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자원과 주민자치

그 동안 제주도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국내외적으로 자본을 유치하고 각종 개발 사업을 벌여왔다. 2000년대 들어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제정 이후 관광레저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해 왔으며 지하수를 개발하여 산업화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도로를 신설·확장하여 섬 전체를 도로망으로 뒤덮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제2공항 사업 추진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제주도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왔다.

그런데 자본유치와 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혁신전략이 얼마나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얼마나 더 도로를 놓고, 공항을 더 지을 수 있을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제3공항, 4공항을 짓겠다고 할 수 있을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제주도가 각종 개발사업과 관광객 유치에 의존하게 되면서 점점 더 자본의 유출입이나 관광객의 변동에 좌우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역경제가 외부자본의 투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본유출이 발생할 경우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미 지역경제가 자립할 수 있는 토대가 허물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지역 경제가 점점 더 관광객 수의 변동에 민감해 지고 있는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반면 최근 외국자본을 유치하지 않고서도, 대기업 자본 없이도, 개발 사업을 벌이지 않고서도 지역경제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주목을 끌고 있다. 공동체 자산형성 전략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대응방법은 미국의 클리블랜드나 영국의 프레스턴 같은 몇몇 도시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아 왔다.

제주도 또한 공동체 자산형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들이 있다. 가시리나 선흘리 같은 마을 단위에서 추진해 온 마을만들기 사업이 대표적이다. 최근 한살림제주가 벌이고 있는 지역살림사업도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는 공동체 자산형성 전략이 무엇을 뜻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도의 마을만들기 경험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확장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가시리 마을공동목장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
가시리 마을공동목장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

 

공동체 자산형성과 지역혁신

클리블랜드 모델 혹은 프레스턴 모델로 불리는 공동체 자산형성(community wealth-building) 전략의 핵심 아이디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외부 자본 유치에 사활을 걸 것이 아니라 지역 내 자원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들 지역도 초기에는 제조업 쇠퇴에 직면하여 다국적 기업이나 대형 유통체인의 투자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기업 자본들을 유치하는데 성공해도 이들은 수익이 나지 않으면 사업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어도 사업의 성과가 지역경제로 순환되지 않고 외부로 유출되는 문제가 있었다. 외부 기업이나 자본들이 개발 사업을 벌여도 이러한 사업들이 지역 사업체나 기관들과 연계되지 않다보니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자본유치나 개발사업 방식은 사업이 중단돼도 문제지만 사업이 잘 돼도 지역경제가 정체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여 이들 지역은 일단 돈이 지역에서 유출되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선 지방정부나 학교, 병원 등 공공기관이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우선적으로 지역업체들을 통해 구매하는 진보적 조달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지역 업체들이 공급해 오지 않던 물품이나 서비스가 있으면 이를 새롭게 협동조합 등을 설립해 해결하려는 시도를 했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진보적 조달이 새로운 협동조합을 낳게 되고, 협동조합이 늘어나면서 지역경제가 활기를 띠고, 지역 공동체 은행 설립까지 가능해지는 방식으로 지역경제가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 지역 사업체들과 협동조합들이 생활임금이 보장되는 질 좋은 일자리를 공급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살림제주 공동체 텃밭
한살림제주 공동체 텃밭

 

제주의 공동자원과 공동체자산 형성

클리블랜드나 프레스턴 같은 해외 도시들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공동체 자산형성에 성공했다면 제주도에는 천혜의 자연이 주는 풍부한 공동자원을 활용하여 공동체자산 형성에 성공한 사례들이 있다. 가시리 등의 마을만들기 사례가 그것이다.

제주도는 익히 알다시피 물, 바람, 바다, 숲 등을 지닌 공동자원의 섬이다. 오래전부터 공동어장이나 공동목장, 곶자왈은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자원들이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관광산업의 성장과 농법의 변화로 공동자원의 중요성이 감소되어 왔다. 공동목장 같은 공동자원들이 대자본에 매각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공동목장이 있던 자리는 골프장과 리조트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가시리 같은 마을은 공동목장을 매각하지 않고 활용하여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데 성공하여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0년대 마을만들기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가시리는 마을소유의 공동목장을 활용하여 풍력발전단지를 유치하고 풍력발전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마을발전기금을 마련하여 경로당이나 공동목욕탕을 짓기도 하고 마을주민들에게 학자금, 전기료 등을 지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시리의 사례는 공동목장을 대자본에 매각하는 경우와 마을이 직접 활용하는 경우 지역경제와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차이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만약 공동목장을 대자본에 매각했다면 그 자리에는 골프장이나 리조트, 관광단지가 들어섰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수입이 늘고 일자리가 생겼겠지만 그러한 경제적 효과는 단기간에 머물렀을 것이다. 또 매각된 공동자원은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통로로 기능했을 것이다.

