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정책제안

농촌에 대한 이미지와 현재 여건
사람들은 ‘농촌’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작년 도시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1천800명을 대상으로, ‘농산어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조사했다(성주인 외, 2021, 「균형발전을 위한 농산어촌 관계인구 활용방안 연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가장 많은 응답은 자연·공기·깨끗 등으로 대표되는 깨끗한 자연환경을 갖춘 공간이라는 이미지였다. 다음으로 농산·수산·먹거리·농사가 의미하는 생산 공간으로서의 이미지, 불편·낙후로 상징되는 살기 불편한 낙후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도출됐다.

깨끗한 자연과 맑은 공기, 밀도가 낮은 생활환경을 중심으로 농촌 생활을 선호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국민의 새로운 활동 및 정주의 공간으로서 농촌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마을 내 빈집이 늘어나고 기초적인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불편하며 각종 난개발·저개발 현상이 심화되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농촌은 국민의 정주·여가 장소이자 미래 성장 공간으로서 가치가 증대되고, 포용성장을 주도할 공간으로서 잠재력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농촌 총인구는 연간 45~50만 명 규모를 유지하는 귀농·귀촌 인구의 영향으로 2010년 이후 증가세로 전환됐고, 농산물 생산 이외에 식품 가공, 체험·관광 등 유무형 자원을 기반으로 농촌형 산업생태계가 출현하고 있다. OECD는 농촌의 저밀도경제가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가는 혁신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지방소멸론이 처음 제기된 일본의 경우 ‘반농반X’의 생활양식을 구현하려는 움직임이 베이비붐 세대 및 청년층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63년생인 1차 베이비붐 세대(713만 명)와 그 이후 1974년까지 출생한 2차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하면 1천700만 명에 달하는 가장 두터운 인구 집단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탈수도권 분산 거주 및 농촌 지향 이동을 촉진하는 것은 농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자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농촌의 총인구는 증가하지만 공간적 불균형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은 인구가 감소해 결국 ‘소멸’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농촌 인구는 2010년 876만 명에서 2020년 976만 명으로 증가했지만 주로 수도권 및 도시 인근 근교 지역과 읍 지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했다. 농촌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면 지역 인구는 계속 감소해 인구가 2천 명이 안 되는 면도 2000년 167개소에서 2020년 354개소로 2배 이상 늘어났다.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20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동 지역 14.6%, 읍 지역 17.5%, 면 지역 31.8%로 농촌의 고령화율이 도시에 비해 매우 높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주민의 구매력 감소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기반 약화는 교육, 의료, 교통, 소매업 등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서비스의 수요를 감소시키고, 지속적인 서비스의 공급을 어렵게 한다.

한편 농촌 주거지와 축사·공장 등이 혼재해 주거환경을 저해하고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난개발도 심해지고 있다. 주거지와 공장이 혼재되면서 악취·오염물질이 관리되지 않은 상태로 배출돼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좁은 농촌 도로에 화물차가 운행하면서 도로를 파손시키고 주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노후한 농촌 마을의 인프라도 문제이다. 1970~80년대 새마을운동 시기 형성된 좁고 굴곡이 심한 마을 내 도로, 협소한 주차 공간 등 농촌 마을 인프라는 노후화돼서 정비가 시급하다. 늘어나는 마을 내 빈집도 주거환경을 해치는 요인 중 하나이다.

농촌을 깨끗하고 생활하는 데 편리한 공간, 사람이 돌아오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농촌의 미래 모습을 구상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국토계획법」은 농촌을 비도시 지역으로 구분한다. 도시·군계획은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도시 지역과 시가화 구역을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농촌공간은 도시화를 위한 유보공간 또는 농업생산공간으로 간주해 주거·경관 등 비농업적인 토지 수요에 대한 적절한 계획을 수립하지 않는다.

