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2022 한국정당학회 하계학술대회 주민자치 기획세션
SECTION I 아렌트의 평의회 민주주의 사상과 한국 주민자치회의 관치화 개선 방향

진정한 직접민주주의 실행 방식으로서 ‘평의제 민주주의’가 대안으로 제시되며 한국 주민자치회에 주는 시사점과 관치화 개선 방향도 논의됐다.

2022 한국정당학회 하계학술대회가 ‘배제의 정치,혐오의 정치’를 주제로 6월 30일부터 7월 1일까지 여수 소노캄 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학술대회 첫 날에 한국주민자치학회에서 마련한 주민자치 기획세션이 열렸다.

‘전환의 시기, 대한민국 주민자치의 방향성 모색’을 주제로 한 이번 주민자치 세션의 첫 번째 섹션은 안효성 대구대 교수의 ‘아렌트의 평의회 민주주의 사상과 한국 주민자치회의 관치화 개선 방향’에 대한 발제로 진행됐다. 장훈 중앙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박경하 중앙대 명예교수,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 장명학 경희대 교수, 그리고 전은경 한국주민자치강사회의 상임회장이 지정토론자로 참여했다.

안효성 교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에 대한 언급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이 인간의 실존적 삶의 조건이라고 이해한다. 아렌트는 정치를 복수의 타인들과 더불어 사는 인간만의 공존 양식이며 인간성을 실현하는 특별한 방식이라고 간주했다. 정치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공동의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이 자리 잡고 있으며, 공적 공간에서의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과 토론 및 심의, 그리고 합의와 공동 행위의 중시가 존재한다. 만일 토론과 설득 행위가 부재하고, 야만강제력이나 명령이 지배한다면 그것은 비정치적이다. 정치행위는 근본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좌장 장훈 교수(왼쪽), 발제 안효성 교수

“전 구성원 참여 ‘평의회’ 체제, 직접민주주의 실행의 최적 방식”
발제에 따르면, 아렌트는 여러 평의회(council)의 유형들 중 ‘지역(마을)평의회’를 지지하였고, ‘지역평의회’를 기초공화국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이상적 형태로, 그리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정치적 실존을 보장하는 공적 공간의 유지 방법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기초공화국들의 평등한 연합으로서 피라미드형으로 상향해 가는 상향적 확대 정치체인 ‘평의회 연방(the federation of council)’을 기획했다. 아렌트의 정치사상은 근대 국민국가와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체의 방향이 철저하게 평의회형주민자치에 근간한 직접민주주의 기초공화국과 그들의 연합이어야 할 것임을 제안한다고 안 교수는 발표했다.

이어 안효성 교수는 “아렌트의 판단과 예견대로 근대 국민국가와 대의제민주주의엔 인간의 정치적 실존을 훼손하는 심각한 결점이 존재하며, 국민국가와 대의민주주의는 그 존재 이유와 실효성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유형 중 한 가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장한 유사민주주의, 가짜민주주의라고 판단하며 오직 직접민주주의만이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민주주의 형태라고 본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최적의 방식이 아렌트가 지지하는 평의회 체제라고 확신한다”라며 “정치체의 구성원들이 모두 직접 참여해 운영하는 평의회 민주주의는 그 본질이 ‘자치’일 수밖에 없는데 참여 인원이 일정 이상으로 많으면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평의회가 작동하는 자치의 기본단위는 마을 수준의 지역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렌트가 마을평의회 혹은 지역평의회로 운영되는 기초공화국을 주력으로 삼아 지역평의회 기초공화국들의 연방으로 국가를 재구성하려 한 기획은 아렌트의 정치관을 따라가는한 지극히 합리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그는 “아렌트의 평의회 민주주의 사상은 진일보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일정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각급 지방자치단체가 있어 중앙정부나 국회와 구분되는 지방 정부와 의회를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지는 못하다. 우선한국의 지방분권은 중앙정부 및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큰 구조고, 아렌트가 심각한 결점을 지적하고 있는 국민국가와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그 규모만 축소해 지방 단위에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게다가 한국의 지방자치는 읍면동 단위로 구성된 주민자치회와 시군구 단위로 구성된 주민자치협의회가 존재함에도 그 실질적 지위와 운영이 국가와 정당,지자체의 간섭이나 지배 하에 놓여 있어 관치화 되어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토론 박경하 교수(왼쪽), 토론 이재묵 교수