반면 가시리는 공동목장을 마을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함으로써 공동목장이 창출하는 부를 지속적으로 지역으로 순환시킬 수 있는 구조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를 돌봄이나 교육 등 마을 주민들의 기본적인 필요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한살림제주가 추진하는 지역살림 사업도 공동체자산 형성을 목표로 하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살림제주는 대안농업운동과 생활협동조합운동에서 시작해 교육, 환경, 복지와 같은 생활과제들을 해결하는 지역살림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해 왔으며 사회적 경제 생태계 구축을 위해 협동조합 간 협동과 상호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들을 벌이고 있다.

일례로 제주희망협동조합이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물류사업을 시작했을 때 한살림제주는 물류업무를 제주희망협동조합에 위탁을 주어 지역의 협동조합들이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클리블랜드나 프레스턴 지역들처럼 외부 자본이나 사업체가 아니라 지역의 자원과 업체를 적극 활용하여 지역의 부가 지역에서 순환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매출 중 일부를 지역사회공헌기금으로 조성하여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하면 지역의 부가 지역에 쌓이고 그 성과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됨으로써 지역경제가 지속가능하고 자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가시리 마을공동목장 입구
가시리 마을공동목장 입구

 

마을만들기 넘어 지역사회혁신으로

제주도 가시리의 공동자원 활용 사례나 한살림제주의 지역살림 사업은 제주도에서도 공동체자산 형성 전략이 매우 매력적이면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지역혁신전략임을 보여준다. 행정당국은 여전히 외부자본 유치나 개발사업 만이 지역이 살 길이라는 신화에 갇혀 있지만 마을이나 지역사회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시도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 글에서 다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가시리 외에도 선흘리 동백동산 사례나 구좌읍 행원리, 남원읍 하효리 등 제주에는 마을의 공동자원을 활용하여 마을만들기와 공동체 자산형성에 성공한 사례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마을 단위의 공동체자산 형성 경험들을 살려 제주도 차원으로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공동자원의 활용은 마을만들기 차원에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공동자원이 주는 풍부한 혜택이 마을단위에만 갇혀 있을 이유는 없으며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 마을만들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섬 전체적으로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활성화되어 제주라는 섬과 섬을 구성하는 마을들이 활발하게 상호작용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본유치와 개발 사업에 대한 신화를 깨고 대안적인 지역사회혁신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마을이 관리해 오던 공동자원은 제주도 차원의 공동체자산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해외 성공사례들은 모두 혁신주체들이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기금으로 적립하여 새로운 협동조합이 등장하고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확장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공동체 자산형성의 범위를 확장시켜 왔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을 참고해 보면 제주도는 각 마을이 공동자원을 통해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가칭 공동자원기금으로 조성하여 이러한 기금으로 지역 차원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공동자원기금을 활용해 돌봄협동조합을 만들고 이러한 협동조합이 커뮤니티케어 같은 사업을 벌인다면 마을단위뿐 아니라 제주도 전체로 공동체자산 형성의 성과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물론 민주적으로 공평하게 혜택을 제공하는 지역순환경제가 될 것이다.

 

사진=필자 제공

 

참고문헌

매튜 브라운·리안 존스. 프레스턴. <더 나은 경제를 상상하다>(김익성 옮김). 원더박스. 2023.

최현·김선필. <가시리의 마을만들기: 공동자원의 재구성과 지속가능성. 제주의 마을과 공동자원>(최현·정영신·윤여일 편저). 진인진. 2017. pp.54-82.

김자경. <커먼즈의 실천, 사회적경제와 협동조합. 공동자원론, 오늘의 한국사회를 묻다>(최현·정영신·윤여일 편저). 진인진. 2017. pp.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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