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공성의 눈으로 본 영화이야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타계와 영국 군주제의 미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022년 9월 8일 타계했다. 제국주의 잔재 청산, 군주제에 대한 오랜 반감과 폐지 논쟁에도 불구하고, 겸손과 후덕한 성품 등 개인적인 덕망과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반인 참배 기간에 영국인들이 최대 30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대기 줄에 기꺼이 서서 관 한 번 바라보고 지나가는 모습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영국 BBC 텔레비전의 앵커와 아나운서들이 검은색 상복을 입고 뉴스와 애도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도 왕정이 아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추모 풍경이었다.

엄숙하게 거행된 장례식도 고인의 상징적 크기에 걸맞은 격식 있는 행사였다. 전 세계 4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시청했다는 추산도 있는데, 이는 텔레비전 방송 역사상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스포츠와 같이 짜릿한 ‘각본 없는 드라마’도 아니고, 재미를 찾기 힘든 장례식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장엄함과 거리가 먼 다른 측면들도 도드라져 보인다. 여왕이 타계하자, 기다렸다는 듯 많은 언론이 영국 왕실의 그늘진 과거에 조명과 카메라를 들이대고, 키보드를 바쁘게 두드려 누군가는 감추고 싶었을 음습한 이야기를 잔뜩 끄집어냈다. 주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과 찰스 전 왕세자에 관한 것으로, 다이애나의 이혼과 비극적 사망, 찰스의 재혼에 대한 험담과 같은 것들이다.

찰스가 영국 국왕에 오르게 되니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곧 있을 대관식은 여왕의 장례식에 이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세기의 이벤트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관심의 크기와 방향은 막 즉위해 보위에 오른 자에 대한 세간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크게 벗어난다.

타블로이드(tabloid)라 불리는 황색 저널리즘의 엽기 지향성과 파파라치들의 관음적 영상들이 뒤섞인 건강하지 못한 시각과 이미지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찰스에 대한 큰 관심은 궁극적으로 군주제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기에 가볍게 지나칠 일도 아니다.

2022년 5월 초, 유력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는 “영국이 군주제를 미래에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선출된 국가수반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영국인 1천669명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였다. 65세 이상의 77%, 50세에서 64세 연령층의 68%가 군주제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예측 범위 안의 결과로 여겨진다.

그러나 18세에서 24세까지의 젊은이들은 33%만이 군주제를 지지했다. 31%는 국왕 자리를 없애고 대통령과 같이 선거에서 당선된 정치인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답했다. 흥미롭게도, 36%의 젊은이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젊은이들이 국가의 상징이나 정치 자체에 관심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혹은 ‘왕실이 하는 것을 봐가면서 결정하겠다’는 답변 유보의 의미로도 읽힌다.

절대왕권을 운위하던 시절의 군주제와 전혀 다른 근현대적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국가는 드물지 않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와의 화학적 결합에 성공한 유럽에서는 새로운 체제가 완전히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특히 영국의 경우 왕정 폐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 권력 없이 상징 권력만으로 특권을 유지해야 하는 왕실의 운명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와 찰스 3세의 즉위를 즈음해 영국 왕실을 다룬 콘텐츠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중에서 국왕의 장례식 장면을 담고 있는 드라마에 특히 눈길이 간다. 영국 왕실을 그린 <더 크라운>(The Crown)이다.

문제적 인물 전 국왕 에드워드 8세
<더 크라운> 시즌 1의 전반부는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3세가 타계하고 장례식을 준비하던 즈음의 사건을 그리고 있다. 왕이 죽으면 그 자리를 후손이 대체해야 한다. 조지 3세의 타계로 왕위를 물려받은 사람이 최근 영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아버지가 죽고 딸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 딸이 죽고 아들 찰스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피로 세습되는 왕좌는 필연적으로 부모의 죽음을 통해서만 탄생할 수 있다. 슬픔과 기대, 과거와 미래, 회한과 희망이 교차한다. 그 자체로도 감정을 건드릴 만한 요소가 있다.

그런데 장례식 참석을 위해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 영국 땅을 밟으면서 극적인 요소가 배가 된다. 타계한 국왕의 형이다. 그러니까, 막 즉위한 젊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큰아버지다. 결정적으로 그는 과거에 영국의 국왕이기도 했다. 공식 명칭은 에드워드 8세였다. 말 그대로 고귀하신 왕족(Royal Highness)이다.

