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⑩

현대사회에서는 자치 기반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제도 중심 자치개혁 방식으로는 지방자치의 민주성, 효과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근 반세기 동안 지방분권 제도 개선을 통한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그 노력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지방자치 개혁이 그릇된 방향으로 정립되고 추진되었다기보다는 변화하는 자치 기반을 제도개혁이 따라잡지 못한데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든 한국이든 현재와 같은 점진적이고 정략적인 제도적 분권 방식으로는 지방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기 어렵게 될 것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현재의 지방자치를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우리보다 먼저 지방자치를 경험한 선진국의 현황을 되돌아보는 일이 유익할 것이다. 여기서는 미국의 자치경험과 일본의 자치경험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두 나라를 선택한 이유는 미국은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주민자치 중심의 사례이며, 일본은 한국이 지방자치를 모방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하여 우리의 모순과 미래를 발견하고, 미국의 사례에서 자율적 자치와 그에 따른 제도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으면 한다.

미국, 주민자율과 권력통제의 자치
우리는 미국의 지방자치를 주민자치의 모범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는 카운티(3000개), 뉴잉글랜드 타운(1500개), 타운십(1만5000개),특별자치구(4만개)와 같은 지방자치기구도 있으며, 법인의 형태로 설립되는 시티(1만9000개) 등과 같은 자치행정기구가 실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설치되어 있다.1)1) Wilson(1989: 619)은 미국 내부의 정부형태와 운영은 너무나 달라서 미국과 다른 나라의 정부 차이보다도 심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지방행정기구가 이렇게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미국의 자치 제도가 모두 ‘자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먼저, 카운티는 단체장이나 의회를 가진 자치구가 아니라 주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지방행정기구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자치는 주로 보안관, 서기, 검시관, 감정관, 검사 등과 같은 공무원, 카운티 이사 선출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후의 행정은 선출직 공무원들에 의해 행하여진다.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과 각종 부조리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자체 메커니즘이 없으며, 주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발전계획이나 재정획득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Lorch, 1989). 이들은 ‘주의 아들’로서 주의 도움과 통제를 받으며 지낸다.

둘째, 미국에서 분권이 강화된 지방정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시티이다. 미국에는 시티가 1만9000개 있는데 이 중에서 2500명 이상의 주민을 가진 도시는 6000개 정도이다. 시티가 카운티와 다른 점은 주에 등록된 법인이라는 점이다. 시티는 과거에 주민청원에 의해 법인화 되었지만 최근에는 도시 설립 남발로 인하여 주에서 스테이트 차터(State Charter, 주 헌장)에 그 절차를 설치하고 이에 따라 시티를 법인화한다. 시티야 말로 현대적인 의미의 자치기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시티가 되어야 자치조직권, 자치행정,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시티는 법인이기 때문에 각종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된다. 시티는 작은 도시든 큰 도시든 그 사무 기능이 유사하며, 단체장과 지방의회(local council)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는 그 수준이 기초이든, 광역이든, 농촌이든, 도시든 미국식 시티-법인격, 단체장선출, 기초의회선출, 자치행정, 자치입권, 자치조직권을 가진-에 해당하는 자치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티에는 자치권이 강화된 홈 룰 시티(home rule city)와 그렇지 못한 제너럴 로 시티(general law city)가 있다. 자치권이 약하고 주 의존도가 높은 제너럴 로 시티가 자치권이 강한 홈 룰 시티가 되기 위해서는 주민청원이 있어야 하며, 이를 인정하는 것은 주법에 따른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한국 자치 현실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는 대선 등 정치적 기회를 활용하여 불과 10년 만에 매우 높은 수준의 홈 룰 시티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한국이 일본식 자치제도를 답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지방자치를 주민자치(참여)와 단체자치(분권)의 양면에서 고찰하면, 미국의 지방자치에서 주민자치의 영역은 주로 주요 공무원 선출 투표와 그들에 대한 자치권 위임 형식으로 나타난다. 한편 단체자치의 측면에서 보면, 미국 농산어촌 지역은 주 정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방행정기구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도시지역은 도시를 법인화하여 스스로 사무, 조직, 재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되 여전히 주 정부가 재정보조, 주법제정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여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홈 풀 시티 설치에 대한 주 정부 규제가 심하여 주 헌법에 이의 설치를 인정하는 개헌을 하자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이다.

