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외국정책사례

유럽 정치질서의 거대한 전환점이 된 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본 전쟁은 이미 2014년 크름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두 번째 군사적 행동으로 러시아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팽창주의와 영토적 야망에 대해 많은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는 2008년에도 남오세티야 분쟁을 이유로 조지아에 군사행동을 감행했는데,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이들 두 나라는 모두 유럽연합(EU)과 나토(NATO)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의 회색지대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만약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199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오랜 염원이었던 유럽국가와 동맹의 일원이 됐다면 이러한 비극적인 전쟁이 발발했을까? 많은 전문가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유럽과 러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회색지대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21세기 유럽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강대국의 희생양이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쟁 발발과 함께 우크라이나는 나토가입 포기에 이어 현실적 대안으로 유럽연합 가입을 천명했다. 유럽연합 역시 뒤늦게 유럽의 평화와 연대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오랜 배제와 소외정책을 파기하고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에 전쟁 발발 후 40여 일 지나 4월 8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슬라(Ursula von der Leyen)는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유럽연합 가입 추진을 확약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왜 유럽연합은 30여 년간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을 배제해 왔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유럽연합이 러시아와의 사이에 완충지역 형성을 의도한 동유럽 동반자(Eastern Partnership)라는 기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유럽연합의 오래된 정책방향은 이미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으로 위기를 맞았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파기될 시점에 도달했다.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의 의도가 성사된다면 유럽연합의 동진으로 유럽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경계와 거대한 정치지형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의 완충지대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면서 유럽연합은 1994년 6월 러시아와 동반자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본 협정을 통해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개혁 지원을 약속하고, 중동유럽으로의 유럽연합 확장에 대해 러시아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중요한 사실은 본 협정을 계기로 이후 유럽연합과 러시아 간에는 우크라이나, 몰도바, 및 벨라루스 등 동유럽 3개국을 양측에 귀속하지 않는 완충지역으로 둔다는 암묵적 합의가 성립됐다는 것이다.

이 결과 유럽에서는 이른바 동심원 배열(concentric circles)이라는 통합구조가 설정됐다. 먼저 통합의 핵심 국가인 유럽연합 27개국을 필두로 외각에 내부 주변부로 유럽자유무역지대(EFTA) 4개국(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터키를 비롯한 가입 후보 7개국 및 영국이 포함된다. 보다 외각에는 외부 주변부로 동유럽 6개국(우크라이나, 몰도바, 벨라루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위치한다. 유럽연합은 내부 주변부 국가와는 멤버십(membership) 관계를 형성해 회원국 가입의 길을 열어놓고 사람의 자유 이동을 목적으로 한 솅겐 지역(Schengenland) 참여를 허용한다.

반면 외부 주변부의 동유럽 6개국은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완충지대로서 이른바 ‘공동의 공간(common space)’으로 남겨졌다. 이후 유럽연합은 2004년 발트 3국과 폴란드등 중동유럽국가가 회원국이 되면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됐다. 이에 유럽연합은 동유럽 6개국과 동유럽 동반자라는 특혜적 관계를 설정해 가입을 배제하고, 유럽적 가치를 표방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역적 안정을 위한 지원, 불법이민 통제 및 상호 경제적 이해에 주목해 왔다.

동유럽 6개국에 대한 유럽연합 가입 불허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지정학과 에너지 의존 등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이외에도 벨라루스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 아르메니아 및 아제르바이잔 등 동유럽 5개국은 유럽으로부터의 소외, 분할과 피지배라는 역사적 기억, 취약한 법치와 민족 간 갈등이 심화된 지역으로 유럽연합이 회원국 수용을 반기지 않는 동인들이 있다.

이러한 유럽연합의 정책기조로 발칸의 소국 크로아티아는 2013년 유럽연합의 일원이 된 반면, 우크라이나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유럽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로 벨라루스를 제외한 동유럽 5개국은 2000년대 들어 민족 간 분쟁,러시아의 팽창주의와 중국의 일대일로 등에 직면해 강대국의 세력 각축장이 됐다.

결국 동유럽 5개국은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러시아 및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완충 혹은 중간지역으로, 양쪽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배제된 곳이 됐다. 특별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는 유럽과 중동으로 통하는 통로(gateway)이며, 동서유럽의 지정학적 중추(geopolitical pivot)로 어느 한 세력권의 귀속이 어려운 복잡한 이해가 얽힌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우크라이나는 18세기 이후 주변 강대국의 영향권 하에서 피지배, 분할과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갖고, 현재에도 과거의 피해가 집단적 기억으로 남아 정치적 성격을 특징짓는 원인이 됐다.

유럽연합의 동진 : 배제에서 포용으로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상황은 반전됐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으로 유럽연합은 안보와 에너지 수급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별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는 발트 3국, 폴란드와 핀란드 등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에는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크름반도를 병합한 이듬해인 2015년 대유라시아 동반자(Greater Eurasian Partnership)를 표방하고 과거 소련연방에 속했던 국가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대립의 씨앗이 됐다.

상황은 더욱 악화돼 2015년 중국은 일대일로를 출범해 동유럽 5개국을 포함한 실크로드 경제벨트(Silk Road Economic Belt)의 구축을 위해 이 지역에 적극적인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유럽으로 연결되는 경제회랑의 핵심 국가로 지목해 대대적인 경제적 투자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으로부터 소외된 우크라이나는 친중정책을 취해 서유럽 국가의 경제적 이해에 큰 위협이 됐다.

