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학교 ‘2050 시민 트렌드 시리즈’에서 전상직 중앙회장 특강 펼쳐

“주민자치라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주민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다. 국가가 못하는 일 역시 주민이 결집한다면 해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그러했고, IMF 시절 금 모으기가 그러했다. 이렇게 되려면 주민들이 마을로 나와야 한다. 이웃과 마을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보게 만들어 공감하고 교류하게 하는 게 주민자치의 출발이다”

대전광역시와 대전광역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가 주최 및 주관하는 대전시민학교 2050 시민 트렌드 시리즈가 7월 4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20일 커먼즈필드 대전에서 ‘대전시 주민자치 실질화 방향’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열었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자치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를 위해 주민자치와 주민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전 회장의 특강을 지상 중계한다.

 

자치, 스스로 살아가되 또한 함께 살아가는 것

자치는 남에게 신세 안지고 본인이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단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 속에서 자치하기란 쉽지 않다. 중앙아프리카에 다녀오신 교수님이 그 곳은 주민자치 잘 된다고 한다. 회장도 있고 총무도 있고 다 있다더라. 그런데 그들은 자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 자체가, 삶 전체가 자치인 것이다. 선진국이라고 주민자치 잘 되는 것 아니고 후진국이라고 안 되는 것 아니다.

내가 잘 한다고 해도 이웃이 배려하지 않으면 잘 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함께 살아가는 것이 주민자치란 말이다. 오늘 주민자치 잘 할 수 있는 방향성,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출발부터 잘못된 우리 주민자치, 바로 잡으려는 노력 부족해

우리나라에서 주민자치는 후진국 중에서도 정말 후진국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주민자치하기 위해 읍면동을 없애고자 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심하게 반발해 읍면동의 절반을 시군구로 보내기 위해 만든 것이 지금의 주민자치센터다. 주민자치센터의 출발이 주민자치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주민자치 제대로 하려 했다면 읍면동이 아닌 통리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읍면동 인구와 규모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한 나라는 없다. 통리가 적합하다. 주민자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해서 2006년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학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크고 작은 주민자치 세미나와 학술대회를 1,000회 가까이 개최했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시군구를 통합해 전국을 80여 개 대시군구로 만드는 계획 아래 읍면동을 주민자치회로 바꿀 계획만 세웠다. 이 역시 주민자치가 아니라 읍면동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 입법됨에 따라 주민자치 조직의 전국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중앙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고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주민자치 활성화 위원을 했던 경험이 있어 서울시의 모든 구를 검토했다.

주민자치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기 위한 행위다. 대신 혼자 하면 개인자치, 공무원이 하면 지방행정, 시민단체가 하면 시민운동이다. 주민이 함께 모여 해야 주민자치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서울형 주민자치는 시민단체를 앞세워 주민을 빼버리고 주민자치를 지배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행정안전부 표준조례는 주민은 없고 위원만 있는 기형적인 주민자치회를 만들어 버려 주민자치의 본질과 가치를 왜곡했다. 최근 표준조례 개정안 역시 주민자치를 관치로 역행시키는 독소조항이 들어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 역시 제대로 된 주민자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주민자치가 20년 동안 답보 상태인 이유다.


 

사과 1개의 미덕을 마을의 공덕으로 승화

10개의 사과를 10명이 공평하게 나눠 먹으면 되지만 2개를 먹은 사람이 있으면 어떡할까? 1개가 부족해 누군가 손해 보게 만들어야 한다. 사과를 먹은 9명은 안 먹은 사람에게 미안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기회에 못 먹은 사람에게 9명이 사과 한 개씩 선물하면 된다. 서로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미덕이 주민자치의 출발이다.

이렇듯 읍면동에 있는 주민들의 능력을 합하면 읍면동 공무원들 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런데 지금의 주민자치는 주민의 역량이 공공으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여가 취미활동으로만 아깝게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미덕이 마을의 공덕으로 승화되어야 주민자치가 실현되는데 시군구 의원은 주민자치 활동과 지원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조례로 방해하고 있다. 행정 공무원은 사업을 선점해 예산으로 주민자치를 가로 막고 있다. 주민도 문제다. 다분히 이기적이며 능력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

결국 성공할 수 있는 주민자치 모델은 주민들이 합심할 수 있도록 자치사업을 기획하고 제도로 지원해 지역사회에 주민자치를 내재화시켜 주민자치역량을 형성하는 형태여야 한다.

 

 

민주화 사각지대 읍면동, 주민자치로 민주화시켜야

주민자치는 민주제다. 시도, 시군구에서는 단체장과 의원을 직선하는 간접민주제와 주민투표발안 및 소환 등 직접민주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읍면동장과 통장을 주민이 직선할 수 없다. 행정이 임명한다. 다시 말해 읍면동과 통리는 직접은 물론 간접민주제마저 부재된 민주주의 사각지대라는 말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행정의 독재체제다.

지방자치는 국가가 지방을 통치하는 전통과 주민이 지방을 자치하는 전통이 있는데 선진국일수록 주민에 의한 주민자치가 발전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방을 국가가 통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읍면동과 함께 통리가 민주화되기 위해서는 이웃과 마을을 위해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 체계가 주민자치고, 조직이 주민자치회다.

 

행정은 주민이 자치하게끔 동기부여하고 지원하되 간섭 말 것

주민자치의 정의는 주민이 마을의 생활관계를 주민과 마을을 위해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읍면동 주민자치회는 읍면동 주민총회라는 최고결정기관이 규약을 제개정하고 회장 및 감사를 선출하며, 주민자치회 사업과 예산을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민자치회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엄성에 기초를 두고 공동선-연대성-보조성으로 구성된다. 이를 토대로 분권과 자치 아래 주민이 구역을 마을로 승인하는 자발성, 주민이 주민을 나의 이웃으로 승인하는 자주성, 주민이 마을일을 나의 일로 승인하는 자율성이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주민자치 정책은 자치와 분권에 기반해야 한다.