넷째, 미국의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참여는 다른 나라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반 주민의 자치 관여가 가장 강할 때는 세금을 부과할 경우이며, 그 이외에는 공무원을 선출할 때이다. 그 이외에는 미국 시민들이 자치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가 없으며 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1)자치행정 사무가 주로 일상적서비스 전달 업무에 한정되기 때문에 특별히 이를 주목할 만한 동기가 없다는 점 2)주민들은 미디어 접촉을 통해 국가적, 광역적 정보에 더 민감하다는 점2)2) 미국에 산재하고 있는 1500개의 뉴잉글랜드 타운에서는 직접민주주의 자치 방식을 도입하여 전 주민이 참여하는 연례회를 주최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공무원과 그 가족, 이해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런 식의 자치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학자들의 의견도 많다. (Lorch, 1989) 3)이미 사회적으로 상당 수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경험했으며 자치단체가 이에 부응하는 민주적 행정을 하고 있다는 점 4)지역 내부의 비영리조직-학교, 교회, 봉사단체, 도서관, 병원-등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실질적 주민참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분권 강화는 주도적인 현상도 아니며 분권 강화를 통한 지방 살리기 등의 논의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약 8만4000개에 달하는 지방행정 단위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자치 단위가 ‘주의 자식(children of state)’으로서 주와 연방의 지원에 의존하여 주민에게 기초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법인 형태의 시, 그중에서도 소수의 홈 룰 시티인데, 이들의 경우에는 도시정부가 나서서 주의 간섭 없는 자치행정권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들 홈 룰 시티의 자치권 강화 논리에는 지역 발전논리가 포함될 수도 있지만, 이들 도시에 대한 재정지원, 업무지원이 주로부터 이루어지며 주의 법률 개정으로 자치권 회수도 가능하므로 대규모 광역시를 제외하고는 주의 정치적 통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소수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분권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으며 분권 강화를 통한 도시의 경쟁력 강화 등의 목소리도 일부 도시정부 행정가들의 정치적 구호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미국의 지방자치 실체에 대해 몇 가지 발견과 문제를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이런식의 방만한 지방자치를 그대로 유지할까. 이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현재의 지방자치제도가 미국의 역사적 산물이고 관행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며, 두 번째 대답은 지방자치제도가 주민의 삶에 매우 민감하게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발간된 미국의 지방자치 관련 문헌을 보더라도 미국의 지방자치가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교과서와는 달리 민주주의, 효율성, 경쟁, 다양성 등과 결부시켜서 지방자치를 논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관심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매우 실용적인 답변이 등장한다. 로치(Lorch, 1989)는 이에 대하여 지방자치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첫째 지방행정이 주민에게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며3)3) 미국의 주와 지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공교육, 법 집행, 범죄단속, 보건, 병원,도로, 고속도로, 복지, 토지 사용에 대한 통제이다(Wilson, 1989:623)., 둘째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방공무원수가 매우 많아서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분권 강화와 광역화의 자치
일본의 자치는 한국이 모방한 자치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역사적으로 200여 개의 번으로 구성된 봉건국가 체제를 유지해 온 일본은 자치의 역사가 매우 오랜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의 지역 분할 통치였고, 영주가 제왕처럼 군림하는 지배체제였기 때문에 민주주의, 주민자치와 결부하여 논의할 가치는 크게 없다.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형 관료체제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또 막부통치가 지방의 권력 다양성, 문화 다양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반으로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일본학자들이 말하는 근대적 자치의 기원은 명치시대부터이지만 이 또한 천황과 군국주의 독재로 인해 유명무실한 자치행정단위로 묶인 것이었다. 예컨대 명치 대합병(1888)에서는 초등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규모의 지방자치단위를 7만1114개(정촌 수준) 제정하였는바 이는 정, 촌을 중심으로 주민을 조직하여 통치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소화 대합병(1947년)은 중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규모의 지방자치정부 1만505개를 시, 정, 촌으로 편성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자치는 중앙정부의 기획으로 행정구역의 광역화를 통한 행정 효율성 확보 및 분권강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진행되어 평성 대합병(1995년)에서는 자치구역을 3234로 줄이고 이후 3차 분권개혁을 통해 2006년에는 총 1821개의 자치단위를 설치하였다4)4) 3차에 걸친 분권개혁의 내용은 1차 행정 측면에서의 분권개혁, 2차 재정 측면에서의 분권개혁, 3차 ‘담을 그릇론’으로서의 시정촌 합병개혁을 의미하는 것이다(오재일,2007:350).. 일본의 경우 1980년 초부터 심각한 경기침체, 재정적자, 세계화 등의 요구로 인하여 최근까지 수차에 걸친 정부혁신-지방분권 연계 방식의 지방자치개혁이 있었으나 일본의 분권개혁에 대한 일반적평가는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자치는 민주주의와 자율의식에 투철한 시민의 주민 통제를 내용으로 하는 자치라기보다는, 중앙정치가 주도하는 정부혁신-지방분권 논리를 근거로 시행된 ‘하향식 자치’ ‘관공서 주도 자치’의 틀에 의존하고 있다(우에야마 신이치, 1990). 특히 일본은 최근들어 행정구역 개편과 분권 강화에 치중하여 기관 위임사무 폐지, 중앙정부 관여의 법정주의, 필치 규제제도의 폐지와 완화, 지방 사무관제도 폐지 등을 도입하였으며, “분권형사회의 창조”라는 목표를 세우고 지방정부 규모와 지방재정 개혁, 삼위일체 개혁(국고보조금, 지방교부세, 세원이양)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이 이렇듯 행정사무-지방재정-행정구역 개편으로 치달으면서 분권 강화를 외치고 있는 모습은 우리의 지방자치 개혁의 모습과 거의 같은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가 설치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일본의 과거 분권 모형을 그대로 우리의 현실에 이식시키려는 노력의 하나로 시도된 것이었으며 지방사무 이양을 포함한 대부분의 분권화 노력이 일본을 답습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지방자치 전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국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첫째, 일본은 100여 년 전에 주민자치 실시 명분으로 우리의 읍, 면에 해당하는 정, 촌에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명치시대 이후 정, 촌은 최소 자치 단위가 되었으며 아직도 정, 촌이 자치구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이 1950년대에 읍, 면을 자치 단위로 하여 선거를 시행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일본의 사례를 답습한 것이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읍면동을 기초 단위로 하지 않고 시군구를 단위로 하여 일본보다는 상당히 광역적인 자치 행정구역을 설정하였다.