결국 크름반도 병합 이후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계획하게 됐다. 이 결과 유럽연합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와 연합협정(Association Agreement)을 체결해 2016년 1월 부분적으로 협정이 적용됐고, 2017년 9월 완전한 효력에 들어갔다. 연합협정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유럽연합은 1990년대에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한 체코와 헝가리 등 중동유럽 국가와 개별적으로 유럽협정(European Agreement)으로도 불리는 연합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유럽연합이 비회원국과 체결한 연합협정은 추후 유럽연합 가입을 전제하고 국내 개혁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포함한다. 따라서 2014년 유럽연합-우크라이나 간 체결된 연합협정은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을 고려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뒤이어 유럽연합은 2018년 기존의 동유럽에 대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로 명명한 연결전략(Linkage Strategy)을 채택했다. 글로벌 게이트웨이는 유럽연합의 새로운 대외전략으로 핵심은 동유럽 5개국에 대한 관계 재설정이다. 유럽연합은 더 이상 러시아의 동진과 동유럽에서 중국의 경제적 이해 확대를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기존 정책을 파기하고 전향적 노선을 시작하는 시점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개시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까다로운 유럽연합 가입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합류 어려움 있으나
특수한 상황에 결단 내릴 것으로 보여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의 험난한 길
유럽연합의 회원국 가입 기준은 매우 엄격하고 오랜 시간 쌍방 간 협상을 요한다. 먼저 유럽연합은 1993년 추후 유럽연합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가 이행해야 할 의무로 이른바 코펜하겐 기준(Copenhagen criteria)을 만들었다. 코펜하겐 기준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지리적으로 유럽에 위치하고, 기존 회원국과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며 다음과 같은 3가지 가입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정치적 기준 :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 소수민족 보호를 위한 자유화
•경제적 기준 : 안정적인 시장경제와 통합된 유럽연합의 단일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
•유럽연합의 제도수용 : 유럽연합의 조약 및 법률, 공동정책 수용 능력

유럽연합은 가입을 신청한 국가에 가입 후보국 혹은 예비 가입후보국 자격을 부여한다. 이후 유럽연합은 코펜하겐 기존에 근거해 이행해야 한 사항을 35가지로 세분화해 항목마다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해 적합 여부를 판정한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35개 항목이 모두 충족돼야 가입조약을 맺고 공식적인 회원국으로 수용한다.

유럽연합 가입의 길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가는 터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터키는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출범한 이듬해인 1959년 1월에 가입신청을 했고, 40년이 지나 유럽연합은 1999년 터키에 가입후보국 지위를 부여했다. 이후 유럽연합은 2005년 10월부터 터키와 가입 협상을 개시했지만 35개 가입조건 중 비정치적 내용을 담은 ‘과학 및 연구’ 항목만 합의를 보고 나머지 34개 부분에서는 협상이 답보상태이다.

물론 돌발상황에 직면한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용의지가 있다면 예외적인 기준과 절차로 신속히 가입 협상을 마무리할 가능성은 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가로막는 많은 난제가 있는데, 이 중 주요한 사안을 정리하면 3가지로 압축할 수 있으며, 이의 해결 없이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으로의 복귀는 요원하다.

첫째,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의 전면적인 정치경제 개혁이다. 우크라이나는 199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구체제 세력들이 연합해 정치, 경제적 이해를 보존한 가운데 체제 전환을 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공산주의 시절 후진적 정치적 행태를 이어받아 고질적인 정정 불안과 부패가 뿌리를 내렸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정치엘리트의 무능으로 불안정한 민주주의와 법치가 현재까지 이어져 정부는 국민에게 복지와 후생 제공 의무를 이행치 못할 정도로 취약한 상태이다.

둘째,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치우쳐 러시아와 인접해 외교안보 및 국경통제 등에서 커다란 부담을 안겨주는 지역이다. 물론 여기에는 러시아의 정치적 반대와 개입이라는 커다란 변수가 존재한다. 한편 유럽연합은 2013년에 가입한 크로아티아를 제외하고도 이미 터키와 발칸지역 6개국에 가입후보국 및 예비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고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와의 형평성을 둘러싼 반발과 저항을 해결해야 한다.

셋째, 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비용의 문제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GNI(국민총소득)의 1~1.4% 수준으로 예산을 운영한다. 물론 이러한 예산은 대부분 회원국의 분담금으로 충당하는데, 경제 규모가 큰 회원국이 보다 많은 예산 기여를 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유럽연합 예산 기여의 약 12%를 점하는 영국의 탈퇴와 맞물려 경제력이 취약한 우크라이나의 가입은 유럽연합의 정상적인 운영에 큰 재정적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로서는 국가의 생존을 위해 유럽연합 가입 이외에 마땅한 옵션이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에는 많은 장애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대전 이후 유럽대륙에서 일어나 가장 큰 지정학적 충돌로 세계사적 사건이다. 우크라이나와 이해(관계)가 가장 깊은 곳은 미국도 중국도 아니며, 국경을 접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는 유럽국가들이다. 우크라이나의 희생은 결국 유럽 전역에 안보와 경제적 이해를 침해해 기존 질서를 위협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수용을 위해 여하간의 정치적 결단을 단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송병준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송병준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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