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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서 만나는 고려청자
지난 6월 22일부터 7월 17일까지 부안청자박물관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고려 궁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청자靑瓷를 중심으로 사진과 주요 유물을 3D프린팅으로 복원해 부안에서 출토된 청자와 비교 전시하는 행사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청자와 금속활자, 기와 등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이번 기획전의 의미는 개성 만월대에서 발견된 청자들과 부안 유천리, 진서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고려청자를 비교 감상하며 부안이 고려시대 왕과 왕비가 가깝게 두고 쓰는 최상품의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던 청자의 본고장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였다. 이번 기획전의 테마가 ‘남북을 잇다 미래를 잇다’인 것처럼 우리를 900년 전 고려시대로 부안 청자시대로 이끌고 남음이 있었다.

고려시대 청자는 통상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초기 청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푸른 하늘색의 순수한 청자로 순청자로 부른다. 그 후 자기에 그림을 파 새기고 희거나 검은 흙을 메워 고르게 한 다음 초벌구이를 하고 다시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 상감청자象嵌靑瓷이다. 상감청자는 고려자기 중에서도 우리 민족의 독특한 예술적 재능이 가장 잘 나타난 것으로 선의 흐름과 아름다운 색깔 그리고 고운 무늬 등이 특징이다. 겉면에는 흔히 문자나 새, 곤충, 과일, 꽃나무 등의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런 훌륭했던 자기 기술도 나라가 기울어지면서 색깔은 어두운 회청색 또는 회갈색으로 변하고 모양도 투박해지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바탕이 됐다.

고려청자의 가마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됐는데 그중 전남 강진군과 전북 부안군의 가마터가 가장 중요한 곳으로 알려졌다. 이곳 유천리만 해도 37개의 가마터가 확인됐으며 이곳이 도자기가 발달된 것은 가까운 곳에 포구가 있었고 장인정신의 도공과 양질의 흙 그리고 변산의 가마 화목에 있었다고 전한다.

개성 만월대에서 피어난 부안 청자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사업은 남측의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의 합의로 2007년 첫 발굴을 시작해 2018년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8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고려청자가 가장 많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도 청자가 가장 많은 쓰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출토된 청자와 부안 유천리 청자와 비교해 본 결과많은 유사성이 발견됐다. 이곳에서 나온 고려청자는 12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고려청자 전성기 동안 부안 유천리에서 생산된 청자가 서해안 뱃길을 타고 개성 만월대까지 공급됐고 왕과 왕비가 쓰던 청자가 부안에서 만들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은 부안 유천리 등에서 발굴된 여러 토기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자기가 물가풍무늬 청자이다. 유천리柳川里의 마을 이름의 한자를 풀면 버드나무와 냇가다. 우리말로 버드내 마을인 유천리의 풍경을 보며 당시 작업을 했던 도공들이 고즈넉한 인근의 풍경을 활용해 찻잔 등을 만들어 보냈던 것이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수없이 발견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부안은 엄청나게 많은 청자를 상감기법을 활용해 만들었다. 왕을 상징하는 용과 왕비를 상징하는 봉황무늬를 새긴 청자 조각이 수없이 이곳에서 출토돼 도자기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유천리 청자가 왕실용이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부안청자가 세상에 다시 빛을 본 것은 800년의 긴 잠을 깬 1929년이다. 당시 일본인 노모리켄[野守健]에 의해 최초로 발굴조사됐다. 그리고 1938년 부안군 유천리 12호 가마터의 퇴적구에서 비색청자, 상감청자, 무문백자와 함께 동화청자銅畵靑瓷가 혼재된 층이 발견돼 주변을 놀라게 했다.

부안 고려청자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화려한 상감청자 문양에 있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흑백상감청자는 부안 고려청자의 정수이다. 문양은 단순히 모란이나 국화와 같은 꽃 모양을 반복해 새긴 것도 있지만 이야깃거리가 가능한 부안만의 독특한 정서가 드러난 문양이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크기가 50~100센티 되는 대형 매병이다. 이 고려 매병을 ‘대매병大梅甁’이라 부르는데 유천리에서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구리 안료를 사용한 동화청자가 명품이다.

부안 고려청자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이곳에서만 나오는 자기를 만드는 흙에 의해 나타나는 신비로운 비색翡色에 있다. 강진에 비해 철분이 더 함유돼 굽게 되면 회색이 짙게 나오고 여기에 비색 청자유약을 입히면 회색 바탕흙색깔이 유약 사이를 비춰 푸른 빛의 자기가 나온다.

고려청자의 진수를 보려면 부안청자박물관을 찾아보라. 그리고 아직도 900년 전 도공의 혼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라. 옛것의 정신을 간직한 첨단기술을 볼 수 있을 거다.

버드나무 냇가[柳川里]에서/ 물장구치고 노는/ 물새의 모습이 눈에 밟히던 날/ 짓이겨진 진흙에 땀방울이 물보라를 이루니/ 초벌에 몸을 달군 자기瓷器는 벌써 옥색 옷을 갈아입고/ 송도松都로 떠날 채비를 한다/ 권력무상/ 만월대의 화려한 시절을 가슴에 묻고/ 800년 비밀의 긴 잠들다/ 이제 눈을 떠/ 부안 땅에 상감청자의 비색을 다시 피운다.
                                                                     - 만월대에 핀 부안 청자의 꽃 -

김철모 시인, 정읍문학회장
김철모 시인, 정읍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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