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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라는 가치의 확산
1987년의 민주화 이래 공고화로 가는 과정에서, 인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또 누구나 추구하고 보장받아야 할 가치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인권이란 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인권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십중팔구는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권리’나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동어반복에 불과한 답에 그치기 때문이다. 또 적절하게 답하려면, ‘인간다움’과 ‘권리’ 그리고 양자의 연결을 설명해야 하는데, ‘인간다움’은 특히 논쟁적이어서 합의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권, ‘인간의 올바름’
인권은 human right의 번역어다(人과 權의 각 의미에 관한 유사한 논의가 있으나 서양 문물의 수용과정에서 human right의 역어로 조어됐다는 뜻에 한한다). Human right란 말이 등장한 맥락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현대에 창조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대체로 고대 로마의 자연법 또는 자연권으로 번역되는 ‘ius naturale(유스 나투랄레)’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수용되고 있다. 몇몇은 더 나아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φύσις(퓌지스, physis, nature ; 자연 또는 본성) 또는 여기에 신이 부여한 질서(법)라는 논의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ius는 올바름이란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 ‘δίκαιο(디카이오)’의 라틴어 번역이다. 울피안(Ulpian, 170~228)이 “모든 인간은 자연의 법 아래에서 자유롭게 태어나고”, “정의(justice)는 모든 사람에게 ius를 부여하는, 연속적이고 오래가는 결정”이라고 한 것처럼, 대체로 고대 로마의 법학자들은 ius를 이성(reason)에 의해 ‘객관적으로 옳거나, 옳다고 발견될 만한 것’으로 이해했고, 사적이고 쌍무적인 관계에서 취해야 할 행동의 옳은 방법이나 법정에서의 판단의 근거로 간주했다. 그리고 신이 자연을 창조했기에 ius는 자연에 부여한 ‘신의 법’(질서)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오직 인간 본성(human nature)의 능력(이성)에 의해 알려진다는 점에서 ‘이성의 법’으로, 또는 맥락에 따라 능력을 강조해서 권리로 여기기도 했다.

11~12세기에 여러 언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이 대학 학부 교육과정의 주된 교재-예컨대, 1254년의 파리 대학이 학부 학위 이수를 위해 제시한 필독서 26개 중 19~20개를 차지할 정도-로 자리 잡으면서, 점차 ius의 권리로서의 성격이 강조되고 인간의 본성에 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형상과 질료의 합성이라는 존재론에 기초했기에, 중세의 교부들이 신의 형상과 계시를 강조했던 것과 달리, 질료(물질)와 인간의 이성(지성)에 관한 이해를 수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함은 물론, 국가 또는 공화국의 질료로서 개인과 이들의 본성(자연)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홉스가 『리바이어던』과 『시민론』에서 인간의 능력과 사회상태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 후에 19개의 자연법을 제시하고, 루소가 『인간 불평등기원론』과 『사회계약론』에서 자연권의 모든 규칙이 인간 본성에 있는 능력들의 결합과 배합에서 비롯되며, 이것이 사회계약을 통해 시민의 권리로 전환된다고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인권, ‘덕을 함양하고 실천하는 능력’
인간의 본성(능력)에서 자연권이 비롯된다는 생각은 본성의 올바름에 관한 이해를 요구하기에, ἀρετή(아레테, aretḗ: virtue, excellence, 덕)을 함양해야 한다는 고대로부터 계속된 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최초의 논의로서, 플라톤에게 올바름은 영혼의 이성, 기개(격정), 욕망이 제 역할을 다함과 동시에 이성이 나머지 둘을 지배(질서 있게)할 때를 가리키며, 이런 올바름이 있어야 이성이 ‘지혜’, 기개(격정)가 ‘용기’, 욕망이 ‘절제’라는 덕을 지니게 된다. 이런 덕을 지니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서 άριστοι(아리스토이, aristoi : 最善者)라고 불린다. 영혼의 탁월함을 말하는 excellence에서 elite란 말이 나온 것처럼, 덕을 함양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인간다움’을 지닌다는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근대의 사상가에게도 계승된다.

이렇게 보면, human right는 human justice의 현대식 표현에 해당하고, human justice는 지혜, 용기, 절제 등의 덕을 포함하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인간다움’과 ‘권리’는 능력에 의해 연결되며,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은 결국 덕을 함양하고 실천할 ‘능력’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인권교육의 목적이 그런 능력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견지에서 최근 인권이란 이름 아래 주장되거나 교육되는 다양한 권리와 이익을 살피면, 대체로 혐오, 비방, 의혹 제기 등과 같은 개인적인 기개(격정)의 표출이거나, 불법적인 성적 쾌락의 추구와 같은 개인적인 무절제한 욕망의 분출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권리와 이익에 관한 주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개인 간의 갈등을 증가시키고, 부족한 지혜와 절제에서 기인한 탓에, 법정 다툼의 증가를 초래한다. 이런 주장, 갈등과 다툼을 대화, 설득과 타협으로 해결하는 길을 보여야 할 정치권에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증가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고, 인류의 공멸을 경고하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에너지나 식량 위기 등의 문제에 있어서, 공존을 위협하는 각국의 이기심의 발로에 따른 교착과 국제소송의 증가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법정 다툼이나 전쟁은 일시적이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행스러운 일은 근본적인 해법이 이미 제시돼 있다는 것이고, 불행한 일은 거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상가가 강조했듯이, 그 해법은 바로, 덕을 함양하고 실천할 능력을 상생적으로 기르는 교육이다. 그리고 법정 다툼이나 전쟁이 이미 만연하다면, 절제를 함양하는 교육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절제는 본성 차원에서는 이성이 욕망을 지배토록 하는 것이고, 국가 차원에서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지배-덕을 함양해서 실천하게-하는 것에 합의하는 것이리라! 공익을 위해 사익을 내려놓는 것, 상생을 위해 자신의 기개(격정)와 욕망을 온건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올바름을 향한 첫걸음일 것이다.

오수웅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오수웅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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