이 지체 높으신 분이 사우샘프턴(Southampton) 항구에 선박 편으로 입국한다. 수많은 군중이 선왕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카메라를 든 기자도 여럿 보인다. 신사복을 차려입은 준수한 외모의 남성이 하선해 청중에게 한 말씀 하신다.

“동생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어머니 대왕대비 전하를 위로하기 위해 왔습니다. 두 공주님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왕족답게 말씀도 따뜻하고 점잖게 하신다. 모여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열렬히 그를 환영한다. 군중은 한때 국왕이었던 그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정작 그의 가족인 왕실 사람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기 짝이 없다. 에드워드는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윈저궁에 들러 대왕대비 전하인 어머니를 알현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손등과 볼 키스는 서양 의례이긴 하지만,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나 형식적이고 건조하기 짝이 없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안부 따위는 묻지도 않고, 서거한 둘째 아들 얘기만 한다. 모자지간에 이게 무슨 일인가.

사실 에드워드에게 가장 힘든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다. 왕대비인 제수씨다. 둘은 사이가 너무나 좋지 않다. 에드워드는 제수씨가 뚱뚱하고 평범한데다 요리사처럼 생겼다며 그녀에게 쿠키(cookie)라는 별명을 붙였고, 제수씨는 시아주버니의 아내, 즉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 큰동서를 ‘그 여자’라고 불렀다. 남편의 형이 너무나 싫은 왕대비는 따님인 여왕에게 단단히 이른다.

“에드워드는 괴물입니다. 이기심과 나약함 때문에 중책을 저버린 걸 저는 절대로 용서 못 해요. 가족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사람입니다. 친절해 보이는 그의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한편 에드워드는 해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왕대비인 제수씨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 가족은 냉혈 괴물들이요. 쿠키가 그 납작한 코로 감히 나를 경멸적으로 대하는 모습이라니! 한바탕 퍼부어 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소.”

서로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지체 높으신 분들이 왜 이러시나. 이 정도 되면 콩가루 집안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둘의 악연은 오래됐다. 어쩌면 제수씨가 왕실로 시집오기도 전에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의 전 세대 왕은 조지 5세였고, 장남인 에드워드가 당연히 왕세자에 책봉됐다. 그는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참전해 군인의 임무를 수행했고, 제한적이나마 군용기 조종사로도 활동해 국민에게 전쟁 영웅 이미지를 심어줬다.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왕가의 상징적 구심점 역할에 상당히 기여했고, 영국 국민은 그런 왕세자를 사랑했다.

세상이 그리 공정하지 못해서, 지체 높은 왕자님으로 태어난 에드워드는 언변도 좋았고, 외모마저 매우 출중했다. 미국의 한 패션잡지가 “평균적인 미국 청년은 그 누구보다도 에드워드 영국 왕세자의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쓸 정도로 패션 감각도 뛰어났다. 전쟁 후 아버지 국왕을 대신해 국내외 여러 곳을 여행했는데, 가는 곳마다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모델 같은 느낌의 ‘왕자님 사진’이 연신 미디어를 장식했다. 에드워드는 당시 최고의 포토제닉 셀럽 중 하나가 됐다.

그에 대한 국민적 호감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국가의 상징으로서 손색없는 외모에, 군복을 입고 나라를 지켰고, 국내외를 부지런히 다니며 대영제국을 건사했다. 반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인 그의 동생 앨버트는 국민의 눈에 전혀 들지 못했다. 아버지인 국왕의 눈에도 들지 못했다. 중세 왕족의 신비감을 모던한 패션 감각으로 승화해 미디어 스타가 된 형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외모는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였다. 앨버트는 말더듬이였다. 간헐적인 발작 증세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 국왕은 성공회의 수장이다. 종교와 결탁된 왕가는 신계와 맞닿아 있었고, 완벽한 이미지를 추구했다. 장남 에드워드는 만족스러웠고, 차남 앨버트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앨버트는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형에게 열등의식이 있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형에게 의지하고 잘 따랐다. 형도 동생을 아끼고 잘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너무 잘 데리고 다닌 데서 사달이 났다. 형은 태생적으로 난봉꾼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의무를 싫어하고 파티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1차 대전 이후 서구사회는 전쟁과 죽음에 진절머리가 나 즐기며 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인간은 의무와 노역만 짊어지고 살다 전쟁터에서 헛되이 죽어서는 안 된다. 개인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즐기는 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쉽고 적극적인 방식이다. ‘광란의 1920년대’(the roaring twenties), ‘재즈 시대’(Jazz age)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시절이었다.

