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정책제안

코로나-19와 고용 없는 경기회복
코로나-19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계층(일용·임시직)과 자영업자에게 큰 타격을 줬다. 이들을 위한 많은 정책적 지원이 이뤄졌지만 고용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특히 일부 계층·지역은 코로나-19 이후에도 고용 여건이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른바 ‘K자 회복’의 모습이 고용시장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2022년 2월과 2020년 2월의 취업자 수를 비교해 보자. 지역별로 볼 때 서울을 비롯한 광주, 울산, 경북, 경남 등은 코로나-19 위기 이전의 취업자 규모를 회복하지 못했다. 연령별로 볼 때 경제의 허리인 30·40대 취업자 규모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산업별로 살펴볼 경우 도소매·숙박음식점업, 종사상지위별로 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와 일용근로자의 취업자 수가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위기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은 셈이다.

코로나-19 위기 이전에도 한국경제의 고용 창출 여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도 걱정거리이다. 2010~2014년도와 2015~2019년의 고용 탄력성을 비교하면 전자는 0.60인 반면 후자는 0.31에 그쳤다. 정규직 고용 탄력성은 이미 2019년에 마이너스 대(-1.18)에 진입했다. 청년일자리도 문제이다. 전체 실업률과 20대 청년실업률 격차는 2000년 3.1%p에서 2021년 4.0%p로 상승했다. 청년 확장실업률[공식 실업자 외에 ‘잠재경제활동인구(잠재취업가능자 + 잠재구직자)’와 ‘시간 관련 추가 취업가능자’를 포함한 실업률]도 2015년 21.9%에서 2021년 23.1%로 상승했다.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회복되지 않는 현상을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라 부른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07년의 실업률로 돌아가는데 무려 9년이나 걸렸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이미 경험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한 가지 유력한 설명은 경제위기를 겪은 기업이 투자와 고용에 있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제학자 이노우에 도모히로(井上智洋)는 이를 ‘디플레이션 마인드’라고 부른다. 일본이 90년대 버블붕괴를 겪은 후 정부뿐만 아니라 가계와 기업 모두 전반적으로 ‘긴축’ 풍조에 빠져 경기회복 속도가 더욱 더뎌졌다는 지적이다.

한편 IT 기술과 접목된 비대면 플랫폼 산업 주도로 경기회복이 이뤄지는 점도 불균형한 고용회복의 배경이다. 일부 경제학자는 이른바 ‘창조적 파괴’라는 형태의 산업구조 변화가 기성 산업에서의 일자리를 줄이는 대신 신산업에서의 새 일거리를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기한 이유에서 일자리의 파괴는 쉽지만 창조는 어렵다. 경제위기 이후 고용회복의 역할을 민간에만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위기 이후에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기업이 이윤을 위해 생산하지, 완전고용을 위해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기업의 이윤추구는 자동적으로 노동력 등 실물자원의 완전고용으로 향하지 않는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투자와 고용을 유보하는 경향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때 공공부문이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위기 시 중앙은행은 민간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최종 대부자(lender of the last resort)’로 나선다. 만일 정부가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최종 고용자(employer of the last resort)’로 나선다면 어떨까? 선발 투수의 제구력이 떨어질 때 마무리 구원투수가 나서듯 경제위기 직후 고용 여력이 크게 떨어진 고용시장에서 공공부문도 구원투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일자리 보장제
이와 관련해 최근 일자리보장제라는 야심찬 정책 제안이 주목받고 있다. 일자리보장제는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정부가 기본 일자리를 제공하며 최저(생활)임금과 사회보험 가입자격을 보장하는 정책이다.

한국에서는 ‘직접일자리 사업’이나 ‘공공근로사업’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일자리보장제는 참여자가 민간부문으로 넘어가거나 스스로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고용 기간은 물론 전일제·시간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일자리를 하나의 사회경제적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일자리=기본권’이라는 발상은 낯설지 않다. UN 헌장, 세계인권선언, 국제노동기구 규약 등에서도 ‘일할 권리’를 시민의 기본권으로 언급한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일자리보장제는 이러한 권리를 선언적·규범적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일자리보장제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일자리보장제는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현재 법정최저임금과 근로시간 제한을 정해두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게다가 이는 애초에 고용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는 안전망이다. 만일 일자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한다면 각종 노동보호 조치들이 사회적 표준으로 정립될 수 있다.

또한 일자리보장제는 민간시장에서 과소 생산되는 돌봄, 환경보전, 사회서비스 등의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의 참여민주주의를 증진할 수 있다.

나아가 일자리보장제는 자동적 경기안정화 장치(built-in stabilizer) 역할을 한다. 불경기에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한편 호경기에는 (민간 일자리로의 이행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부지출을 줄여 경기과열을 막는 완충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보장제는 다른 경기부양책에 비해 경기과열과 물가 불안을 일으킬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비유하자면 일자리보장제는 추곡수매제도와도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임금-물가 안정성을 제고한다.

일자리보장제는 실업의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고 사회안전망 복원에 기여한다. 실업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자원의 낭비이다. 나아가 실업은 실업자의 정신·신체적 건강을 악화시키고 범죄, 사회적 갈등, 알코올 중독 등의 사회문제로 연결된다. 장기실업은 그 자체로 노동자에 대한 낙인이 돼 일자리 문제를 악화시킨다.

