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새 정부의 지방자치 과제와 전망

중앙에 손발이 묶인 지방
1987년 9차 개정헌법에서 지방자치 실시 관련 단서 조항을 삭제함에 따라 1991년에는 지방의원 선거, 1995년에는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130개의 조문 중에서 지방자치를 규정한 조문은 제117조와 제118조 두조문에 불과하다. 두 개의 규정만으로는 그간 성장을 거듭한 우리 지방자치의 규모와 역량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위해 좀 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제도 개선에 대해 모색해야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연방제 수준’의 과감한 자치분권을 약속했고 2018년 3월 26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헌법 개정안은 좁은 의미의 권력구조 개혁 문제와 함께 지방자치 영역을 포함하고 있어 전면적인 변화가 예고됐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불과 2년 후 2020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148명은 헌법상 헌법 개정안의 발의에 관해 ‘국민발안형식’으로 재도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헌법상 의결정족수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에 미치지 못해 폐기됐다.

이제 2022년 5월이면 세 정부가 출범한다. 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보다 체계적이고 확고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국가 최상위의 법규범인 ‘대한민국헌법’의 개정을 검토하고 또한 추진해야 할 시점에 이르게 됐다. 무엇보다 지금 현행 헌법은 지방정부를 자치의 주체로 인정하고 지위를 보장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법령을 집행하는 하급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즉, 헌법은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서 지역발전을 위해 활동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모든 중요한 결정은 중앙정부에 집중돼 중앙정부는 과부하에 시달리게 돼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기능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자치분권의 관점에서 현행 헌법의 문제점과 개헌의 필요성을 살펴보고 제대로 된 자치분권 실현을 위해 헌법에 담아야 할 주요 내용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현행 헌법의 문제점
1)지방정부의 하급기관화(「헌법」 제117조 법률우위의 원칙)지방정부는 자치입법권을 가지고 있지만 법령의 범위내에서 인정된다. 자치입법권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인정되므로 중앙정부가 법령으로 자치사무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하고 있으면 자치입법권을 통한 입법의 여지는 거의없다(법률우위의 원칙).

지방정부가 처리하는 위임사무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치사무에 대해서도 법령으로 상세한 지침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에 독자적인 지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지방정부는 독자적인 정책 구상에 의해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치 주체가 아니라 사실상 중앙정부의 하급 집행기관이 된다. 즉, 지방의 실패는 중앙정부가 법령의 형식으로 입력한 정책의 실패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법령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지방정부를 제한능력자로 취급하는 헌법(「헌법」 제37조 법률유보의 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에 근거가 없는 한, 법률에 의해서 위임을 받지 않는 한 조례로는 주민의 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에 관한 것을 규정할 수 없다. 이는 민법에서 정신적 제약이 있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서 행위능력을 제한해 후견인의 동의 없이는 활동할 수 없도록 한 제한능력자제도와 유사하다.

헌법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지방정부가 활동할 수 없도록 해 지방의 행위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방에서는 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조례만 제정할 수 있어 주민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해야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조례로 의무를 부과하거나 금지할 수가 없다.

3) 자치조직권의 무력화(「헌법」 제118조 지방조직 법정주의)
「헌법」 제118조는 의회와 집행기관의 선임방식을 비롯해 지방정부의 조직과 운영방식 등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조직법정주의). 조직법정주의를 통해 인구 1만의 울릉군에서부터 인구 100만의 수원시까지 지방정부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획일화함으로써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혁신효과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으며, 지방이 필요에 따라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독립해 분가한 자식 집의 가구 배치까지 부모가 결정하는 것과 같다. 지방정부의 조직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성이 반영될 필요가 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조직 형태가 실험되고 그중에서 우수한 제도를 다른 지방이나 중앙정부가 채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지방재정 위기의 초래(「헌법」 제59조 조세법률주의)
지방정부가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세를 조례로 신설하고자 하나 법률의 위임이 없는 한 「헌법」 제59조의 조세법률주의에 가로막혀 지방세목의 도입이 불가능하다.주요 세원인 소득세나 법인세 등을 조례를 통해 지방세원으로 할 수 있도록 법률로 위임하는 것조차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방재정은 중앙정부 재정의 의존이 심화되고 지방의 자기책임성은 실종되고 있다. 또한, 중앙정부가 각종 복지정책을 시행하면서 복지비용을 지방비 매칭을 통해 지방정부에 전가함으로써 열악한 지방재정은 구조적으로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5)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
중앙정부가 전국적인 문제는 물론 지역적인 사무에 대해서도 모두 결정을 하고 개입을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전국적인 과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과부하 현상이 나타난다. 지역문제를 챙기고 해결해야 할 지방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손발이 묶여서 해결할 수 없는 실정이다. 중앙정부의 과부하와 지방의 능력 박탈로 국가 전체의 마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중앙집권적인 정책이 지역실정에 맞지 않고, 지방이 중앙정부에 의존해 시키는 것만 집행하게 되는 상황에서 혁신과 효율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업무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끊임없는 혁신이 가능하도록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헌법은 지방의 능력을 지나치게 제한해 활동하기 어렵고, 법령의 제약으로 지방정부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실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헌법이 지방의 창의적이고 적극적 활동에 장애가 돼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지방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는 헌법을 개정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재배분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부담을 경감해 국방이나 외교와 같은 전국적인 사무에 전념하고, 생활의 작은 문제는 지방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는 과부하로부터 해방돼 문제해결 능력을 회복하고, 지방정부도 손발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서 지역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도록 행위능력을 부여하도록 헌법을 개정해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한 새로운 국가운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방분권 개헌의 주요 내용
1) 지방분권 국가의 선언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임을 「헌법」 제1조에 명시한다. 헌법 제1조에서 민주국가의 원칙, 공화국의 원칙과 대등하게 지방분권이 국가의 근본 질서임을 밝힌다. 독일연방헌법은 국가의 목적조항인 제20조에서 연방국가를 선언함으로써 지방분권을 명백히 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은 제1조에서 “프랑스는 지방분권적으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국가임을 헌법에 규정하는 것은 실제적인 구체적 내용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헌법에 지방분권 국가임을 규정함으로써 입법이나 해석에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