둘째, 일본은 지나치게 많은 자치구역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재정적자를 기록하였다.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재정의 15% 이상이 이자상환으로 채워질 정도이다. 이러한 재정적자 대부분은 무수하게 많은 지방정부의 개발사업, 사회복지지출, 지방정부 공무원 임금 및 퇴직금 지출 등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

우에야마 신이치(1999)는 일본의 자치경영 문제를 “일본 정부의 지방자치는 제도나 경영에서 모두 파탄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은 파탄의 회피책을 생각하기보다는 파탄 후의 재생전략을 세워야 할 시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방정부가 아직 재정파탄에 이른 경우는 없다.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자치 권능에 대한 통제권을 아직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들어 광역 정부를 중심으로 재정적자가 심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셋째, 일본의 자치개혁은 재정위기에서 시작되어 분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분권개혁의 주도권을 민간에게 주고 있다. 최근 일본의 자치개혁은 지방재정 파탄을 극복하는 방식의 개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치경영 혁신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자치구역 개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분권개혁위원장이 기업인이라는 점에서도 일본이 지방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방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지방이양위원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등을 두고 분권을 추진해 왔으나 정치적 계산에 따른 분권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분권 관련 위원회의 위원장도 기업인을 임명한 적이 없다.

넷째, 일본의 자치구역은 지난 100여 년간 7만여 개에서 1천여 개로 대폭 줄었으며, 특히 1995년 분권개혁 이후 3200여 개에서 2006년 1800여 개로 줄이는 성과를 보였다. 원래 2006년까지 1000개로 줄이는 것이 목표였으나 지방정치인과 주민의 반대로 인하여 그 속도는 느려지고 있다. 특히 시정촌 행정구역의 합병은 일본 분권개혁의 사활이 걸릴 정도의 사안으로서 지방재정적자를 극복할 수 있는 매우 확실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한국은 최초 250여 개의 기초자치 구역을 현재 226개로 줄이는 데 그치고 있다.

