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역사이야기

재해災害 극복의 의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가? 이런 물음은 항상 있었고, 21세기 오늘날 기후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래 인간 생존의 불안감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도 늘어났다. 특히 ‘COVID-19’ 혹은 극심한 가뭄과 홍수 등이 뒤덮은 오늘날의 상황은 자연히 재해에 관한 관심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인류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재해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문명을 창출했다.

인류의 문명은 자연의 파괴와 불가분의 관계이며, 이후 자연의 역습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류의 생존 본능은 재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후세는 이를 교훈 삼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문명을 이어오고 있다.

전통사회의 재해와 관련된 자료를 보면, 국가적으로 피해를 수습하는 방안과 피해 당사자들의 심리 상태, 그로부터 발생한 질병과 진휼 등 사회적 대책들도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이는 재해와 관련해 정치사상과 역사학적·철학적 이해도 중요하지만, 사회학·정치학·사회복지학·심리학적 이해를 동반해야 하며, 기상학·기후학·지질학 등 자연과학 및 의학이나 병리학적 이해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제방 축조 등 토목공사와 관련된 기록에서는 환경공학이나 토목공학 등 응용과학도 전통사회의 재해와 연관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전통사회의 재해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연계돼 있다. 역사학에서도 일찍부터 재해에 관한 연구를 해왔지만, 정치사의 해석을 위한 도구에 머물러있었다. 또한 재해 관련 자료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기보다 연구의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 정리함으로써 자료 정리의 한계도 있었다.

오늘날 국가 운영의 기본이 기록이고, 이는 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반면교사의 모범이 된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재해를 보면, 과연 이런 기본이 지켜지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될 정도이다. 재해 대책이 너무 정치에 묻히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동아시아 재해의 연구
동아시아 역사를 기상학·기후학 등과 같은 생태환경사와 연계해 연구한 것은 20세기 초 구미 학계였고, 자료가 풍부한 중국이 주요 대상이었다. 중국의 역사적 변화와 왕조교체 등을 중앙아시아의 이상기후와 연결해 설명하는 연구가 그것이다. 1950년대 이후에는 산업화로 인한 전 세계적 자연환경의 파괴가 갖는 위험성에 경고하는 연구가 있었다.

그리고 경작지의 확대와 숲의 파괴, 그로 인한 강물의 범람, 그 결과로서 나타난 인간 생활 방식의 변화와 그 상호과정에서 나타난 제도와 자연에 관한 인식의 변화가 환경사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런 구미 학계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는 유럽과의 비교 대상에 불과했다. 재해로부터 파생된 질병이나 전염병에 관한 연구에서도 제국의 성립과 쇠퇴, 전쟁과 같은 접촉 과정에서 흑사병黑死病이 유행했다는 점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생태환경사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삼림 파괴와 이후 경작지의 확대, 강의 범람, 동물의 서식지 변화를 추적해 인간에 의한 자연환경의 파괴가 갖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장기지속적인 기후변동의 주기성과 구황救荒 정책 분석 등에서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2000년대에는 재난의 과정과 법칙, 재해와 인구·지역사회의 관료·사회 관습 및 여타 문제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다뤘고, 기후변화가 중국 역사에 미쳤던 영향을 포괄적으로 다룬 연구도 나왔다. 또한 해양 재해 데이터와 역사를 정리해, 재난의 시·공간적 분포와 그 사회경제적 관계를 살펴보려는 연구도 있었다. 1949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구재救災 대책과 사상을 종합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중국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관련해 중국의 역대 왕조별로 발생한 재해와 그 대책에 관한 사료를 종합 정리한 자료집이 출간됐다. 최근에는 전통사회의 전염병에 관한 자료 정리와 분포도 등의 방대한 연구 성과도 도출됐다. 우리나라의 중국사 연구자들도 환경사의 관점에서 중국사를 검토했다. 대체로 구미와 대만臺灣의 연구 성과를 번역해 소개했는데, 이는 중국의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를 통해 국내에서의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목적을 갖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학계의 재해에 관한 연구도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자료의 한계가 분명한 고대사회나 고려시대보다 비교적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양적으로 가장 많다. 고려시대의 경우 일찍이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과 ‘오행적五行的 세계관’에 주목했다. 과학사의 관점에서 천문기상 관측 분야에서 이름을 드러낸 권경중權敬中과 오윤부伍允孚를 짤막하게 언급하는 연구가 있다. 자연과학에서도 『고려사』 기록을 분석해 가뭄[한旱]·홍수·상해霜害와 같은 재해, 흉년·역질疫疾·반란叛亂 등 사회불안 현상과의 관련성을 비교 분석한 연구가 있다.  

