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탄소중립

한국 제조업, 경제위기의 버팀목이자 혁신의 원천
탄소중립이라는 전 사회적인 변화는 산업계로서는 산업구조 및 생산방식, 제품 수요가 변화하는 것이며, 새로운 경쟁의 룰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럽,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주요국들이 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이면에는 글로벌 산업지형을 바꾸면서 자국의 경쟁우위 유지와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를 2018년의 30%,2050년까지 10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의 논의는 주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러나 산업부문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수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탈탄소화와 동시에 새로운 성장 원천을 발굴하고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산업은 유례없는 성장성을 실현했고, 외형적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 면에서도 높은 성과를 거뒀다. 자동차, 조선,기계에서 철강 화학, 그리고 ICT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으며, 대부분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를 가져온 것은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석유화학, 조선, 기계와 같은 한국의 주력산업이 글로벌 위상을 확보하고 있으며, 기술선도력과 품질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철강, 화학, 기계와 같은 소부장 산업이 있어 강건하면서도 유연한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탄소중립에 대한 산업정책 역시 국제경쟁력, 산업 간 연관관계를 고려하고 건물, 수송, 농업, 과학기술 등 전 사회적인 탄소중립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주요한 자산이자 성장 원천으로 활용한다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구조와 특성
2018년 총 국가 배출량 7억 2천760만 톤 중 제조업 및 건설업(25.6%), 산업공정(7.8%)을 포함하면 산업부문이 생산단계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1/3 정도가 되며, 전력 소비로 인한 간접배출을 포함하면 절반가량이 된다. 산업부문에서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6개 업종의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서 79%를 차지해 집중도가 크다.

직접배출과 공정배출만 보면 철강산업이 약 40%, 석유화학과 정유산업이 22%, 시멘트가 15%,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포함하는 전기·전자가 8% 수준이다. 그런데 전기사용에 의한 간접배출을 고려하면 철강 1/3, 화학 22%, 시멘트 10% 정도로 낮아지는 대신 전기·전자 25%, 기계산업이 7%로 높아진다. 전기·전자, 기계 부문에서 전력 사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산업에서 중소기업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의 탈탄소화와 아울러 안정적이면서도 경제적인 전력공급이 산업부문의 탄소중립에도 관건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석유정제, 반도체, 디스플레이등 다배출산업은 대표적인 설비집약형산업이며, 기초소재 및 부품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주요국에서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 철강, 화학, 시멘트와 같은 난감축산업에 대해 파괴적 기술과 공정개발 투자를 크게 확대하는 것은 이들 산업이 산업 전반의 필수소재이며 산업 파급효과가 크고 제조업 성장의 기반이 된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기차, 이차전지, 신재생에너지, 건물, 수송등에서의 탄소중립을 위한 주요 제품의 공급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한국 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설비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고부가가치화가 급격하게 진행됐으며,국내 기업들의 높은 운영역량에 힘입어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최신예 설비와 운용 연력을 갖춘 한국의 주력산업으로서는 현존 기술이나 공정을 통한 추가적인 감축이 어려운 한계상황이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처럼 산업화 역사가 오래된 국가들은 노후 설비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최신설비를 갖추고 효율성이 높은 운영을 하는 한국의 주력산업은 대부분 향후 20~30년간 설비가동이 가능해서 투자 회수가 종료된 설비에 기반하고 있어 매몰비용이 적고 좌초자산도 거의 없는 선진국과 차이가 있다.

산업부문의 추진전략과 예상되는 영향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2018년 2억 6천50만 톤에서 2030년에는 2억 2천260만 톤으로 14.5%, 2050년까지는 혁신기술의 적용과 산업구조의 변화를 통해 80.4%까지 감축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050년 산업부문의 5천110만 톤 배출은 원료 자체에서 배출이 불가피한 시멘트,화학, 전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탈탄소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2030년까지 감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수소, 바이오 등 대체 원료 공급의 불안정성과 혁신공정 기술개발과 적용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예를 들면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혁신공정의 개발과 적용은 2040년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2030년까지는 에너지효율 솔루션 도입 및 고효율 기기 도입, 전기화가 우선 추진된다.

산업부문의 감축 수단과 추진경로는 산업구조 재편, 혁신공정, 원료혁신, 원료 전환, 자원순환으로 크게 구분되며, 핵심 공통기술의 상용화, 에너지 효율 향상이 모두 최대한으로 추진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혁신공정 전환은 친환경·저탄소 생산공정의 개발·적용을 통한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으로의 변화하며, 이 과정에서 설비공급과 수출역량 강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연·원료 대체는 저탄소 연·원료 투입 비중을 높여 온실가스 배출 저감과 자원순환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석유화학에서 석유·납사 기반에서 바이오 납사 혹은 수소 기반 화학산업으로의 전환하거나, 석유제품 생산단계를 생략한COTC(Crude Oil to Chemicals), 철스크랩(고철)을 사용하는 전기로의 생산 비중을 늘리는 것을 포함한다.