다섯째, 일본은 1980년 초부터 경기침체와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적 재정위기에 봉착하여 이를 타개하는 방법의 하나로 정부혁신과 지방분권을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지방자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일본은 1981년부터 1993년까지 3차에 걸친 정부혁신 지방분권개혁을 통해 나름대로 체계적인 지방분권 노력을 수행해 왔으며 1995년에는 지방분권추진법 제정, 이후 삼위일체 개혁, 구조개혁 특별구역제도 설치 등을 통해 지방분권 계획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수십 년에 걸친 일본의 지방분권 과정을 보면 세계화, 재정적자, 경기침체, 사회복지 수요의 증가에 따른 정부혁신의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더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지방분권을 채택하고 있다는 특징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때 일본의 경우에는 중앙정부의 규모와 기능을 축소하고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을 동원하여 지방분권과 지역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일관성 있게 보이고는 있으나 그 효과에 있어서는 실망스럽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은 참여정부에 들어서 정부혁신, 지방분권, 그리고 지역균형개발을 동원하였으나 정부혁신은 중앙정부의 비대화로 인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고, 정부혁신과 지방분권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활용되어 그 실효성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방자치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이슈로 진행되면서 주민자치 이슈는 생략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균형발전이슈에 집착하면서 이를 선거와 정치적 지원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시사점
이글은 미국과 일본의 자치 전개과정을 고찰하고 양국의 자치경험과 시행착오를 교훈으로 하여 향후 한국의 자치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글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효과성, 경쟁, 다양성과 같은 가치를 인과관계적으로 초래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가치를 반영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지방자치, 왜 해야 하는 것인가?

필자의 견해로는 ‘지방자치를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지방자치는 어떻게 되어왔는가?’라는 질문이 더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 일본, 한국의 경우를 모두 통틀어 볼 때 지방자치는 기본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산물로서 이해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즉 자치 규범론자가 생각하듯이 지방자치는 어떤 규범적가치를 충실히 추구하기 위해 생겨난 것도 아니며 실제로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치 경험이 200년이 넘는 미국도 지방정치의 타락, 복잡하게 얽힌 정부 간 관계, 연방정부와 주 정부에 의한 통제, 지방정부의 엽관주의, 특정 정파의 지방공직 지배, 열악한 지방재정, 지나치게 많은 숫자의 지방정부, 도시 광역화에 대한 정치적 반대, 지방재정악화, 지방정부의 능력 부족, 주민의 관심 부족 등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본격적 지방자치 전면 실시 이후에 지방정부의 효율성 악화로 인하여 지방정부 합병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 전개과정과 일본의 자치 실험과정을 지켜보면서 ‘지방자치를 잘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라면, 첫째는 지방정부가 주민의 일상적 행정 수요-치안, 복지, 보건, 전기, 수도, 병원,학교, 공원, 레크리에이션, 고속도로, 법원, 건축규제, 구획정리, 자료보관, 종합계획 등의 일상적 사무-를 잘 파악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해 잘 반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둘째는 주민들이 자기 지역의 공무원들을 직접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책임성 있고 반응성 있는 행정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미국에서도 매우 회의적이지만-이며, 셋째는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숫자가 연방정부와 주 정부에서 일하는 숫자의 거의 두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가 지방정부가 제대로 된 기능을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사례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지방자치가 잘되어서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부국강병 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 연방정부의 권한이 주 정부(subnational governments)의 권한을 다소 압도하는 과정에서, 즉 연방정부와 개혁적 대통령의 주도하에 다양한 분야에서 지방정치와 행정-인권, 환경, 실적제 인사제도,지방재정, 교육, 보건, 도로, 복지 분야-의 개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상황은 거의 유사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연방정부가 강제로 자치구 조정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강력한 압박수단을 가지고 자치구역을 조정하고 있는 것에 차이가 있다. 이 말은 중앙집권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지방정치에 의한 행정이 그 수준에 있어서나 개혁성에 있어서나 그 능력에 있어서나 중앙수준을 넘기에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체제 속에서 관료적 통치를 받아 온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자치가 주민참여와 지방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약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타 국가의 경험을 보면 둘 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방정부의 행정 수준과 주민의 능력만으로는 지역발전과 혁신을 도모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적 민주적 관계 정립과 상호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기제를 잘 설정하는 일이 향후 더욱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각별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비영리 부문의 역할인데 미국과 일본의 경우 비정부조직(NGO), 비영리 부문(NPO)이 그간의 엄청난 성장을 배경으로 정책 이슈를 주도하며 프로슈밍(Prosuming)을 통하여 비화폐적 부를 축적한 것이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중앙정부와 비영리 부문(시민사회 부문)이 개혁적, 중립적 정책을 주도하면서 지방정부 개혁과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모습이 오늘날 선진국 지방자치의 현실적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런 점에서 두선진국의 사례와 교훈은 향후 우리의 자치 개혁에 많은 시사점을 주게 될 것이다. 공익형 NGO로서 한국주민자치중앙회의 역할에 대해 큰 기대를 해본다.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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