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자원과 주민자치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보다는 조금 덜한 듯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공공의료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올여름만 해도 요양병원 노조의 파업들이 이어지기도 했고, 정부가 의대 정원 증가 방침을 밝힌 가운데 지역의 여러 대학은 지역사회 의료 수요 충족을 위한 ‘공공의대’ 설립을 명분으로 의대 유치 경쟁이 뜨겁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은 늘지 않았고, 의료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저출생 현상이 심해지면서 대도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소아·청소년의 학과나 산부인과, 일반 외과와 같은 필수의료의 수요조차 충족되지 않는다. 공공의료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의료격차는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과연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커먼즈로 요약되는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필요한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의료를 전문가들의 영역이나 국가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생로병사를 함께 하는 작업으로서의 의료란 자치적 공공성를 가능하게 하는 커먼즈의 시각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료에 공공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듯 여겨지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료에서 공공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타 분야와의 차이점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과연 의료에서 공공성이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산업으로서 의료와 공공재로서 의료의 충돌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의료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는 질환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달려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증질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에서는 건강과 관련하여 매우 다양한 의료적 실천이 병존하는 편이다. 그러나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 첨단의료와 대형병원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매우 높다.

사회적 담론에서도 신약과 신기술을 개발하여 미래 산업의 동력을 얻고, 의료라는 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반인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핵심 비전이다. 해당 지역을 의료산업의 허브로 키우겠다는 지자체들의 주장 역시 진부할 지경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욕망은 ‘가능하면 내 집 가까운 곳에 ‘빅5’와 같은 대형 대학병원을 두고 싶다‘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산업으로서의 의료를 발전시키고 고가의 상품이 될 수 있는 신약과 신기술을 개발하면서도 의료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가의 의료 상품을 누군가만 누릴 수 있는 건 부당하므로 공공이 개입해서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은 실제로 의료공공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라기보다는 의료가 극도로 시장화된 상황에서 나오는 반작용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의료가 공공재인지, 공공재라고 한다면 어떤 성격의 공공재인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입장에서 어떤 의료가 좋은 의료인지를 평가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의료, 관심 높지만 각자도생으로 헤쳐가야 할 난국”

시민들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아픈 사람이 되고 나면 치료와 간병에 필요한 비용이 들고 생계가 곤란해지며 병원에서는 짧은 진료 시간과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시스템 속의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권위적이고 필요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며 응급 상황에서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의 지역별 차이도 심하고 돈이 되는 질병이 아니라 노화와 함께 경험하게 되는 증상들에 의료인들은 무관심하다는 문제들이 지적된다.

실제로 병원을 찾아가기 어려운 환자를 두고도 왕진 의료를 확대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시범사업만 하는 ‘전 국민 주치의제도’를 전면 도입할 수도 있는 등 여러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필요보다는 첨단기술 활용을 중심으로 의료산업을 육성할 방법만이 선호되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시민들의 공공의료에 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현실은 다양한 방향이 혼란스럽게 제시되는 각자도생으로 헤쳐가야 할 난국에 가깝다.

 

“과잉 의료 막고 다양한 욕구 충족위해 의료에도 시민들의 자치․자기결정권 개념 도입 필요”

사실 의료는 공공재라고 흔히 이야기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의료에 대해서는 개방재(public goods)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실제 현대사회에서 의료는 고가의 장비와 약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의료에 수반되는 돌봄은 매우 귀한 자원이 되어버렸다. 이제 의료가 개방재로서만 관리되기 어려운 수준에 와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든 국가 재정의 차원에서든 초고가의 의료는 이를 모든 사람이 누려야 되는 권리라고 주장하기도, 현실적으로 확보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나서서 시민을 선별하고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또한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의 수요가 같은 것도 아니다. 꼭 필요한 첨단의 치료를 경제적인 이유로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모두가 임종의 순간까지 고강도의 의료적 개입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가 다양하듯이 의료에 대한 요구나 바라는 죽음의 모습도 다양한 것이 인간이다. 결국 현실적 제약 속에서 과잉 의료를 막고 개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의료에도 시민들의 자치, 자기 결정권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가는 의료격차를 축소하고 가능하면 누구나 경제적 능력에 덜 영향을 받으면서 필수적 의료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한정된 자원 속 우선순위 정해 좋은 삶에 어울리는 돌봄 방식으로 의료 꾸려가야”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나서서 한정된 재원 안에서 필요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좋은 삶에 어울리는 돌봄의 방식으로 의료라는 살림을 꾸려가는 일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의료를 제한 없이 누려도 될 개방재나 당연히 주어지는 일방적 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꾸는 공동의 자원, 공동의 영역, 즉 커먼즈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볼 때 의료를 공공재로, 즉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으로 의료를 공공재로 만들어 줄 정치적 공동체가 필요해지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시민들의 삶에서 필수적인 것은 어떤 부분인지를 판단하고 집중해 필수의료에 대해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가며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 전문 의료와 돌봄, 다양한 소수자들을 포괄하는 커먼즈의 존재 없이 의료는 공공재가 될 수 없다.

 

‘커먼즈’로서의 의료, 국가․시장과 함께 시민․지역도 주체 되어야…협치․정치도 필요

그렇다면 의료를 커먼즈로 본다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우선 국가와 시장에만 맡겨둘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시민과 지역이 함께 주체가 되지 않는 한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커지면서 의료를 시장논리에만 맡겨놓을 수 없으며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공공의료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많이 나왔다.

공공의료가 대폭 확충되고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기관은 공공화해야 하며 필수적인 인공호흡기나 의료장비. 마스크 등의 생산과 유통은 정부가 관리해야만 한다는 방안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의료생태계 전체의 공공성 문제이다.

커먼즈라고 하면 보통 그냥 작은 공동체를 떠올리는 경향이 많지만 실제 커먼즈를 이해하는 데는 ‘공공’(公共)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이 유용하다. 첫 번째 공(公)은 영어의 퍼블릭(public)과 달라서 국가를 의미하는 공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공(共)이다. 이 두 가지 차원을 아울러서 본다면 의료에서도 당연히 국가의 역할과 지원이 필요하며, 국가의 자원도 활용할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지역에서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돌봄을 위한 네트워크만이 아니며 무엇이 더 시급하게 필요하고 무엇이 덜 필요한지, 어디를 먼저 지원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공동의 판단과 결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료가 코로나19 사태 중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폭발하듯이 일어난 대규모 집단 감염 상황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공공의 힘만은 아니었다. 공공병원 외에 대학병원, 의료봉사 형식으로 결합한 민간의 의료 인력들, 기업에서 지원한 생활치료공간이 모두 활용되었으며 장애인들을 비롯하여 홀로 자가격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돌봄의 공백을 메운 많은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이는 실제로 의료공공성의 문제가 단지 공공병원 병상확보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이며 시민사회의 강화 혹은 사회 전반의 공공성 강화 문제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동체의 필요에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민들의 존재가 중요하며, 위기 상황에 응답하여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아울러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 거버넌스의 존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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