주민이 주민자치 하게끔 동기가 부여되게 행정이 지원해 줘야 한다. 주민이 합심해 자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읍면동장의 일이다. 그런데 행정도 그렇고 주민도 그렇고 제대로 된 주민자치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결국 주민자치회가 성공하려면 주민이 자치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주민자치회가 주민의 자치로 공공에 기여해야 한다. 행정은 이런 조건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주민 없는 자치회가 있을 수 없듯이 정부 없는 자치회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주민자치 정책은 여전히 없다. 참으로 안타깝다.

 

 

촌계·향회조규, 역사 속 훌륭한 주민자치 있어

실록을 찾아보면 우리 역사에도 훌륭한 주민자치가 많다. 조선시대 수령과 재지사족은 분권이 되었다. 그러나 양반과 상민 간에는 분권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양반끼리 한 향약은 성공했다. 하지만 양반과 상민이 한 향약이나 양반과 수령, 상민이 함께 한 향약은 모두 실패했다. 단, 기층민들끼리 함께 한 촌계는 크게 성공했다. 촌계가 바로 우리나라 주민자치 원형인 것이다.

대한제국에 들어와서는 1895년 유길준 선생이 향회조규를 만들어 소향회, 중향회, 대향회를 구성했다. 소향회는 리에 설치되어 매 호 대표가 모여 회장 선거를 하고 중향회는 면에 두어 소향회에서 회장 1명, 대의원 2명 등 3명이 모여 면회를 구성한다. 여기서 또 다시 3명이 모여 군회인 대향회를 구성하는 합리적 구조였다.

그러나 일제가 말살해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렸다. 일제는 전통사회를 직접 장악하기 위하여 2~3개 마을을 묶어 행정계층인 읍면으로 편제했다. 읍면에 공무원을 읍면장으로 배치하고 주재소까지 설치, 주민자치 조직을 전면 행정조직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 사회를 파괴해 수탈이 용이한 조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읍면동과 통리를 공무원이 관리하는 것은 흡사 일제의 잔재이자 일제 식민지와 같은 현실이다.

 

주민자치 본질,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것

콜라 1병이 1천원인데 빈병 2개 반납하면 1병을 무료로 준다. 5천원을 가지고 있다면 몇 병의 콜라를 마실 수 있을까? 핵심은 2병씩 반납한 후 남은 빈병 1개다. 이 빈병을 버릴지 활용할지가 주민자치의 화두다. 방법은 간단하다. 가게에서 1병을 외상으로 마신 후 원래 있던 빈병과 합쳐 빈병 2개로 1개의 콜라를 받아 가게에 갚으면 된다. 함께 살아가는 유연성, 배려와 관용이 주민자치의 미덕인 것이다.

결국 주민자치의 본질은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것이다. 단 이걸 혼자 하면 개인자치, 관료가 하면 관료행정, 시민단체가 하면 시민운동이다. 주민 모두가 함께 해야 비로소 주민자치가 완성된다. 그런데 뒤집어 놓고 보면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일 중 국가나 단체장, 시민단체가 해줄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마을차원의 문제, 생활차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주민자치다.

주민자치에서 감수성 없는 사업은 강요하는 사업이 되고 상상력 없는 사업은 쓸모없는 전시사업이 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주민자치 사업은 그리고 이에 대한 실행은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행정의 간섭 없는 지원으로 실현될 수 있다.

 

회비까지 내는 일본 주민자치회, 역할과 기능 확실해

돈 없이 주민자치 사실상 어렵다. 일본은 회비를 내면서까지 주민자치를 하고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주민자치회가 긍정적이고 바람직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주민이 주민자치회에 회비를 내는 것이다.

일본의 주민자치회 역할은 주거환경의 유지가 31.7%로 가장 높다. 그 다음이 주민 간 소통과 친목으로 30.8%다. 소통과 친목을 통해 사회적자본을 형성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마을문제 대응이 15.5%로, 이를 기반 삼아 사회서비스를 공급한다. 자치단체에 협력하는 것은 12.2%, 자치단체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9.8%인데 이는 다름 아닌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또한 주민의 불만 해결, 민원 해결을 위해 주민자치회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시군구에 부탁하고 청원하고 있다. 주민자치회를 통해 진정을 넣고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런 경우가 지금까지 25.1%였었고 앞으로는 더 증가해 47.2%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이 이웃 소통하고 마을에 공감하는 주민자치

인생의 동기는 내가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남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 역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새마을운동과 주민자치를 접목할 방안을 연구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새마을운동 당시는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컸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런 쪽으로 동기부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 하도록 격려하고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기는 크게 이익동기, 권력동기, 명예동기로 나눌 수 있다. 이익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고 명예를 원한다고 다 나쁜 것인가? 아니다. 제도로 주민 각자가 추구하는 동기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마을과 이웃을 위해 힘쓰도록 동기 부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이 주민자치에도 필요한데,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다. 주민들에게 자치의 동기를 부여하고 숙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과제라 하겠다.

 
전 회장은 끝으로 “주민자치 하려면 주민이 마냥 집에 있기보다 집 밖으로 나와 이웃과 마을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웃을, 마을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주민자치다. 주민끼리 속내를 털어놓고 공감하고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전하며 특강을 마무리 지었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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