동안 신경망기계번역 서비스가 시작됐고, 인공지능의 음성인식과 자연어 처리능력은 빠르게 향상됐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스마트기술의 발달은 정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노인은 신기술 숙지에 취약하다는 편견 때문인지 여전히 고령친화도시는 스마트기술의 적극적 활용이 더딘 편이다.

상술했듯 고령자의 범위를 더 넓게 본다면 고령자야말로 스마트기술의 혜택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집단이다. 스마트기술을 통해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광범위한 돌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헬스케어, 음식 배달 활성화,자율주행, 방범·방재, 안전 모니터링 등 상대적으로 신체활동성이 부족하고 교외 지역에서 생활하는 고령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서비스들이다. 지금까지는 이들 서비스가 기술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위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마저도 점차 해결하고 있어 세대 간의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는 곧 해소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하나의 혁신적 변화로 꼽히는 메타버스는 고령친화도시를 완성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 기본적으로 온라인 가상공간은 조작의 어려움만 해소하면 신체적 제한을 거의 받지 않으므로 고령자가 체감할 수 있는 친화성이 매우 높다. 디지털 트윈 등을 활용한 메타버스는 현실공간을 바탕으로 해 인지하기에 어려움이 적고, 인공지능을 통해 조작 어려움에 충분한 보조가 실현된다면 고령자들의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계도 존재한다.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고령자 집단 내부의 소득수준 양극화이다. 즉, 세대 간 디지털 디바이드는 곧 해소될지라도, 소득수준 간 디지털 디바이드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고소득 고령자와 저소득 고령자의 정보접근성과 활용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고령자의 인지적 약점을 보완하는 각종 기술은 고소득 고령자들의 생활 수준에 맞춰 판매될 것이다. 신기술의 완성도 향상은 시장 메커니즘에 바탕을 둔 기업의 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받기 마련이므로, 저렴한 스마트서비스는 기술적 결함을 안고 가거나, 그 보완이 늦춰질 염려가 있다. 이는 같은 고령자라 해도 스마트서비스 향유에 큰 질적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리적인 차원의 도시공간을 고령자를 고려해 조정해나가는 것도 스마트기술만으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고령친화도시의 중요한 미래과제이다. 시니어센터, 배리어프리 등 기존 고령친화도시 사례에서 물리적 공간에 대한 사회복지, 건축 측면의 고민은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고령친화도시라는 이름을 표방하면서도 근본적으로 개별공간을 벗어난 광범위한 공간의 맥락은 자세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신도시 근린주구, 즉 동네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령친화도시의 동네는 대형병원의 접근성도 중요하다. 또 같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라고 해도 고령자가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그 배치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임재빈 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조교수
임재빈 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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