공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저감하기 위해서는 원료 이용의 효율화와 더불어 반도체 혹은 디스플레이 생산공정에서 사용하는 불화가스 등의 공정가스 대체, 시멘트에서 혼합재의 비중 확대 등이 필요하다. 에너지 효율화는 기계/전기·전자부문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초고효율기기·설비 도입을 촉진하고 노후설비 교체를 통해 추진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스마트공장, 스마트산단,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 확대가 필요하다. 여기에 폐열·폐플라스틱등의 재활용과 투입 확대, 시멘트에서 폐열발전 활용, 석유화학에서 원료로 폐플라스틱 재사용 등 자원순환이 추진돼야 한다.

향후 산업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현재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공정, 그리고 제품화 기술의 확보, 그리고 설비교체의 적기성이 관건이 된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통적인 제조 강국은 제조업 부흥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철강, 화학 등에서 혁신공정이 개발에 착수하고,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에 필요한 제품과 설비를 공급하기 위한 신제품 개발과 제품화에도 주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 사회적으로 저탄소화·친환경화에 대한 요구가 계속 높아지면서 제품 수요도 변화해야 한다. 이에 따라 철강, 화학과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적으로 제품구조 및 산업 간 연관관계가 바뀌면서 산업구조 재편이 진행될 전망이다.

산업부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주요 정책과제
한국 산업은 국제경쟁에 전면적으로 노출돼 있으며, 산업 간 연관관계가 높아 특정 산업 혹은 공정의 변화만으로는 탄소중립과 지속적인 성장을 동시에 실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산업발전의 방향과 생산방식, 그리고 산업생태계 전체의 변화를 포함하는 전 주기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또한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전환에서 야기되는 공급망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생산단계에서 공정과 원료, 연료를 바꾸는 것과 아울러 수요 측면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시장변화를 포착해야 하며, 전 사회적으로는 기술, 인력, 자금, 시장 창출을 모두 포함하는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기술개발 단계에서는 국가 주도의 와해적 기술개발과 상용화 지원을 위해 탄소중립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포함해야 한다. 투자단계에서는 친환경·저탄소 설비투자를 촉진하고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후기금 등의 녹색금융 활용, 한국형텍사노미(taxonomy)가 정립돼야 한다.

다음으로 친환경·저탄소 제품의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기반 구축, 사회적 수용성 강화가 필요하다. 순환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폐기물을 단순 재활용(Recycling)이 아니라 가치를 더하는 재활용(Upcycling)이 되기 위한 시스템 준비가 필요하며, 환경부, 과학기술부, 산업부의 역할분담이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산업구조의 재편에서 변화가 가시화하는 것은 중장기가 되겠지만, 이에 대한 준비는 당장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선도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변화를 뒤쫓기보다는 함께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중소기업이 집적한 산업단지, 지역, 그리고 노동 등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내연차처럼 급격한 수요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산업생태계 자체가 전면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므로 단계적이면서도 질서 있는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노동, 지역과의 소통과 협력은 산업전환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탄소중립에 대응하는 제품혁신과 신수요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 현재는 다배출산업의 공정전환을 위한 기술개발이 주로 언급되고 있지만 건물, 수송, 에너지 등 사회 전 분야의 탄소중립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현한 제품, 솔루션, 서비스 등 다양한 업종과 제품이 출현해야 한다. 2021년 12월 발표된 정부의 “탄소중립 산업 대전환 비전과 전략”은 저탄소 소부장(바이오, 이차전지 등), 그린 플랜트(친환경 공정, EPC 등), 친환경 인프라(수소, 모빌리티 등)를 유망산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는 보다 적극적으로 초고효율 기기,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수소저장 및 운반시스템 등 새로운 친환경·저탄소 시장을 제시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탄소중립 시대의 경쟁은 더 잘하기 위해 추격하던 기존방식이 아니다. 따라서 기존의 생산방식과 제품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지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친환경, 저탄소 제품과 솔루션을 확보해 새로운 기회의 창으로 만들어야 한다. 탄소중립 선도국들은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을 통해 글로벌 산업 질서의 재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기업의 준비도를 점검하고, 현장에 맞는 기제를 발굴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탄소중립 R&D 이니셔티브, 탄소중립 산업전환 촉진 특별법 제정, 기후대응기금, 투자 촉진을 위한 녹색금융이나 녹색 텍사노미 등 다양한 제도들이 규제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기업들의 변화를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단기경쟁력 상실을 방지하기 위해 탄소저감 인센티브, 재생에너지 요금 감면, 탄소차액계약제도, 디지털뉴딜의 효과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소비자(시장)도 저탄소제품 구매를 확대하고, 관련 제품의 가격상승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고비용의 저탄소 제품을 생산한 후 시장에서 판매돼야 기업들이 비로소 투자와 수익실현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탄소라벨링을 통해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공개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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