“주민자치의 관치화, 인간 실존의 가장 탁월한 활동인 정치의 실종 초래”
안효성 교수는 “주민자치의 핵심은 자율성, 자발성,자주성, 평등성, 공공성인데, 주민자치의 시행에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등 관과 정치권의 간섭과 통제가 존재하고, 정당이나 직능단체, 시민단체까지 정도 이상으로 개입한다면 주민자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주민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고 해결방식을 찾으며, 대책을 세우고,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스스로 참여하는 행위”로서의 주민자치는 요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민자치의 관치화는 단순히 주민자치를 왜곡하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렌트가 줄기차게 우려한 바대로 정치를 행정화 시키고 정치의 장에 사회적인 것만을 남기게 되면서 인간 실존의 가장 탁월한 활동인 정치의 실종을 초래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의 관치화는 왜 지난 30년 간 크게 개선되지 못했을까? 안 교수는 “원천적 문제는 바로 지방자치의 영역에서 대의민주주의와 평의회 민주주의가 공존하려 하기에 빚어지는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고 “평의회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대의민주주의, 관료정치와 공존해서는 안 된다. 이 둘이 영향을 미친다면 주민자치회는 무력화된다. 특히 주민자치회에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개입하는 것은 일종의 반칙이다. 평의회는 대등한 관계를 가진 구성원들의 모임을 원칙으로 한다. 사회 내에 평의회 외 특정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직능단체나 시민단체 등은 존재할 수 있으나 주민자치를 위한 협력과정에서 이들이 평의회와 수직적·위계적 관계를 형성해서는 곤란하며, 외부 전문인력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 지역주민의 주체적 결정에 의한 위탁이 아닌 한 자치업무 실행에 있어 당사자주의가 훼손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의 사회적 관계가 장차 평의회 민주주의원리를 통일적으로 따라야 바람직할 것이라 가정한다면, 이들 시민단체와 직능단체, 혹은 정당조차도 역시 평의회와 같이 수평적 구조로 재구성되고 운영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토론 장명학 교수(왼쪽), 토론 전은경 교수

“주민자치의 관치화 극복해법? 주민이 정치의 주인되는 지역평의회 체제로”
다음으로 안효성 교수는 “한국 주민자치의 관치화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각 지방자치단체 관할구역거주민들이 자진해서 행동하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공 업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지속하도록 각급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중앙 정부와 국가를 해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 할지라도, 장차 단계적으로 지방자치의 차원에서는 중앙정부와 국회를 흉내 낸 지자체 정부와 의회를 없애고, 읍면동, 시군구, 광역시도 각급 지역 단위에 아렌트의 복안처럼 주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지역평의회만을 두고 평의회 연방형 주민자치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간접(대의)민주주의라는 유사민주주의에 미련을 두지 않고 더 빨리 그것을 폐기할수록 민주주의의 진전은 앞당겨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의 새로운 정치는 현존하는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국민국가의 틀이나 몇 가지 정형화된 정치체의 형상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인간 실존에 부합하는 정치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본질을 고심한다면 이상적인 주민자치는 오직 평의회 정치로써만 가능할 것이며, 평의회 국가 안에서 비로소 오롯한 주민자치와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세계, 현재 논의의 중점인 정치체제가 무언가 잘못된 것이 확실하다면,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고치는 일이다. 오답인 것을 알면서도 계속 고수해서는 결코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정치체제가 무언가 잘못된 것이
확실하다면,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고치는 일

우리 모두는 매 순간 역동적인 변화의 시간을 살고 있고, 사실 우리는 여러모로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던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는, 혹은 세상을 바꾸는 꿈같은 경험을 해온 바 있음을 결코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의 시간이 혁명의 시간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간접(대의)민주주의, 오답인 걸 알면서 고수해선 발전 없어”
발제에 이어 토론이 진행됐다. 먼저 박경하 교수는 “발제에서 아렌트는 ‘나라의 모든 거주민들이 강제적으로 평의회의 구성원이 될 필요는 없다. 아렌트는 모든 사람이 다 공적 업무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보았다’고 했는데 주민 전원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닌 선택적(자발적) 참여를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형태의 대의제가 아닐까? 또, 필자의 의견에 상당부분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대의민주제를 평의원제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전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지 않고서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현실, 이상이 아닐까 싶다”고 질의했다.