한편 농업·농촌 정비 관련 계획들은 단위 사업계획 위주로 수립돼 「국토계획법」에 의한 공간계획 체계와 별다른 관련을 갖지 못하고, 사업들을 서로 연계하고 조정할 수 있는 협력체계가 미비하다. 따라서 하나의 시·군 내에서 진행되는 사업들 상호 간에도 긴밀한 연계와 조정 체계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어 농촌공간의 발전을 위한 종합적 시각을 가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농촌공간계획제도 도입과 추진 방향
농촌은 도시와 같은 장기적인 공간 형성의 제도적 틀이 없이 단기적인 사업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해온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도시·농촌,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농촌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농촌공간을 체계적·계획적으로 정비해, 삶·일·쉼이 있는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농촌공간계획제도는 농촌공간을 정비해 농촌다움을 복원하고, 일자리·주거·산업·사회 서비스 기능을 계획적으로 확충해 농촌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제도이다. 농촌다움 복원과 농촌 활성화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토지이용제도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용도지역상 도시 지역은 16개 세부 지역으로 구분돼 세세하게 관리된다. 그런데 농촌공간은 개발 압력이 높은 곳과 농지로서 보전해야 할 곳, 자연·경관을 보호해야 할 곳, 주거환경을 보호해야 할 곳 등 다양하지만, 현재 농촌 토지는 대부분 관리지역(계획·생산·보전관리지역)과 농림 지역으로 분류돼 체계적인 공간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기존 용도지역을 농촌의 개발 압력과 현재 토지이용, 생태적 가치와 정주 여건 등을 고려해 세분화하고 난개발 억제와 자연·경관의 보전 및 체계적인 개발을 유도할 수 있도록 세분하고 내용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농촌공간을 보호하고 다양한 기능을 활성화하는 사업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주거환경 보호, 난개발·저개발 시설 정비, 농촌다움의 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농촌특화지구를 새롭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시장·군수는 지구 지정 취지에 맞도록 지구가 개발되고 주민 및 토지소유자에게 일정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구 취지에 맞는 사업을 지원하도록 한다.

이어서 농촌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농촌공간을 체계적으로 정비·활성화하기 위한 농촌공간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 농촌공간계획은 도시·군계획에서 미흡한 농촌공간에 대한 계획을 보완하는 성격의 계획으로 수립하는데, 기존 국토·도시계획과의 중복을 방지하고 시·군에서 도시와 농촌 부서 간 협업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국가는 농촌의 비전과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담은 국가농촌공간방침을 수립하고, 시·군은 농촌의 미래상과 비전, 계획의 목표, 농촌공간 구조, 지속 가능한 토지이용 방향 등을 포함한 농촌공간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주민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와 일자리를 확충해 지속가능한 농촌을 구현하기 위한 사업계획과 재정투자계획을 포함한 5년 단위 사업계획인 농촌공간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 시행계획은 농촌의 생활권계획, 토지이용계획, 정비계획 등을 구체화해 도시·군관리계획을 보완하는 성격을 가지는데, 농촌 토지이용 관련 사항 및 연계 사업 추진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며,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와 체결하는 농촌협약의 근거가 된다.

농촌공간계획이 실효성을 가지도록 시행계획 내 사업을 중심으로 농촌재생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재생프로젝트는 농촌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낡은 인프라를 혁신하기 위한 정비사업과 농촌공간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주민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구성한다. 정비사업은 농촌공간의 토지이용 목적에 적합하도록 주거지·산업단지·축산단지 등의 정비와 이전·재배치, 주거지 인근 농촌 난개발·저개발 요소 정비, 노후 인프라 정비, 농업유산·경관 등 농촌다움을 복원·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정비사업을 포함한다. 또한 지속가능한 거주공간으로 육성할 농촌 마을을 선별해 ‘농촌마을보호지구’로 지정하고, 마을 정주환경 정비 및 생활 인프라 확충 등 마을 인프라 혁신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도록 한다.

또 물리적 공간의 정비 이외에도 농촌의 주거·정주, 일자리·경제, 사회서비스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 농촌의 기능을 복원·활성화 기반을 마련하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지역자원을 활용한 지역전략산업을 발굴·지원해 일자리를 만들고, 농촌 생활권을 고려해 생활 서비스 전달 체계를 개선하는 등 농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계획 기반 농촌재생 추진
선진국의 농촌정책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농촌을 단순히 농업 생산의 공간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및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농촌지역 토지를 보전하는 것을 우선 정책 목표로 삼고, 신규 개발은 기존 개발지 내부로 한정하거나 외부일 경우 철저한 계획을 통해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계획 수립과 토지이용 방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 및 주민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UNCTAD)는 작년에 열린 제68차 이사회에서 우리나라를 아시아·아프리카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인정하는 선진국이 된 것이다. 이제는 선진국에 걸맞은 농촌을 구상하고 만들어 갈 때이다.

농촌의 잠재력을 구현해 선진국다운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촌 활성화를 저해하는 각종 제약 요건들을 극복하고 농촌공간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며 주민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정주·사회서비스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농촌재생 전략이 필요하다.

농촌에 대한 공간계획의 제도화와 이를 매개로 한 농촌재생사업, 관련 부처 간 협력의 틀 구축을 추진할 시점이다. 농촌공간이 삶터·일터·쉼터로서 기능을 할 때, 국가균형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및 저출생·고령화 문제의 개선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이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발전연구부 부연구위원
한이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발전연구부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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