재난재해가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비와 대처의 자세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우려스러워

 재해와 같은 자연환경의 변화는 생활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는데, 『고려사』 오행지를 분석한 결과 12세기 전반기와 14세기 후반기에 가장 많은 재해 기록이 있는 것은 편찬자의 정치적 해석이 관여한 결과였다고 했다. 재해와 왕권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유교의 천인감응적 천명관天命觀에 따라 고려의 국가 제의祭儀가 소재消災를 위한 것이며, 왕권의 정당성과도 연결된다고 했다. 불교의 소재도량消災道場 역시 천인감응 및 군주의 수덕修德과 관련해 이해했다. 그리고 고려시대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보여준 노력과 전염병이 사회 문화적으로 끼친 영향을 찾아보려는 연구도 있다.

조선시대의 재해사 연구는 주로 문헌자료가 풍부한 조선 후기에 집중돼 있다. 『조선왕조실록』 재해 관련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왕조실록의 기록을 신빙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재해의 종류별로 빈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믿을만하다고 하며, 실록 기록 당시의 상황에 따라 빈도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반면 기록이 구체적이지 않고, 천인감응설에 따라 재해가 모두 기록되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재해의 원인에 대해서 역사학에서는 산지 개간의 증가와 부족한 수리시설 등 인위적인 부분에서 찾았고, 기상학에서는 조선 전시기 기상 현상의 주기적 경향에 주목해 15세기 중반까지는 가뭄이 특히 많았다고 했다.

재해에 관한 국가적 대책에서는 왕권과의 상관성에 주목했다. 즉 유교의 전통적인 천인합일의 관점에서 재해가 왕권을 제약하는 정치적 도구였다고 보았다. 재해에 대한 국가의 대책은 구황 정책으로서 환곡還穀 분급, 대량의 곡물 비축으로 나타났다. 사료상의 용어에 대한 분석도 있었는데, 실록에 등장하는 강우降雨 및 황사黃砂 관련 용어를 현상별로 구분하는 연구가 있었다. 그리고 구미 학계에서 이용하는 다양한 연구방법론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역사 속 재해에 대한 연구는
이를 통한 극복의 지혜를 얻어
현재와 미래의 교훈을 삼고자 함

 동아시아 재해 기록의 이용
우리나라와 중국의 재해에 관한 연구는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지만, 재해에 관한 연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즉, ‘자료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다양한 연구자의 관심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연구의 다변화와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방법론적 성장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자료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사회의 우리나라와 인접 국가의 다양한 자료를 종합해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다면 연구방법론의 새로운 확장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의 전통사회 연구는 문헌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그러나 문헌자료만으로는 더는 연구 성과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커 새로운 자료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 한국 중세고고학과의 학제 간 교류에서 찾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중세고고학 발굴성과가 소개되면서 전통사회 연구자들은 이를 토대로 새로운 연구가 이뤄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얽힌 고고학 자료를 통해 새로운 연구 성과를 이뤄낸다는 것은 그리 수월한 작업이 될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 새로운 연구를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은 자연환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고, 앞서 살폈듯이 정치·사회사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 또한 정치사 혹은 사회사를 보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해 DB 구축은 자연환경 연구의 기초 작업으로서 문헌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더욱 합리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재해 연구는 자연환경이라는 그 자체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정치사 및 사회사 등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봄으로써 전통사회의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이는 곧 고대사회·고려시대·조선시대 등 역대 왕조의 자연환경과 비교 연구를 활성화할 것이며, 기후학·도시공학·지리학·문화학 등 인접 학문의 자연환경에 관한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사회 자연환경의 재인식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며, 아울러 전통사회의 생활사 연구의 학문적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DB가 될 것이다.

