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평의 자치이야기

필자가 한국주민자치학회/한국주민자치중앙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지도 어언 1년이 훨씬 넘었다. 대학에서 지방자치론, 시민참여론, NGO론 등을 강의 한 바 있는 필자로서는 한국주민자치학회/한국주민자치중앙회에서 개최하는 세미나 및 각종 활동에 관하여 비상한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되었고 나름대로 보람 있게 지난 1년을 보냈다.

주민자치학회는 지난 한 해에만 50회가 넘는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주민자치 이슈를 둘러싼 제도, 정책, 행정, 국내외 사례소개는 물론이거니와 다분과적인 시각과 접근을 시도했다. 실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주민자치 관련 수많은 세미나․토론․소통 과정서 답답해진 이유

그런데 수십 차례의 세미나와 토론, 비공식적인 소통 과정에서 느낀 답답함이 마음을 개운치 않게 하였다. 그 답답함의 원인을 찬찬히 성찰해 보면, 그것은 ‘바람직한 주민자치에 대한 기본 설정 혹은 기본 가정’이 발표자나 토론자에 따라 서로 다르며 각자가 상정하는 주민자치의 방향 설정의 한계를 잘 인정하지 않는 오류나 고집에 집착하기 때문인 듯하다.

통계적 가설 검증에서 발생하는 오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일종오류(type 1 error)이고 다른 하나는 이종오류(type 2 error)이다.

일종오류는 잘못된(false) 가설을 옳은(true)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임신할 수 없는 남자에게 임신했다고 판정하는 것이다. 이종오류는 옳은(true) 가설을 틀린(false)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임신한 여자에게 임신하지 않았다고 판정하는 경우이다. 일종오류는 잘못된 긍정이고 이종오류는 잘못된 부정에 해당한다.

왜 이런 얘기를 서두에 꺼내는가 하면, 이런 잘못된 오류 판정은 인간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편견이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사회현상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정책, 행정 상황에서도 이런 오류는 계속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잘 작동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지방자치가 잘 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오류에 해당한다. 반대로 지방자치제도가 잘 정착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경우는 이종오류에 해당한다.

한국 주민자치의 경우는 어떠한가? 주민자치가 제대로 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주민자치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일종오류 상황이다. 주민자치가 잘 정착하고 있음에도 주민자치를 부정하는 주장은 이종오류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가 추구하고 있는 주장은 맞는 주장일까, 아니면 일종오류나 이종오류에 해당하는 틀린 주장인가. 주민 스스로가 각성하여 자조, 협동, 자율 정신에 근거하여 주민자치를 할 수 있다면 이는 진정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주민자치가 바람직한 사회현상이라고 믿는 것 하고, 주민자치가 실제로 잘 될 수 있는 상황인가 하는 것하고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적 주민자치에 대한 열망을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욱 권장할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에 대한 주민의 무관심과 참여 부재 현상이 심각하다면 주민자치 운동은 공염불일 될 가능성이 크다. 자치의 주인공인 주민이 주민자치에 무관심하고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주민자치제도나 여건을 아무리 잘 갖추어도 주민자치가 잘 될 수 없을 것이다.

잘 될 수 없는 것을 잘 될 것으로 믿고 제도개혁과 추진 열정을 쏟는 일은 일종오류에 해당한다. 마치 공부에 관심이 없는 자녀를 둔 학부모가 교육제도를 개편하고 학교시설 개선을 요구하면 자녀가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오류이다.



한국 주민자치의 오류는 일종 혹은 이종?

이 시점에서 한국주민자치중앙회와 한국 주민자치학회가 10여 년간의 시간과 엄청난 인적, 물적 자본을 투자하고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주민자치 운동의 향방과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이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주민자치의 오류를 발견하는 일과, 열정과 노력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려는 일은 서로 상관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토양과 여건이 매우 부실하여 자유민주사회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던 한국이 선진적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성과를 누리게 된 것을 잘 성찰해 보자. 물론 자유민주주의 성장 요인과 주민자치 성장 요인은 서로 다른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 성장에는 이를 추구하려는 다수 국민의 여망과 지원, 지식인, 운동가의 희생적 참여가 있었다. 그러나 주민자치 이슈에는 주민자치의 효험을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정치세력과 자발적 주민단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한국주민자치학회/한국주민자치중앙회가 바람직한 주민자치모델과 주민참여 활성화 방안에 대한 적극적이고 심도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민자치 운동/학습의 추진 주체인 한국주민자치학회/한국주민자치중앙회의 운동역량을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정립하고 키워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 운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획과 액션이 필요한가. 만일 ‘주민자치의 구현이 올바른 명제인데 단지 현실적으로 부정되고 있다’라면 그것은 이종오류(type II error)에 해당하는데, 필자는 현재 한국의 주민자치 현실은 바로 이종오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중앙집권적 관료, 지방정치인, 행정편의주의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민자치의 가치와 실현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여 필자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자치의 이상과 비전, 그리고 주민자치의 성공사례를 자세히 관찰하면 주민자치는 언젠가는 반드시 구현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초석이며, 사회자본의 축적, 그리고 주민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임이 틀림없다. 단지 주민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열정 부족, 제도적 보장 장치의 부실, 주민자치에 여건 조성이 부실한 현 상태에서, 우리가 어떤 방법론을 채택하여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못 하는 것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주민자치 운동의 3가지 추진 방법론