2) 주민자치권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민으로서 자치권을 가진다. 헌법에 주민자치권을 보장함으로써 지방자치권이 지방정부의 단순한 조직법상의 권한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에 속함을 명시한 것이다. 국민의 정치적인 권리로 주민으로서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다른 기본권이 개인적인 기본권이라고 한다면 주민자치권은 지방의 문제를 주민이 집합적인 의사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 점에서 지방자치는 주민자치를 의미하게 된다.

제대로 된 지방자치 이뤄지지 않아
중앙은 과부하, 지방은 능력 박탈로
국가 전체적 효율성이 저해되고 있어

3) 보충성의 원칙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의 업무 배분은 보충성의 원리를 기초로 한다. 보충성의 원칙은 개인과 공동체 간의 역할 배분과 공동체 상호 간의 역할 배분에 관한 법 원칙이다. 특히 공동체가 여러 단계로 구성되는 경우에 가장 하위의 공동체가 우선적으로 사무처리의 권한을 가져야 하며 상위공동체는 하위공동체가 그 사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만 비로소 개입해 처리할 수 있다는 법 원칙이다.

4) 입법권의 귀속과 자치입법권
국회는 중앙정부의 법률을 입법하고, 광역자치의회는 광역지방정부의 자치법률을 입법하고, 기초자치의회는 기초지방정부의 자치법률을 입법한다. 현행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형식적인 의미의 법률은 국회만 정할 수 있게 된다. 입법권이 국회에 속하므로 입법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 없게 된다. 지방의회도 주민으로부터 민주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방의회도 입법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방의회가 제정한 조례도 자치법률로서 형식적인 의미의 법률이 된다. 따라서 지방의회가 제정한 자치법률로 주민의 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 벌칙의 제정도 가능하게 된다.

5) 자치행정권과 자치조직권
행정권은 정부와 자치정부에 속한다. 자치정부의 조직은 헌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당해 자치의회가 입법하는 법률 또는 조례로 정한다. 지방정부는 지방의 문제를 종합적인 고려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 실정에 보다 적합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고유사무에 대해서는 당해 지방정부가 그 비용을 부담하며 자기책임 아래 그 사무를 처리하고, 사무를 위임할 경우 위임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그 비용을 부담한다.

또한, 지방조직법정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지방조직을 전국적으로 획일화시키고 있다. 조직혁신을 위해서는 지방마다 다양한 실험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에 조례를 통해 자치조직을 자율적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한다. 다양한 형태의 조직과 운영을 실험해 보고 검증해 봄으로써 아래로부터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6) 자치조세권 및 자치재정권 배분
국세의 종류 및 기초자치세 및 광역자치세의 종류와 배분 방식, 소득세 및 소비세를 포함한 공동세의 종류 및 세율, 배분 방식은 법률로 정한다. 기초자치세 및 광역자치세의 세율과 구체적인 세목 및 징수 방법은 자치법률로 정한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각자 자신의 돈으로 스스로 살림을 꾸리도록 하는 데 있다. 스스로 결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자기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주민이 조세로 부담하도록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방세를 어떻게 부과하고 징수하고, 이를 쓸것인지를 가능한 한 지방이 스스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지방정부를 중앙의존에서 자율적인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과세권을 보장하고 소득세나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중요 세원을 지방정부에서도 필요에 따라 과세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지금부터 진지한 논의와 준비로
2024년 총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로
분권형 개헌을 국민이 선택해야

분권형 개헌 없이는 제자리걸음만 계속돼
문재인 정부에서 두 번의 헌법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 다 실패했다. 이는 헌법개정이 시대정신의 반영, 국가 비전의 제시, 민주주의의 확대나 기본권의 신장과 같은 이념과 명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세력(대통령, 국회, 관료집단, 지역사회, 언론과 기업 등) 간 이해관계 조정이나 정치적 타협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국민이 공감하고 여러 사회 부문들이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공동의 개헌 방향과 철학, 의제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주민의 실질적인 풀뿌리 정치참여를 보장하며, 지방정부가 자율성과 창의성에 기반해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치분권의 이념과 가치를 헌법에 명시하고,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합리적인 분권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개헌은 국정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여당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대 대선에서 개헌이 대선공약 의제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개헌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개헌안 도출과 합의, 재정 소요, 국민 참여 등 여러 시간적·물리적 여건을 고려하면 개헌을 위한 별도의 국민투표보다 2024년 4월 총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방안이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여야 정치권, 국민, 정부, 시민사회 모두가 개헌에 관심으로 가지게 되고, 개헌이 총선의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의 개헌 입장과 의지에 대해 국민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구정태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선임전문위원
구정태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선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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