재해 발생은 여러 피해를 유발하게 되고, 중앙정부와 지역사회는 이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게 된다. 임시 방편적인 대책은 재해 피해를 반복하게 될 것이고, 민심의 동요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재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피해를 최소화하게 되고, 반복적인 재해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점들이 정치·사회·경제·문화 등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국가 혹은 시기별 차이점을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역사 속의 재해 DB를 정리하면서 드는 궁금증은 과연 동아시아 자연환경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전통사회의 역사 기록은 중국의 역사 기록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용어의 쓰임에 있어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수재水災에서는 한·중 공통 용어로 ‘대뇌우大雷雨·대설大雪·대수大水·대우大雨·대우박大雨雹·대우설大雨雪·대풍우大風雨·삼우霖雨·우황토雨黃土·몽무雺霧·음우淫雨·음우陰雨·음우霪雨·흑수黑水’ 등을 찾아볼 수 있고, 반면 ‘홍수洪水’는 중국 자료에서만, ‘몽무雺霧’는 고려시대와 중국 자료에서만 근소하게 검색된다. 한재旱災에서는 한·중 공통 용어가 ‘대한大旱·무우無雨·불우不雨’ 등이지만, ‘동한冬旱’은 조선시대와 중국 자료에서만 검색된다.

충재蟲災에서는 한·중 공통어가 ‘독충毒蟲·명螟·모蟊·비황飛蝗·연蝝·청충靑虫·청흑충靑黑蟲·황재蝗災·황충蝗蟲’ 등이지만, ‘대황大蝗·황남蝗蝻·흑충黑蟲’은 조선시대와 중국 자료에서만 검색되고, ‘몽蠓·자방虸蚄·황연蝗蝝’은 중국 자료에서만 검색된다. 질병疾病에서는 한·중 공통어가 ‘기역飢疫·대역大疫·여역癘疾·역려疫癘·역질疫疾·온역瘟疫·자려疵癘·장역瘴疫·질역疾疫·학질瘧疾·우역牛疫’ 등이지만, ‘민역民疫·장려瘴癘·장병瘴病·충역患疫·축역畜疫’은 조선시대와 중국 자료에서만 검색되고, ‘염장炎瘴’은 중국 자료에서만 검색된다.

이로 보면, 재해 용어는 대부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간혹 ‘홍수洪水·몽蠓·자방虸蚄·황연蝗蝝·염장炎瘴’ 등과 같이 중국에서만 사용되던 용어가 있다. ‘홍수’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한·중 공용어로 ‘대수大水’가 있었는데, 이는 용어의 차별성보다는 ‘큰물’이라는 일반적인 명사를 공통으로 사용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몽·자방·황연·염장’ 등의 용어가 중국 자료에서만 나타나는 이유는 한국과 중국 간 기후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려시대와 중국에서 쓰이던 용어가 있었던 반면, 조선시대와 중국에서만 쓰인 용어도 있었다. 이 또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한 자연관의 차이 혹은 한·중 교류사적인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재해 기록의 교훈
현재까지 전해지는 모든 기록이 전통사회의 자연현상을 망라한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고대사회와 고려시대의 역사기록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공간과 시간을 채우기에 부족하다. 또한 조선시대와 중국의 역사기록 또한 순수한 자연현상을 기록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기록 정리했다는 비판도 있다.

고대사회 연구에 있어서 문헌자료의 한계는 고고학 발굴성과를 통해 꾸준하게 메꿔졌다. 고려시대 또한 문헌자료의 제약으로 인해 연구의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 정사류의 문헌자료가 있지만 조선시대에 편찬한 것이고, 개인 문집 또한 고려 후기에 집중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중세고고학 자료발굴을 통해 메꿔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조선시대는 정사正史·사찬私撰 사서·개인 문집 등 풍부한 문헌자료로 인해 다른 시대보다 능동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편이다.

전통사회에 관한 학문 연구가 균형 발전을 하기 위해서라도 내적인 자료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이 필요했고, 이를 오래전부터 중국 자료로 보완하고자 했다. 재해 연구에서도 고대사회와 고려시대의 자료적 한계도 중국 자료로부터 보완할 방안을 찾아왔고, 조선시대도 비교 연구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 문헌 중에서 재해 관련 자료의 DB 구축은 환경사 연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학계에서 전통사회의 자연재해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비록 과거의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의지 아니겠는가! 하물며 21세기 최첨단 과학의 발달과 디지털 기록의 활성화는 자연재해라는 천재天災를 어느 정도 완충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인재人災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음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신안식 가톨릭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신안식 가톨릭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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