여기서 우리는 주민자치 운동의 추진 방법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민간 주도’ 주민자치 운동 방법론이고, 둘째는 ‘민관협동’ 주민자치 방법론, 셋째는 ‘민학협동방식’ 주민자치 방법론이다.

‘민간 주도’의 주민자치 방법론은 행정과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가 자생적 주민자치 마을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충남 홍성과 전북 임실 등 몇 곳에 자주 자조적 주민자치 마을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가장 바람직한 주민자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민자치 운동을 주도하는 리더와 구성원의 자치 신념과 열정이 존재해야 하며 주민자치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매개 요인과 외부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민관협동’ 주민자치 방법론은 주민과 행정기관의 상호작용을 인정하는 범주 내에서 주민자치를 하는 방식이다. 주민자치 주체를 동네 주민에만 한정하고 모든 행정적 지원이나 교류를 배제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이고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곰곰이 성찰을 해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지방자치 실시 이후 주민자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과 수요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자치운동 옹호집단의 문제 제기와 요구가 가시화되고 지방정치인들이 가세하면서 주민자치가 제도화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은 관 주도, 관제 주민자치제도-예컨대 행정 자문기구로서 주민자치위원회 설치-로 전락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관제 주민자치에 명백한 흠결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치 마을을 구현하겠다는 주민들이 행정기관과의 상호작용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민이 살아가는 공간과 활동에 행정의 협력이 필요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경우에 동네에 주민 협동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는 점을 직시할 때) 동네 현안을 누가 어떻게 수렴하고 이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재 행정기관에서는 이장, 통장을 통한 공식적 의견수렴에 의존하는 행정편의주의에 빠져있으며 이장, 통장은 적극적 주민접촉보다는 행정기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며 수당을 받는 것을 자기 임무로 아는 정도인 듯하다. 주민들은 매우 수동적이며 자체 의견수렴 장치 구축이나 주민참여 행동에 매우 소극적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온전한 민간 주도 방식 주민자치 주장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주민과 행정이 민주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민관 협동적 주민자치 방법론이 현실적일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민학연계 방식’ 최근 주목…민주․자주적 방식 주민자치모델 주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길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최근 시도되고 있는 ‘민학연계 방식’ 주민자치 방법론이다. 이 방법은 대학이 가지고 있는 지식, 정보, 인력을 활용하여 교직원, 대학생이 동네/마을과 연계하여 주민자치 실험/실천을 하는 방법이다. 사례로는 국민대학교와 정릉3동 주민과의 민학연계 협동을 통한 주민자치 활성화 실천 사례가 있다. 간략히 요약하면, 대학 구성원(교수, 학생, 직원)도 그들의 직장이 있는 대학 지역에 대한 주민 지위 성격(주민 의식)을 일깨워 그에 합당한 현지 주민과의 유대강화, 봉사활동, 지식정보 전달, 행사 참여, 문화유산 개발 및 유지 활동을 통해 동네의 정체성, 주민자치의 중요성, 주민자치를 통한 사회자본 축적 등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방법이다. 상당히 혁신적이고 진정성이 있으며 그 성과도 잘 나타나고 있는 사례로서 ‘혁신과 확산 프레임’에서 볼 때 향후 괄목 성장이 기대되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주민자치는 그 개념과 성격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일종오류와 이종오류의 함정에 빠져있다. 중앙정치인, 지방정치인, 중앙행정기관, 지방행정기관 등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주민자치에 대한 견해차를 보이는 가운데 학자와 연구기관은 물론 시민단체, 주민마저 ‘주민자치가 무엇이며 어떠한 이상을 지향해야 하며 어떠한 제도와 실천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과 주장이 달리 나타나고 있다. 오류에 빠진 한국 주민자치의 지나친 담론화를 지양하며 동네라는 현장에 주민자치의 다양한 방법론이 적용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방식의 주민자치모델을 주민 스스로가 선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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