일자리보장제는 우리가 이미 지불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의 사회적 비용을 덜 수 있다. 나아가 임금소득만이 아니라 사회보험 혜택과 자녀돌봄 패키지를 함께 보장하는 것이 일자리보장제의 핵심이다. 그동안 많은 사각지대 문제를 노출시킨 사회서비스와 공적보험은 일자리보장제 아래에서 더욱 포용적 제도로 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자리보장제는 사회·기술·산업 전환을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그린뉴딜 정책 패키지의 일환으로 일자리보장제를 유력한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를테면 에너지 전환은 필연적으로 화석연료 산업의 실업을 야기한다. 이때 일자리보장제는 이러한 실업자들을 고용하고 신산업으로의 이행을 위한 교육·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다. 일자리보장제는 ‘패자 없는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해외에서 이미 일자리보장제는 유력한 사회경제적 대안으로 부상했다. 미국 민주당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는 그린뉴딜의 일환으로 전 국민 일자리보장제를 공약했다. 2020년 스코틀랜드 정부의 독립자문위원회는 코로나-19 경제회복 방안으로 청년일자리보장제를 제안했다. 오스트리아 마리엔탈시(Marienthal)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일자리보장제 정책실험을 진행 중이다.

일자리보장제 제안은 풍부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다. 미국의 뉴딜 시기 공공사업진흥청(WPA)이 주도한 각종 일자리사업은 전후 미국 호황의 토대를 놓았으며 미국인들의 시민적 일체감을 형성했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 초 경제위기에 대응하며 ‘예페계획(Jefes Plan)’을 실시해 실업가계를 대상으로 일자리를 제공해 최대 2백만 명이 지역사회 기반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는 아르헨티나 경제회복에 도움이 됐으며 여성의 사회참여를 증진시켰다. 인도는 농촌의 계절적 실업과 빈곤 문제 대응 차원에서 농촌 실업자에게 100일 이상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농촌고용보장사업(NREGS)’을 실시 중이다.

일자리보장제를 한국에서 실시한다면
일자리보장제는 어떤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회서비스와 돌봄 그리고 환경보전 사업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재정은 정부가 책임지더라도 과연 정부가 홀로 이러한 일거리를 전부 만들어낼 수 있을까? 대표적 일자리보장제 주창자이자 경제학자인 체르네바(P. R. Tcherneva)의 지적대로 지역사회에서 오래 활동한 풀뿌리 조직과 사회적 경제 부문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들이 제안한 각종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공개 모집하고 검토해서 ‘지역 일자리 은행’ 형태로 축적한 다음 실업자와 매칭시키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각종 산업·사회·기술 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돌입했고 인구절벽에 직면했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산업구조 전환, 글로벌 밸류체인 변화 등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때 일자리보장제는 전통적 돌봄·사회서비스 영역 외에도 사회 전환을 촉진시키는 데 창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산업·에너지 전환의 잠재적 피해 업종 조사, 마을 환경지도 만들기, 절판도서 등 실전 위기에 처한 지식 콘텐츠 수집·보존, 지역사회 문화·예술사업, 생활체육 등 다양한 활용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일자리보장제는 높은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대안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Data for progress’의 2018년 조사에 의하면 다수의 미국인이 지역색과 정치적당파성과 관계없이 일자리보장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경기연구원에서 수행한 “고용제도 필요성 우선순위”를 묻는 설문조사(『코로나-19 고용 충격, 위기 대응과 뉴노멀의 모색』)에서도 일자리보장제가 가장 높은 응답률(42.2%)을 보였다.

필자는 Fair 거시경제모형을 활용해 2010~2020년 사이 공식 실업자 대상으로 한국에서 일자리보장제를 실시할 경우의 경제효과를 모의실험했다. 그 결과 GDP는 연평균 1.8% 증가했으며, 일자리보장제 외의 민간 고용률도 0.9%p 상승하는 등 고용 여건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유효수요 증대 외에도 경기 전망 개선으로 투자가 증대한 덕분이다. 또 일자리보장제는 정책 시행 후반기에 물가를 더욱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편 모의실험 시 임금수준을 역사적 최저임금보다 높게 잡았고, 중복되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예산 감축 효과를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일자리보장제 비용 부담은 GDP의 0.81~1.16% 수준에 그쳤다. 이는 경제 규모 대비 합리적인 수준으로 보인다. 혹자는 이것도 과도한 비용이라 우려할 수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미 실업과 관련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21년에 재정지원일자리사업 예산 규모가 30조 원을 돌파했다. 이것도 명목GDP 대비 1.5% 수준이다. 여기서 잡히는 비용도 가시적 부분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자리 문제의 사회적 비용은 훨씬 크다.

운영의 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경기후퇴기에 직접일자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풍부한 운영 경험을 쌓았다. 코로나-19 위기 기간 세계적 명성을 떨친 우리나라의 행정력과 정책역량을 감안할 때 의지만 있다면 일자리보장제의 실시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일자리보장제의 전국적 실시가 현실적 여건상 당장은 어렵다면 산업·인구 공동화로 고통받는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정책실험을 실시하는 등 단계적 정책추진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이때 고령층에 주로 한정됐던 직접일자리 사업의 외연을 청년층으로 넓히고 혁신적 일거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등 사업 분야를 다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미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주도로 ‘지역문제해결형 뉴딜사업’, ‘지역문제해결플랫폼 사업’이 추진 중이다. 지역 현안과 밀착한 직접일자리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은 현재에도 가능하다. 특히 일자리 정책에서 주변적 위치에 있었던 마을기업, 협동조합, 비영리 단체 등의 사회연대경제 부문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박원익 경기연구원 전략정책부 연구원
박원익 경기연구원 전략정책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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