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있는 풍경

‘마을이 있는 풍경’은 ‘마을’의 속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소곤소곤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더 없이 가깝고 밀착돼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겐 대체로 멀기만 한 마을의 이야기를 때론 지직거리고 둔탁한 확성기로 때론 고성능 마이크의 ASMR로 들려드립니다.<편집자 주>

EBS의 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보았던 어느 다큐멘터리가 잊히지 않는다.

치매환자들이 사는 노인 요양원에서의 일이다. 그곳의 노인들 대부분이 4~5살 아이수준으로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는 중증 치매환자이다. 인지기능의 저하는 신체기능 저하를 동반하므로 걷고 움직이는 것,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 물건을 잡고 물건의 기능에 맞게 쓰는 것 등이 모두 어눌하다. 암체어에 기력 없이 앉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들을 찾아온 다큐멘터리 감독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한 흑인 노인에게 다가가 그 앞에 섰다. 누군가 낯선 사람이 자기 앞에 나타났지만 그는 특별히 반응하지 않는다. 몹시 무기력하게 보이는 중증 치매환자임이 한눈에 보인다. 눈에도 초점이 없다.

감독은 다가가 그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준다. 갑자기 노인은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눈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눈동자에 생기가 느껴진다. 어깨를 들썩이는가 하더니 마침내 일어나 흑인 특유의 스웨그(Swag)을 보여준다. 그리곤 흥얼대기 시작하는데 그때 그가 듣고 있는 음악이 배경에 같이 흘러나왔는데 미국의 6-70년대 음악이었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 음악을 듣던 시절의 감정으로 돌아간 듯 더 이상 조금 전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아니다. 그는 웃기도 하고 글썽이기도 하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생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무기력한 중증 치매환자에게 음악을 들려줬더니···
영화는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 전역을 돌면서 노인들을 찾아다닌다. 기억과 인지기능이 거의 소멸된 사람들에게 조차도 음악은 옛 기억을 되살리고 멜로디를 일깨운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멜로디가 틀리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음악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미국 전역의 요양원에 개인 이어폰을 제공해 음악을 들려주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는 음악이 우리 뇌에 기록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주장한다. 음악을 들으면 그것은 우리 몸에 녹아들어 우리 몸 그 자체가 되는 것이라고. 마치 피부세포에 저장된 것처럼 기억의 대부분이 소멸된 치매환자조차 어릴 적 듣던 음악을 기억하고 따라 부른다.

사실 필자도 한 살 아기 같은 치매 노모를 모시고 있다. 엄마는 완성된 문장 하나를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언어기능이 떨어져 있다. 아니 모든 기능이 그렇다. 언어로는 거의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목욕을 시켜드리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엄마는 아기들처럼 원색의 장난감으로 하루 종일 지치지 않고 놀이를 한다) 엄마가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불러드린다. 그런데 놀랍도록 그 노래들을 잘 따라 부른다. 가사는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지만 분명 그 노래를 알고 있다는 걸 느낀다. 몸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고 생각될 정도다.

엄마의 모든 기능이 약해져 수저나 젓가락을 사용하는 게 어려울 정도이고 어느 때부터는 빨대를 사용하지 못하신다. 아이를 키울 때를 돌이켜보면 빨대를 사용하는 것도 두 살이 넘어서 가능했다. 그런 모든 기능도 학습을 통해 기억한 것인데 그것조차 어려워진 걸 보면 엄마는 그 전의 단계로 기능이 퇴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어렸을 때, 혹은 성인이 되어서 배운 노래들을 지금 기억하고 따라 부른다는 건 참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다.

그의 레퍼토리를 듣는 것, 인생사 들여다보고 얽힌 삶의 조각 나누는 것

모든 기억을 잃었을 때 붙들고 있을 음악 레퍼토리를 위해서만은 아니지만 요즘 음악을 더 깊이 향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각별하다. 내 생애에 음악은 그것을 들었을 때의 감정, 상황, 사람들을 함께 불러오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어릴 때 듣던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흑인 노인의 얼굴에 나타난 여러 감정들처럼 음악은 그것들을 모두 함께 실어 나르는 힘이 있다.

올해 초, 어느 유명인의 청음회에 초대받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는 2시간여 동안 10여곡의 음악을 들려줬는데 한 곡 한 곡 사연이 구구절절했다. 10여곡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인생사를 다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산타나(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를 시작으로 한국 80년대 포크 음악을 거쳐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연주한 ‘바흐의 소나타’까지…… 수천 번 넘게 들었을 그 음악들이 10대, 20대, 30대, 40대의 그와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준비한 음악을 들으며 나도 생각했다. 헤어질 결심을 하게 한 리 오스카의 ‘마이 로드(My Road)’가 생각났고, 어린 나를 연예계에 진출 시키고 싶어 하던 외삼촌을 기쁘게 한 정훈희의 레퍼토리가 흥얼거려졌으며, 고등학교 앞 카페 이름이던 비탈리가 작곡가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된 후 그토록 오래 들었던 ‘샤콘느’가 기억났고, 내가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가장 최근작 2NE1의 ‘그리워해요’도 떠올랐다.

음악마다 어쩜 이렇게 샘솟는 이야기가 많은 지.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누는 모임을 시작했다. 전혀 다른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음악 취향도 다양해서 많은 음악을 함께 듣게 되지만 무엇보다 음악에 얽힌 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즐겁고 귀하다. 모두 바쁘게 현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겨우 한 달에 한번 모임을 할 뿐이지만 한 달 동안 다음 모임에서 들려주고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는 시간이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여러 음악 중에 고르고 골라 그에 얽힌 삶의 한 조각을 나누는 것.

텃밭이 있고 음악 듣고 책 읽을 수 있는 놀이터가 있는 삶
그래서 요즘 다시 꿈꾸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지난 달 ‘텃밭이 있는 삶’을 누리고 싶다고 썼는데, 여기에 더해 꽤 들을 만한 좋은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진 아지트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음악을 함께 나누는 우리 멤버들이 자신들의 음반, CD 등을 가져다 놓을 수 있고 한 달에 한번이 아니라 언제든 음악이 듣고 싶을 때 수시로 드나들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그런 공간. 그 생각에 의기투합한 멤버가 있어 멀지 않은 미래에 그런 소망이 이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텃밭이 있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가 있는 삶, 더 바랄 게 없다. 그렇게 피부에, 내 몸에 새기고 새겨, 노후에 기억이 모두 지워져 갈 때에도 끝까지 남아 그 아름다운 시절들을 되새기게 한다면 두려울 것도, 슬플 것도 없을 것 같다.

음악이 있는 아지트에 동참하실 분~ 모여보세요.

박소원 모네상스 전무이사
박소원 모네상스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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