이재묵 교수는 “과연 평의회 모델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의제가 갖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온전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평의회에 대한 참여와 활동이 과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보장할 것이며, 사회 내 모든 다양한 목소리들이 반영되게 보장할 것이며, 또한 실존적 의미에서 정치 행위를 구현해 줄 수 있는가? 인간이 실존적으로 부여받게 되는 여러 지위적 한계들(국적, 계급, 거주지, 성별, 연령, 신분, 지위 등)이 평의회 참여 및 활동에 가하는 제약은 없는 것인가? 평의회 활동에 대한 지원 및 금전적 관리 수요는 국가의 지원 없이 온전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또한 누구에게 리더십을 허용하게 할 것이며 구체적 의사결정 모형 및 상위의사결정 체제로의 의사 전달은 어떤 모델을 취할 것인가 등 평의회 형식 및 정체에 대한 보다 구체적 디자인이 수반되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동영상으로 토론에 참여한 장명학 교수는 “발제자의 한국정치, 특히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에 대한 다양한 지적에 동의하고자 한다. 특히 누적된 관치화로 인한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의 왜곡상황에 대한 진단은 탁월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지방자치 내지 주민자치가 가능케 해주는 ‘가능성의 조건’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주민자치의 전제조건은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제고시키는 데 그 핵심이 있다고 보여 진다. 이러한 자치역량을 제고시키는 재원은 시민들의 정치의식 함양, 재정자립도 향상 등 여러 방향에서 논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발제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공적인 것이나 공공의 일에 적극 참여하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허용’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관치 내지 관치화에 손을 놓을 생각이 없는 한국정치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 지정토론자인 전은경 교수는 “주민자치의 지향점, 가치, 목적, 목표의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재설정이 필요하다. 주민자치를 통해 실현하려는 가치는 무엇이며 지향점은 무엇인지 재설정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현재 유일한 실현의 토대인 주민자치조례에는 왜 해야하는지는 언급되어있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문만 있다. 그리고 현 읍면동에 주민자치회 설치 적절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읍면동이 사람들이 공적문제에 토론하고 행위하는 공적 공간으로의 적합한 것인지, 마을단위 등 소규모 단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행정과 주민자치의 활동영역 조정과 관련, 현재 행정의 역할의 주민 공적 생활의 전범위에 걸쳐있으며 거의 독점적 상황인데 행정이 하는 역할 중에서 ‘행정이 해야 할 일’‘하지 않아야 할 일’ ‘주민과 함께 해야 할 일’ 등을 재설정하여 주민들의 자치영역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라며 “주민자치의 실질화를 이루기 위해는 주민자치에 산적한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위한 뜨거운 논쟁을 통해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은 현실을 견인하는 것이지 현실과 괴리된 것 아냐”
이에 대해 발제자인 안효성 교수는 “아렌트의 ‘모든 거주민들이 강제적으로 평의회의 구성원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평의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고 함께 해야 하는 것이지만, 평의회를 움직여 나갈 때 모든 사람이 정치역량을 가진 것도 아니고 바쁠 수도 있고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어서 이들을 강제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렌트의 입장에선 폭력이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의무로서 강제할 순 없다는 의미이다. 또, 혁명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적인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기에 정치변동 전략이 필요하고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하게 어렵다고 해서 꿈꾸지도 말라 하면 미래가 없다고 본다. 꿈, 상상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실현되었는데 왜 인간이 인간의 땅에서 정치사회를 못 바꿀까? 가능하다고 본다. 이전에 불가능해보이던 것이 가능하게 되기도 한다. 이상은 현실을 견인하는 것이지 현실과 괴리된 것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안 교수는 또 “조례에 주민자치를 왜 하는지에 대해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다. 정치행위에 근거가 되는 사상이 부재하면 목표를 채울 수 없다. 정치사상을 현실로 바꿔주고 기획, 구성하는 현실정치학자나 정치가도 필요하지만, 이상과 철학, 사상의 깊이에 있어서 행태주의 학자만 존재하는 것도 또 하나의 결함이다. 우리의 생활세계에서도, 기초 지역단위에 있는 주민, 유권자들도 사상을 탐구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사상과 철학은 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모든 주민의 몫이다. 모두가 사상가가 되어야 한다. 정치, 철학, 사상을 탐구해가는 가운데 주민자치가 가동될 수 있는 정신의 근거, 이정표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내용물이 있어야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제도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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