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탄소중립

왜 유럽의 ‘기후중립도시 100’을 소개하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들어서며 한국도 기후변화라는 실존적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2010년부터 정부는 한반도와 세계에서 나타나는 이상기후의 모니터링·평가를 통해 효과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자 매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2022년은 폭염도 심했지만, 서울과 수도권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와 추석을 앞두고 찾아온 태풍 ‘힌남노’로 인한 피해가 더욱 커서 보고서의 많은 지면이 관련원인과 대응에 할애될 것으로 보인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자연의 위협이 국내 도시의 대응 수준을 넘어서고 있어 여러 매체에서 보여주는 피해자로서의 도시 일면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처럼 기후위기가 커지도록 원인을 제공한 핵심 관계자, 즉 가해자가 도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큰 관심을 두지않거나 회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게 도시는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성을 바탕으로 에너지 확보·배분, 수자원과 폐기물의 순환 에너지원으로써 화석연료를 지속해서 이용해오고 있다. 지금의 도시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 자본재(capital goods, 자본재는 부의 창출을 위해 인간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 또는 중간생산물)는 지구온난화·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와 연결돼 있다. 심지어 도시민이 즐겨 찾는 쾌적한 쉼터인 공원조차도 조성을 위한 철근·시멘트·석재, 운영을 위한 물·전기 등이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공급된다. 우리가 즐겨 찾는 자본재와 상품이 화석연료를 통해 공급되고 의식주와 관련한 기본권 영유가 기후적 위기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듣기 불편하다.

16년 전 <불편한 진실>에서 말하던
기후변화와 위기에 대한 경고에도
큰 경각심 없이 지금에 이른 상황

2006년 앨 고어(El Gore) 전 미국 부통령이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직접 출연까지 해가며 기후변화라는 실존적 위기를 간과해 인류의 대응 잠재력을 과소하게 사용한다면 치러야 할 대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했던 호소를 들으며 나의 마음도 불편했었다. 16년이 흘러 월간 <공공정책>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을 때 문득 그때가 떠오른 건 그 불편함이 여전하기 때문인가 보다.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앨 고어의 예언은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도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가 많을 것이다. 국가적 대응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을 공평하게 짊어지기 위한 사회적 논의도 부족한데 행정적·재정적 지원체계를 갖추지 않고 섣부르게 추진했다가는 더 큰 비효율과 불안정을 초래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불가피하게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국내 도시들은 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이런 속내를 알 듯 유럽연합에서는 2020년부터 2030년까지 ‘기후중립도시 100’(100 Climate-neutral Cities)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기후위기 사정은 유럽의 도시도 국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세계를 선도할 포부를 안고 먼저 도전적인 정책들을 세세하게 준비한 그들의 추진력은 대해서는 부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소개할 유럽연합의 기후중립 정책과 ‘기후중립도시 100’ 프로젝트 사례가 조금이라도 가볍게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유럽연합의 기후중립 정책과 ‘기후중립도시 100’ 프로젝트
유럽연합(Europe Union)은 27개 회원국이 약 4천500만㎢의 영토에서 약 4.5억 명의 인구와 함께 자본 및 서비스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유럽을 위해서 참여한 정치·경제적 통합체이다. 1987년 발효된 단일유럽법 제정 단계에서부터 다자주의 전통을 지켜온 유럽연합은 가중다수결(qualified majority)에 근거한 환경 분야 입법으로 포괄적인 환경정책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후변화에도 정책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 탄소중립 정책목표인 온실가스 감축 20%, 재생에너지 분담률 20%, 전환효율 20% 향상을 달성하기 위한 법적 기반으로서 기후 및 에너지 패키지(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 개선과 확장 포함 6개 법률)를 마련했다.