시대적 분위기는 에드워드 형의 천성에 잘 맞았다. 그는 사교계를 기웃거리던 유부녀 프레다 워드(Freda Dudley Ward)와 정분이 났다. 알고 보니 불륜은 1차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것이었다. 여자는 호주 출신 유부녀 쉴라(Sheila Loughborough)를 끌어들였고, 형님 왕자는 동생 왕자에게 이 매혹적인 유부녀를 소개해 줬다. 동생 역시 바로 불륜을 시작했다. 네 명의 불륜 커플은 어울려 다니며 즐겼다. 형은 애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 네 사람은 너무 환상적으로 즐기고 있어요. 안 그렇소, 나의 천사? 그리고 나머지 세상은 엿이나 먹으라고 합시다(And f**k the rest of the world).”

형은 이런 수준의 사람이었다. 왕손으로서 공식적인 의무를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왕손이 누려야 할 사회경제적 지위는 당연시했다. ‘나머지 세상’에 관심이 없었고, 대신 파티를 좋아하고 여자를 밝혔다. 동생 역시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으로서, 또 일국의 왕자로서 지탄을 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러나 믿고 의지하는 왕세자 형이 동생인 왕자를 이런 관계에 끌어들였다는 것이 더 크게 거슬리는 대목이다. 영국인들이 ‘이런 인간들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그걸 왜 받아들여야 하지?’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임을 지나, 일종의 국민의 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퇴위한 선왕과 왕대비
사귀던 유부녀에게 싫증이 난 형은 또 다른 유부녀 셀마 퍼니스(Thelma Furness)와 정분이 났다. 그리고 얼마 뒤 이 여자가 소개해 준 또 다른 유부녀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과 정분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이 영국 왕이 됐는데, 그는 이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스스로 버렸다. 해외에서 생활하며 대영제국의 ‘윈저 공작’ 지위와 함께 ‘사랑을 위해 왕좌를 버린 세기의 로맨틱 가이’라는 식의 간판도 얻었다. 언론과 호사가들이 기뻐했다.

한편, 동생은 집안과 주변의 강력한 권유로 불륜 관계를 정리했다. 그리고 영국 귀족의 딸에게 구혼해 어렵사리 승낙을 얻어 결혼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다. 윈저 가문에 시집온 최초의 영국 여자였다. 그전에는 모두 독일 사람들이었다. 시아버지도, 시아주버니도, 남편도 모두 독일계 왕족 작센 코부르크 고타(Sachsen-Coburg und Gotha) 가문의 사람이었다. 시어머니도 영어를 독일식 억양으로 쓰는 독일 여자였다.

시집살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여왕의 어머니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중심이 잘 잡힌 사람이어서, 줏대가 부족한 말더듬이 남편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의지하며 그야말로 멀쩡히 사람 구실 하는 인간이 돼갔고, 종국에는 존경받는 왕이 됐다. 그런 남편이 사망했다. 그리고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왕위를 버리고 떠났던 시아주버니라는 사람이 윈저궁에 돌아왔다. 둘은 마주 앉게 된다. 어색한 침묵. 인상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상대를 빤히 쳐다본다. 에드워드가 운을 뗀다.

“에 …, 과거에 우리 생각이 서로 많이 달랐다는 건 잘 압니다. 허락하신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왕대비는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순진한 남편의 총각 시절, 이 사람은 말려도 시원치 않을 유부녀와의 불륜을 오히려 조장했던 사람이다. 왕위를 내려놓기 직전, 이 사람은 유부녀와 지중해 불륜 여행을 다니다가 사진이 찍혀 해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쉬쉬하던 영국 언론에도 알려지게 됐고, 국민은 경악했다. 그 바람에 왕실 존폐와 같은 불경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서 자신은 왕위를 내려놓고 왕가의 의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에 …, 우리는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동생을 잃었지요. 우리가 사랑했던 그분을 기리며 슬픔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전혀 바라지 않던 왕이 된 남편은 군주제를 유지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목소리가 큰 맏사위는 ‘왕족입네 하고 왕궁에 갇혀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니, 살고 싶으면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고 주창하는 사람이고, 그 바람에 마음에도 없는 텔레비전 중계에 얼굴을 팔아야 했다. 언젠가 국왕이 되실 딸은 전쟁을 맞아 작업복을 입고 운전과 정비를 하며 사진을 찍혔다. 아내의 생각에 남편의 비교적 이른 죽음은 이런 왕실 유지를 위한 총체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다. 그렇게 목숨 걸고 어렵사리 왕실을 지켜냈다.

그런데 마주 앉은 시아주버니라는 사람은 왕위를 내려놓고서 해마다 일종의 품위유지비로서 급여를 받아왔다. 왕족 지위도 유지했다. 전쟁 직전에 마누라를 끼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호화판 여행을 하고, 히틀러를 만나고, 일본 각료들과 욱일승천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치독일은 영국 점령 후 조지 6세를 퇴위시키고 바로 이 에드워드를 왕으로 복위시켜 영국을 신속하게 친 나치 국가로 만든다는 계획도 세웠었다.

“에 …,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더 머물까 합니다. 아마 다시 함께 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지요. 함께 점심을 들면서 산책을 한다거나요.”

에드워드가 불편함을 무릅쓰고 제수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신 조언대로 가족에게 예는 갖추고 있소. 급여를 올려줄지 모르지 않소. 당신을 초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나의 복수는 최대한 돈을 많이 뜯어내는 것이오.”

왕대비가 이런 속셈을 모를 리가 없다. 왕대비는 따님인 여왕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에드워드가 우리에게 예를 갖추는 건, 부도덕하고 헤픈 이혼녀와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뜯어 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법 집행관들에게 미리 말해두었어요. 좀 놀라게 될 겁니다.”
왕위를 내려놓은 것은 영국 국왕이 영국 성공회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이혼한 여자와의 결혼이 허락되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공작으로 강등당하더라도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내 역시 공작부인 작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은 영국 안에서 왕의 고문 역할 같은 것을 하며 왕자 시절처럼 의무 없이 특혜만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왕비가 된 제수씨가 가만둘 리 없었다. 특히 불륜 상대 월리스에게는 왕실의 어떤 작위도, 혜택도 주지 않았다. 둘은 추방되는 느낌으로 영국을 떠났다. 나치 독일과의 심상치 않은 조우와 관련해 영국 정부는 에드워드에게 신속히 귀국할 것을 명령했는데, 둘은 포르투갈로 도망쳐 버렸다. 선왕이기도 해서 가혹하게 다룰 수는 없었고, 영국은 에드워드를 바하마 총독으로 보냈다. 그리고 바하마 주재 관료와 아내들에게는 에드워드의 아내에게 왕족에게 절하는 방식의 예를 갖추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제수씨인 왕비의 입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수씨는 돌아온 시아주버니 에드워드의 급여까지 끊어버렸다. 에드워드는 늙은 어머니를 찾아가 징징대고, 처칠 총리에게 읍소를 하는 신세가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왕실의 미래
아빠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젊은 엘리자베스는 바로 여왕이 된다. 군주의 덕목에 대해 대왕대비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손녀는 정치 권력 없는 입헌군주제하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벌써 자괴감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 문제가 있는데, 실패를 하더라도 총리가 다 알아서 해야 하고, 자신은 나설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며 생각이 많다.

“국왕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옳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히 옳은 일이었답니다.”
“어째서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국왕의 과업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업입니다. 그 과업이 폐하의 모든 에너지를 다 빼앗아 갈 겁니다. 더 적게 행동하고, 더 적게 말하고, 동의해주고, 웃고 ….”
“더 적게 생각하고, 더 적게 느끼고, 더 적게 숨 쉬고, 더 적게 존재하라고요?”
“그럴수록 더 좋지요.”
“그게 군주의 덕목이겠지만, 그럼 도대체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드라마의 이 대목은 현재 영국 왕실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윈저 가문의 버팀목은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다. 제도를 폐지하라는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다. 공고한 민주정이 수립돼 있어 정치 권력 유지와 국정운영에 차질이 없으므로, 상징적 장치만 제거하는 군주제 폐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군주제 폐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지지하는 국민이 많아서 없애지 못하는 것이다.

영국 군주제의 미래 예측은 의외로 쉬워 보인다. 노블레스만 취하고 오블리주는 하찮게 생각한 에드워드 8세같이 하면 굉장히 어려운 일을 겪을 것이다. 선왕인 엘리자베스 2세처럼 하면, 무탈하게 국민과 함께 장수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대사처럼 그 오블리주의 실천 방향이 ‘더 적게 생각하고, 더 적게 느끼고, 더 적게 숨 쉬고, 더 적게 존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오블리주가 그들의 노블레스를 담보해 줄 것이다.

김기홍 한성대학교 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기홍 한성대학교 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저작권자 © 더퍼블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