그러나 기후중립 정책 추진 초기에는 유럽연합 또한 관련 정책이 에너지 또는 제조업 등에서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배출량 감축 비용의 추정이 가능한지? 등 의사결정에 참고할 데이터와 통계가 부족했다. 이에 과거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질문들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후변화모니터링보고체계를 제도화해 현재는 향상된 통계정보 시스템에서 EU 회원국의 배출량 정보가 체계적으로 모니터링되고 있으며 검증된 통계가 매년 가을 제공되고 있다(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PDF/?uri=CELEX:32013R0525&from=EN).누적된 통계는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분리된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유럽연합의 정책적 목표가 상당히 진척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연합은 연 GDP의 1.5%에 해당하는 재정(약 400조원)을 저탄소 발전, 스마트·광역 그리드, 친환경 교통·수송(수소·전기차 등), 저에너지 주택, 고효율 가전제품 등의 자본재를 저탄소로 전환하기 위해 집중해 투자하고 있다. 관련 자본재는 대부분 건물과 도시공간에 설치 및 운영된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 유럽연합은 건물에너지 성능지침을 개정했다. 유럽 에너지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건물에 대해 회원국들은 최소 에너지 성능요건을 확정해야 하며 보일러 및 공기조절시설 등의 에너지성능요건 인증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2012년 채택된 에너지 효율화 지침에서는 스마트계량기, 주거용 건물의 에너지 관리, 상업용 건물의 에너지 모니터링, 공공건물의 개조, 지역난방 등 정주지 공간의 에너지 효율화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건물의 에코디자인, 에너지 라벨링, 성능향상 계획 등 자본재의 탄소저감 조치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을 기준으로 2014년까지 유럽연합의 GDP는 44%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에 온실가스 배출량은 19% 감소했다. 이는 유럽 영내에서 탄소를 배출하며 생산되는 자본재의 비중이 줄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향후 더 많은 저탄소·친환경 자본재가 건물과 도시로 스며들 것임을 의미하는 신호이다.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 하기 위해서 유럽연합은 도시의 적극적인 기후 행동(Climate Action)을 지원하고 있는데,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기후적 위기 극복을 위해 내재한 잠재력을 낮은 수준으로 사용하거나 적시에 필요한 기후적 중립 조치를 포기 또는 외면하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약 75%의 유럽인은 영내 면적의 4%를 차지하는 도시에 모여(2050년에는 영내 유럽인의 85%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된다) EU 총 온실가스의 3/4을 배출하기 때문에 도시를 통한 기후중립 잠재력은 높다. 이미 여러 시장(Mayor)이 공식적 약속을 통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 및 기후를 위한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있다(Covenant of the Mayors for Climate & Energy). 유럽연합은 영내 도시들이 기후 행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회원국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기후적 중립에 이르도록 목표치를 상향했다(Horizon 2020 및 연구혁신 프로그램, 그린 딜 등이 목표달성을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 도시들이 가능한 한 빨리 기후적 중립 준비를 서두르도록 ‘기후중립도시 10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이 프로젝트의 임무는 영내의 도시가 유럽연합이 2050년까지 이뤄야 할 목표를 2030년까지 10년 안에 초고속으로 달성해 전 유럽을 변화시킬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도시의 전환을 위한 혁신적 실험을 멈추지 않을 큰 야망을 품은 도시,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과 도전을 포용할 준비가 된 도시를 위해 유럽연합은 포괄적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더불어 유럽 영내의 ‘어느 도시도 기후적 중립을 위한 전환에 뒤처지지 않도록 한다’는 정책적 목표도 견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선정된 도시는 2030년까지 기후적 중립전환을 이룸과 더불어 이후부터는 역량이 낮은 주변의 도시를 파트너로서 돕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원할 도시의 자격도 되도록 모든 도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다. 2030년까지 도시적 전환이 어려운 경우 특정 공간에 한정해 추진할 수 있으나 도시적 기후중립전략은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선정 절차와 기준도 주목된다. 투명한 절차에 기반해 규모, 거버넌스, 예산, 재원 등 객관적 지표를 산정하지만, 점수가 낮더라도 도시의 열망과 포부를 충분히 포용해 선정할 것임을 제안서에 명시하고 있다.

유럽 영내의 320여 도시들이 관련 지침(2019, “Smart city guidance package: A roadmap for integrated planning and implementation of smart city projects”)에 따라 자체평가를 수행하고 기후적 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 지원했으며 2022년 4월까지 12개 회원국의 71개 도시가 선정됐다. 선정된 도시들이 청년 노숙자 지원등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강조하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후중립도시 100’은 세 단계로 추진되는데 현재는 1단계(2020~2022)를 마치고 추진할 도시의 선정과 지원기금이 마련됐다. 2단계(2022~2030)에서는 선정된 도시의 기후중립 전환이 전략적으로 이행되며, 3단계(2030~2050년)에서는 유럽의 신성장 동력을 끌어올릴 기후적 중립 도시를 복제하고 확산시킬 것이다.

한편, 최근 러시아발 천연가스 수급 불안정 여건 속에서도 이들 도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한 전력질주(Cities Energy Saving Sprint)를 서두르고 있다. 특히 투자를 강화하는 부분은 유럽연합의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정책이다. 이 정책을 통해서 유럽연합은 도시들 사이 디지털 역량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포괄적 정보화를 강화하고 있다.

‘NetZeroCities(NZC)’는 이러한 정책이 반영된 프로젝트이다. NZC는 유럽연합의 그린 딜(Green Deal) 사업을 지원 하는 Horizon 2020 연구 및 혁신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NZC는 유럽 도시가 사회적으로 포용적인 방식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지원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 세계 실무자들의 서비스 플랫폼을 지향한다.

2030년까지 기후중립 전환 과정에서 당면할 구조적, 제도적, 문화적 장벽의 극복을 돕도록 설계됐다. 주목적은 기후중립 임무를 수행할 71개 도시를 지원하고 모니터링는 것이지만, 이번 지원에서 선택받지 못한 250개의 도시가 향후 사업에서 단기간에 따라올 수 있도록 71개 도시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해 간접적인 학습 기회를 높일 계획이다.

마무리하며, ‘왜 유럽연합에서 먼저 기후중립 정책이 시작됐을까?’, ‘왜 유럽의 도시들이 어려운 기후중립을 서두를까?’ 생각해보면 그 추진 배경에 지식인 외 많은 유럽 시민의 기후중립에 대한 열망과 지지가 자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유럽 영내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자본재의 소비 방식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그들이 사는 도시의 에너지·수송·건물·산업이 더 빠르게 탈탄소화를 이룰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내 탄소중립도시 추진을 위한 시사점
국제사회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으로 처우하며 한국의 탄소집약적 산업과 자본재에 대한 무임승차를 제도적으로 용납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국제적인RE100(Renewable Energy 100) 협약에서 보듯이 국내 기업들의 산업적 기반과 제품도 근본적으로 변해야만 한다(RE100은 국제적 기업 간 협약 프로젝트로서 기업의 자본재 생산·유통 과정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출 지향적 산업구조를 강화해온 한국에게도 기후중립도시를 통한 적극적인 저탄소 자본재·산업 전환은 불가피한 선택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 큰 전환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계층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어떤 재정적·행정적 지원체계로 정의롭게 전환해야 할 것인가?’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진행될 유럽연합의 정책 및 ‘기후중립도시 100’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유럽연합이 세계의 도시들을 위해서 준비했을 기후중립도시의 야망과 선도적인 여정에서 쓰일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는 아직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선택받지 못한 250여 유럽 도시들처럼 세계의 도시가 이들의 도전을 지켜보는 이유는 감동과 더불어 실리적 고려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도시를 향한 중앙정부·지방정부의 정책적 약속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도시의 기후적 중립에 모이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 중앙정부는 유럽연합처럼 국내 도시들이 내재하고 있는 기후적 중립 역량을 상세하게 파악해 광역적 협력을 통해 기후중립을 선도할 전략과 계획이 마련된 도시에 대한 투명한 심사와 전폭적 지원을 약속해야 할 것이다. 이는 도시를 구성하는 자본재를 저탄소로 전환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디지털전환 역량을 높이고 정의로운 전환을 폭을 넓게 펼칠 수 있도록 행정적·기술적 수단의 지원에 대한 약속을 포함한다.

지방정부는 도시가 내재한 직·간접적 탄소 발생 메커니즘과 저탄소화 경로를 바르게 이해해 신속하게 탄소중립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역 공동체와의 충분한 소통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광역적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각각의 도시가 내재하고 있는 탄소 발생메커니즘과 탄소 저감 경로가 국가적 차원에서 공유된다면 광역적 협력을 위한 노력이 더욱 원활해질 것이다.

필자 역시 한 시민으로서 거대한 기후변화 흐름에 유의한 제동을 걸지는 못하더라도 과학과 기술이 도시를 통해서 기후적 중립을 이뤄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노력 정도는 해야겠다.

안승만 국토연구원 국토환경·자원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안승만 국토연구원 국토환경·자원연구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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